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먼지 Sep 23. 2021

나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해외살이를 하면서...


토요일 밤, 이제 거의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 스페인,  세비야

#일상으로 돌아온 스페인,  

어느 덧 스페인으로 이사하고서도 6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스페인은 7월부터 국민 70% 백신 접종률을 달성하며 친구들, 가족들과의 만남은 자유로워졌다.  

아직까지 직장들은 재택 근무를 유지하고 있지만 9월 부터는 그래도 많은 직장들이 대면 근무를 시작하고 학교들은 전면 대면 수업을 실시한다고 한다.  

정부는 진작 해외에서 마스크 사용을 자유화 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마스크를 꽤나 잘 쓰고 다녔었는데

1~2주 전부터는 확연히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는 뭔가 습관처럼 쓰고 있지만 여전히 맨 얼굴의 사람들을 보면 뭔가 과한 노출을 한 것처럼 부끄럽고 어색한 느낌이다. 습관이란 참..ㅎㅎ



#'나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시아버지 댁에서 살다가 5월부터 우리 집에서 살게 되며 나의 일상을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한국에서 하고 있는 자잘한 일들을 하고 오후에는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평온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50대에도 한국어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한국 알바들이 내 커리어가 될 수 있을까..?"

멕시코 2년, 콜롬비아 2년, 잠시 머무는 해외 살이가 아닌
정말 본격적 해외 살이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내 마음은 항상 약간의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한국보다 물가가 상대적으로 많이 싼 멕시코와 콜롬비아의 경우
겨우 1~2년 씩 거주하며 가까스로 직업을 찾았다 해도
턱없이 낮은 월급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한국의 작지만 소중한 알바들은 나에게 커다란 버팀목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살기 시작한 스페인은 다르다.
어쩌면 내가 산 한국에서의 인생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아야 할 곳이기도 하고 
물가도 한국이랑 비슷하지만 유로화는 원화보다 가치가 높기에 유로화를 버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다. 

지금껏  갇혀 있던 생활 속에서 변명의 여지를 남겨두며 스트레스 없이 편안한 생활을 유지해왔지만
이제 그런 아슬아슬하지만 꿀같던 부업과 생활의 줄다리기를 그만둬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백신을 맞으러 가는 어느 날,
오토바이 위에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
"만약 그래도 된다면, 적어도 언제까지...?"

한국어 수업의 경우, 어느 순간 50대가 된 나의 수업을 듣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을까 싶었다.
한국 일은 커리어가 될 수 없는 알바라 부업 정도로 가질 수는 있지만
이 일 때문에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당장 손에 쥐어지는 몇 푼 때문에 앞으로의 몇 년을 날려버릴 것 같았다.

스페인에 이사하고 나서는 우리가 살 집을 꾸미고
내 거주증을 신청하면서 정신없이 또 해외이주 시작에만 시간을 쏟다가 
이제서야 갑자기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어쨌든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 이제는 더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였다.


#작은 거 뭐라도 하고 싶었던 걸 해 보자

그렇게 지금 내가 할 수 있고 그래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중 고르니 
타 학원에서 수업은 하되 내 수업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어 수업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나에게 잘 맞았고
누구나 그렇듯 나도 항상 유튜브나 SNS를 통해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학원 소속이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껏 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일단 시작하기 덜 부담스럽게  
SNS를 통해 아주 짧은 한국어 컨텐츠를 올리기로 마음 먹었다. 


마음이 울적할 땐 그림을..ㅎㅎ


#간발의 차로 받은 쓰라린 해고 통보 한국과의 정리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걸까?
일을 그만두겠다고  메일을 쓰려던 그 시기 쯤
먼저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한국의 부업에서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한지 꽤 됐었는데
어쩌면 그 때부터 나는 '아, 이제 끝나겠구나..'라는 것을 직감하고
본능적으로 제2의 계획을 탐문하게 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도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해서 6년차가 되가는  부업이라  마음이 좀 씁쓸했다. 

남편한테 이야기 했더니 아니 어차피 너도 그만두기로 마음 먹어놓고
잘된거라고 다독여 주었지만  울적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위안을 주는 남편, 울적할 땐 바다, 세비야는 바다가 가까운 편이라 좋다. 

#문제는 게으름과 성급함  

'자, 그럼 시작해볼까?'

울적한 마음을 잊기 위해 일단 시작해 봤다. 

SNS계정 만들고, 이것 저것 정보 서칭을 하는데 시간이 훌쩍~

10초짜리 만드는데도 시간이 들었지만

조금씩 정보를 찾고 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주먹 구구로 시작했다.  

남들이 할 때는 엄청 쉬워보였는데

나는 뭐 하나 작은 거 하는데도 시간을 홀라당 날려버리는지..

세비야의 8월, 45도가 넘는 더위에 일은 더뎌지고 

게으름만 늘어가는데 마음은 그럴수록 더 조바심이 났다.  

다시 한번 '이게 맞는 걸까..'고민도 했다.  

뭐 그리 대단한 거 한다고ㅋㅋㅋㅋ 


#아무튼 시작

어쨌든 게시! SNS에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팔로우가 생길리는 없다고들 하기에

단 몇만원이라도 SNS 마케팅 비를 지불해서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게 너무 아깝다고 1유로, 2유로에도 손을 벌벌 떨었더랬다. ㅎㅎ 

그래도 돈이 좋긴 한건지...광고가 확실히 많은 팔로워 들을 만들어 주었다. 

정말 존재하는 팔로워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콘텐츠는 하루에 하나라도 꼬박 올리려 노력했다. 


#가까스로 만든 수업 하나 

스페인어로 한국어 가르치는 것도 벌써 레드오션 대열에 들어선 지 꽤 됐다.그래서 콘텐츠를 올리며 스페인보다 아직 더 익숙한 콜롬비아에  수업을 열어봤다. 



멜랑꼴리한 마음과 어울리는 사진, 마음이 울적해서 보는 것들도 감성적으로 보게 된다. ㅎㅎ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어~
한명도 메세지가 안오면 어쩌지...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광고 덕으로 문의는 많이 들어왔다.

처음으로 학생들을 받고 조율하며 학원 관리자들의 수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열었던 콜롬비아 수업,
생각보다 내가 콜롬비아를 잘 몰랐나 싶었다.

다양한 계층, 다양한 지역에서 어린 학생들과 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다시 한 번 열악한 콜롬비아의 현실을 느꼈다. 

내가 살았던 콜롬비아의 행복한 삶은 혜택받은 계층의 사람들과 만나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그리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한 반을 만들었다는 것에 너무 위안이 됐다. ㅎㅎ

#그래도 새로운 설렘
지금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현재 멕시코 수업도 하나 둘 만들고 
매일같이 별거 아닌 콘텐츠라도 만들어서 꾸준히
올리고자 하는 목표로 여전히 발길질 중이다. 

그래도 일단 시작을 하고 나니, 마음은 이전보다 평온하다. 


< 시원한 맥주와 아름다운 풍경이야 말로 일상의 힐링 >


#조금 더 행복한 쪽으로..

가끔은~아니 사실은 매일,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과연 맞는 것일지 의문을 둔다. 


일보다 삶을 택했지만 그로 인해서 나의 마음은 더욱 '일'을 그리워하고 있다. 

삶보다 일을 택했을 땐 그토록 '삶'을 그리워 했으면서 말이다. 


요전날, 한국 친구와의 통화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결국 어떤 것도 월등히 행복할 순 없고

다만 여러가지 삶의 방식 중 그나마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며

친구와 나 모두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는 대화를 이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좀 쑥스럽고 간지럽지만...ㅎㅎㅎ 


#그럼 나는 어떤 게 더 행복할까? 

행복이란 말은 거창한 것 같고 그래도 "어떤 게 더 즐겁고 마음이 편할까?"를 생각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선택하기 조금 더 쉬운 것 같다. 


작은 일들에 조마조마하며 매번 새로 시작하고 찾고 적응하고 해야 하는 것이 좀 힘들긴 하지만,

'삶'에 중점을 둔 지금은 한국에서 달려왔던 경주같은 삶에 비해 확실히 나를  안락하고 즐겁게 한다. 

그래도 내가 진짜 행복한 게 뭔지 의심하는 것은 살면서 끊임없이 반복하지 않을까 싶지만.. 


여기 저기 살아보며 조금은 위태롭지만 다양하게 경험하는 삶?

꼬박 꼬박 월급에 맥주 한 잔에 행복한 삶?


여전히 많은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지금은 어느 것이 조금이라도 더 내 마음을 채워준다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며 이 점을 아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외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뭘 정말 좋아하는지 뭐에 행복해 하는지 모른채

'사회가 옳다고 정하는 대로 가는 것이 정답'은 아니였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행복한 내가 주인공이 삶,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에 행복한 삶이 

사회가 말하는 일명 '잘 나가'진 못하고 조금 비루해 보일지라도

그런 삶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평온해 보였다.  


#조금은 노력! 

다시 한번, 지금 살고 있는 현재가 중요하다고 마음에 새기며

미래에 이 지금을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하루에 하나 

난생 처음 겪어본 무더운 여름과 함께 나름  혼란스러웠던 여름도 끝나가고 차분하게 그간의 일을 다시 생각해 본다. 한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고충일 수 있지만 나에겐 조금 힘들었던 시기.

차분히 하루에 하나 씩, 내가 마음 먹은 걸 해보면서 한 걸음씩 나가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나만의 것'을 시작하며 새로운 시작이 실패가 되더라도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다.  


But I'm a creep

하지만 난 찌질이에

I'm a weirdo

괴짜일뿐이야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난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걸까? 


10대에 20대에 30대에 매번 들어도 내얘기 같은 ㅠㅜ 라디오 헤드(Radio head)의 Creep 

매거진의 이전글 해외 살이 6. 임신 종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