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조차 내 감정을 확실할 수 없는 시대
이메일을 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 표현을 자주 쓴다.
"이렇게 하세요."라고 쓰기에는 혹여 강압적으로 들릴까 봐, 조심스럽게 나의 의견을 전달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다 보니 문장의 끝에 자주 붙이게 된다. 이메일을 다 쓴 후 다시 읽어 보면, 한두 문장만 남기고 대부분 고쳐 쓴다.
습관적으로 불필요한 말을 덧붙이고 있는 셈이다.
이런 나의 언어 습관에 예민해져서일까. 방송을 보다가도 ‘~한 것 같다’는 표현이 유독 귀에 들어온다. 특히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이나 스포츠 경기의 선수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많이 나타난다.
자신의 감정인데도 '기분이 좋다, 슬프다'가 아니라 그럴 것 같다고 추측하는 듯한 말투를 사용하는 게 어색하다. 혹시 나만 예민한 것일까 하고 찾아보니, 오래전에도 누군가 이런 생각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반가웠다.
심한 경우 ‘너무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라는 16년 전 그분의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글쓴이는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대가 ‘같아요’라는 말의 사용을 빈번하게 만든 것 같다고 했다. 당시 나는 이십대라 미처 인지하지 못했지만, 세상을 뒤덮은 불안과 불확실성이 이미 오래된 현상이었다는 생각에 씁쓸함이 몰려온다.
13년 전 또 다른 분도 이 현상을 지적했지만 최근 자료는 찾지 못했다. 불확실성이 더 심해진 시대에 이제는 '같아요'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진 것일까.
문득 아래 기사를 보다가, 가전제품에서 자동차까지 모든 것이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지고, 나의 취향과 기분에 맞게 수시로 바꿀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진 것도 같은 이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향이 다양화, 세분화되어서가 아니라 혹시, 그게 우리의 기분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 그런데 카멜레온처럼 계속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일까. 아니면 개성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일까.
지금의 내 기분조차 확신할 수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