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그림소설) 상사

by 달고나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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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 반 세근 반.

그와 마주하면 내 심장은 멋대로 움직입니다.

머릿속이 캄캄해지고 숨이 턱 막히고

이마엔 땀까지 삐질.

한 대 맞은 병아리처럼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해요.


"미영 씨, 식사했어요?"


그저 지나가는 아무 뜻 없을 챙김에도

심장이 쿵!


"네? 네.. 네에.. 먹었어요."


길지 않은 대답에도 버벅거리고 말아요.

밤새워 준비했던 수많은 대사들은 꾸깃꾸깃 접혀

마음속 어딘가로 슝~


"아, 점심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물어봐야겠다."


깜깜해진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기도 안찬 질문 하나 끄집어 내면

이미 그는 먼 곳에.

돌아서서 후회합니다.

이 바부탱이, 멍청이, 언어 저능아 같으니라고.


"이기수 씨, 이거 한잔 마셔보지 않을래요? 허브틴데, 소화도 촉진시키고 피로 해소에도 그만이래요."


우리 회사 제일의 미녀이자, 최고 애교녀 김대리님은

오늘도 화사하게 미소 지으며

그의 팔을 붙듭니다.

미모만큼 멋들어진 예쁜 찻잔을 들고서 말예요.


"아우, 저 여우 또 시작이다. 살랑거리는 것 좀 보라지. 나이 먹고 저러고 싶을까?"


샘 많은 여직원들은 입술을 삐죽이지만 전 그게 부러운 걸요.

저도 저렇게 태연하게 옆집 사람에게 말을 걸 듯이 그와 이야기 하고 싶어요.


오늘 날씨가 좋네요.

아~ 어디 멀리 놀러 가고 싶다. 기수 씨는 여행 좋아해요?

어디 어디 가봤어요? 배낭여행이요? 와.. 좋겠다. 난 집순인데..

오늘 일 너무 힘들었죠? 부장님 댁에 안 좋은 일 있나 봐요.

사모님이랑 다투시면 가끔 저래요.

너무 애처가시라 그쪽엔 성을 못 내시거든요.

기분도 꿀꿀한데 영화나 볼래요? 아님 저녁 콜?

한식이 좋아요 양식이 좋아요? 아하, 일식?


"바보야, 뒤통수만 쳐다보면 연결이 되겠냐. 가서 말해.

일 좀 도와달라고 커피 한 잔 빼 달라고 찡찡 대거나.

다른 애들은 잘만 하던데 넌 뭐가 그렇게 어렵니?"


입사동기 영우는 이런 제가 답답하다고 가슴을 치지만 제겐 너무 어려운 일인걸요.

눈만 마주쳐도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인데 어떻게 말을 걸고 어떻게 부탁을 해요.

그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오직 꿈속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현실에 눈물짓고 아파하지요.

밤마다 적어내리는 마음 그에게 살며시 보이고 싶지만

혹여나 밀침을 당하면 다시는 설 수 없을 것 같아

용기 없는 난 그 마음을 숨기고 말아요.


언젠가 그에게 이 마음을 전할 수 있겠지요.

그 언제가 과연 오기나 할지 스스로도 알 수 없지만요.

그때까지만 숨겨 둘게요.

지금까지 전하지 못한 내 마음

앞으로도 전할 수 없을 이 마음.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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