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애.
여자 혼자 키우는 애.
그래서 독하고 무서운 애.
배려 없이 나불대는 입방정에 어느 정도 적응하였다 방심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집에 반찬 그득 해놓았으니 군것질하지 말고 잘 챙겨 먹으란 엄마의 당부를
흘려 듣고 동네 슈퍼에 갔다가 흰소릴 들었다.
"쟤가 걔야? 어휴, 즈그 엄마 닮아 깐깐하게도 생겼네."
"지 엄마보다야 백배 천배 낫지. 쪼그만 애가 살림도 야무지게 잘한대."
"그럼 뭐해. 결국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니 인스턴트나 사가는 걸. 한참 잘 먹어야 하는데 저게 뭐람."
"일부러 그러겠어. 쟤 엄마가 벌어야 하니까 다른 엄마들처럼 챙길 여력이 없을 테지."
"그거야 그 여자 사정이고 애는 무슨 죄야. 부모 잘못 만나서."
다만 오동통 면발 라면이 먹고 싶었을 뿐이다.
이 썩는다고 날마다 단속하는 에이비씨 초콜릿이랑.
가게 문턱을 절반 이상 넘어간 것도 아니고 내 몸이 고스란히 그 곳에 머물러 있는데
유령소녀 취급하며 멋대로 지껄이는 아줌마들.
나이가 어리면 말귀도 못 알아듣는다 생각하는 걸까.
분하고도 억울하여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만 여자 혼자 키우는 아이라 저 모양이라는 소리가 나올까 봐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가게 문을 나선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적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기.
혹여 아는 얼굴과 마주칠까 두려워 숨 가쁜 뜀박질을 했다.
집까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지금 안방이고 라면 봉지는 멀찍이 떨어져있다.
흑.. 엄마아.. 엄마..
오늘따라 구슬프게 울리는 엄마란 이름.
왜 엄마는 하필 나의 엄마로 태어나서 이런 모욕을 감당해야 하는가.
나를 태어나게 만들고 찾지 않는 아빠란 사람도 밉고
없는 사람 취급하며 찾아가도 나오지 않는 외가댁 식구들도 밉다.
그리고 라면 하나 먹겠다고 이 사단을 낸 내가 제일로 밉다.
우리 엄만 일도 잘 하고 살림도 잘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