나는 어느 지렁이의 신이었다.
작년 여름 장맛비가 쏟아진 다음날이었다. 무더운 여름이라 아스팔트에 떨어진 빗자국은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다.
비가 온 뒤라 아파트 화단 옆 보도블록 위에 지렁이가 자주 눈에 띈다. 꿈틀꿈틀.
이런 날씨에 사람눈에 띈 지렁이 운명은 뻔하다. 뜨거운 바닥을 견디지 못해 뒤틀거리며 말라죽거나, 발아래를 보지 못한 누군가에 의해 순식간에 생명을 잃는다. 운이 좋은 극소수의 지렁이만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살아남은 놈들은 아코디언처럼 몸을 최소한으로 축소시켰다가 쭉 늘리며 앞으로 전진한다.
내가 신이 된 그날, 나는 죽기엔 아직 젊은 지렁이 한 마리를 만났다.
남편과 함께 집 근처 음식점서 점심을 사들고 아파트 공터로 갔다. 이층높이의 소나무로 둘러싸인 아파트 공터 구석에는 정자와 벤치 놓여있다. 학교 운동장 반만 한 공터엔 새벽부터 어르신들은 산책을 하시고 오전엔 어린이집 아이들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 흙을 만지고 있다. 점심동안 잠깐 비어있던 공터엔 하교 후 친구들과 놀러온 동내 초등학생들이 야구나 축구를 하며 노는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편히 점심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모색하고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불을 저항하며 몸을 뒤트는 마른오징어처럼 불타는 보도블록 표면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 한 마리가 나와 남편의 눈을 사로잡았다. 지렁이 혼자의 힘으로 이쪽으로 가기에도 저쪽으로 가기에도 흙으로 돌어 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이 녀석이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이 뜨거운 지옥에서 제발 벗어나게만 해달라고 발버둥 치는 것 같은 지렁이를 보자니 불쌍함을 넘어 다급함이 밀려왔다. 이 녀석 이러다 밟혀 죽기 전에 말라죽겠구나.
주변을 다급히 둘러봤다. 바닥에 널브러진 얇은 나뭇가지 두 개를 집어 들고 그 녀석에게 갔다. 한쪽 나뭇가지로 머릿 아래 부분에 슬쩍 기대게 했고 나머지 나뭇가지로 꼬리 아랫부분 지탱하며 앞으로 나란이를
하듯 지렁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얼른 몸에서 가장 가까운 화단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촘촘히 심어 있는 무릎 높이 나무 사이에 간신히 보이는 흙더미 위에 그 녀석을 던졌다. 지렁이가 징그럽긴 한 모양이다.
꿈틀거리던 이 녀석은 호랑이처럼 기세가 강해져 머리를 지팡이로 흙에 내리쳐 꽃듯 쳐 박는다. 그리고 몸을 힘차게 내리꽂으며 흙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내가 봐왔던 지렁이는 징그럽고 꿈틀거리기만 하고 힘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달랐다. 동물원 호랑이보다 더 강한 용맹한 지렁이였다.
이런 녀석, 살리길 잘했다.
그 녀석의 강렬한 몸짓이 나에게 보답하는 것 같았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이 저를 저버리지 않으셨어요.
나는 필요할 때만 신의 존재를 믿었다. 하나님, 하느님, 부처님, 귀신 등등 그들은 그저 나에게 먼 존재였다. 지렁이를 구한 이후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어쩌면 나를 돌봐주는 사람들, 반려동물, 사물들이 신을 대신해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단지 그들의 형태가 내가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형태라 그것이 신이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이야말로 나를 아끼고 돌보고자 하는 신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닐지?
나 또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신이 직접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한 존재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