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이후엔 라디오를 종종 켜놓는다. 아이들이 티브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선택한 건 바로 라디오다. 티브이가 사라진 조용한 거실에 라디오 디제이의 멘트와 음악으로 꽉 채우고 나면 아이들은 덜 심심해한다.
라디오는 티브이보다 상호작용이 훨씬 활발해 청취자의 사연과 디제이의 공감, 조언을 즉시 들을 수 있다. 라디오의 또 다른 장점은 귀만 라디오에 고정되어 있으면 몸은 따로 놀아도 된다. 티브이를 볼 땐 눈과 귀가 모두 티브이에 고정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라디오는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도 독서를 할 때도 라디오를 켜 놓고 있는다. 그래서 나는 라디오를 버릇처럼 듣는다.
라디오를 듣는 또 다른 이유는 오프닝 멘트 때문이다. 라디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디제이는 짧은 몇 줄의 멘트를 잔잔히 흘러나오는 배경음악과 함께 전한다. 본 적인 있으나 인지하지 못한 것들이나 최신 이야기에 철학을 가미해 전달한다. 특히 뇌리에 박히는 멘트는 내가 살면서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주변에 널려있는 철학 이야기이다.
몇 주전 KBS 8시경 클래식 방송 오프닝 멘트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 조각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부르는 독서 분야 중 하나인 자기 계발서가 미국에서는 self help book 즉 자기 도움 서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대학 교제나 해리 포터, 다빈치 코드 등 소설 이외에 자기 계발서 같은 것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자기 계발서가 영어로 self help book이라고 불리는지도 몰랐다.
나에게 자기 계발서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단한 노력을 해야 하고,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책이다. 목표에 한 발자국씩 다다르고 있지만 어쩔 땐 너무 힘을 쓰다 지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하고 노력해 왔던 자기 계발이지만 그것들이 이젠 나를 소진시키고 무너지게 만든다. 끊임없이 부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위로만 뻗게 자라는 나무로만 자라려고 하니 그 나무는 온 힘을 다해 빳빳이 긴장하고 서 있어야 한다.
라디오 오프닝 멘트는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 왔던 자기 계발서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게 했다. 자기 계발서 보다 자기도움서가 나를 더 편안한 여유를 갖게 한다. 자기 도움서는 바람이 부는 대로 널 바람에 맡기면 되라고 나에게 내려놔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나를 세우기 위해 더 높게 높게 자라라가 아니라 지금 너 모습 그대로 괜찮으니 그냥 널 있는 그래도 바라보고 너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도와줄게 하는 것만 같다.
나는 자기 계발서보다 자기도움서라고 부르려고 한다. 자기 계발서는 한 시간 한 시간 쪼개가며 지금의 나를 넘어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자기 도움서는 너무 급하게 가지 않아도 괜찮았으니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어 줄게라고 말을 거는 것 같다.
자기 계발서든 자기도움서든 어쨌든 그 책의 본질은 같다. 지금 모습이 아닌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하지만 그 단어의 차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려고 하는 것인지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지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하는 책의 종류도 달라지고 그것을 바라보고 읽는 내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