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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Jan 12. 2021

엄마의 전화

수술을 마치고 친정집에 머물렀더니 엄마와의 관계가  끈끈해졌다. 바쁜데 혹여 방해가 될까 전화 걸고 싶은 마음도  참던 분이 하루에 꼬박  번씩은 전화를 하신다. 매일 수술한 부분이 괜찮다고 얘기해도  묻고  물어보시며 잘됐다고 기뻐하신다. 엄마는 이제 많이 늙었고 나도 이제 조금은 어른이 되었는지 귀찮을법해도  매번  아프다, 다리는 어떻다, 약은 어떻게 먹고 있다며 상세하게 답변한다. 그저 이런 질문에 안도할만한 답을 듣고 기뻐하는 것이 엄마의 작은 위안이고 기쁨인데 어린 시절의 나는 너무 이기적이었다. 자꾸 했던 얘기  한다며 귀찮아하기도 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늘어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까짓 것  안부와 나의 생활에 대해 수십 번 이야기한들 뭐가 힘들까 싶다. 그땐 이런 것을 몰랐고 지금은 조금   같은 나이가 되었나 보다.

티비 프로그램에서  배우가 제주 책방들을 이야기하다 우리 책방이 좋았다며 소개를 했다. 오늘도 엄마와 하루 종일 뭐했는지 종알종알 이야기 나누다 문득 티비에서 우리 책방 소개해줬단 소식을 전했다. 마치 대통령이 다녀가기라도   기뻐하며 방송을 보고 싶다고 하셨고 오후에 재방송하는 시간을 알려드렸다. 엄마는 방송하기 10 전부터 티비 앞에 대기하고 앉아 카운트 다운하듯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황급히 전화를 걸어 “이제 시작한다, 끊어!”하며 기대감을 표하던 엄마. 방송이 끝나고는 천사같이 이쁜 배우라며, 책을 많이 읽는 훌륭한 배우라고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하셨다. 그렇게도 좋을까. 설렘과 기쁨에 들떠있는 엄마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엄마는 “이것이 오늘의 행복!”이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그동안 이렇게 자주 전화하며 수다를 나누지 못해 얼마나 섭섭했을까 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아이가 없어 아직도 엄마가 되어  적이 없기 때문에 엄마를 충분히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있다. 잘해드리지 못한 게 너무 많고 어릴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멋대로 행동했던 것들이 하나씩 생각나 마음이 아프기만 한데, 엄마는 여전히 “우리 효녀라며 나를 치켜세우신다. 엄마에게 기쁨을 주는 신통방통한 존재라며 그게 그냥 효도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무안함도 들고 미안함도 들지만 고맙다고 엄마가  키워줘서 그렇다고 답한다. 그러면 엄마는  편하게 기쁜 밤을 보내실 것이다. 존재만으로 사랑을 받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내가 무엇을 잘하거나 대단한 것을 주지 않아도 그저 ‘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이렇게 과한 사랑을 받는다는 , 이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인  같다.  행해지는 기적에 너무 무디게 행동하며 살아왔던  같다. 지금보다  다정하게 말 한마디  나눠야지, 아직도 나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대하셔도 귀찮아하지 말고 나도 아이처럼 엄마의 사랑과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표현해야지, 고맙단   많이 해야지, 사랑한단 말은  많이 해야지. 이런 작은 다짐을 해본다. 바빠도 여긴 눈이  온다고, 오늘은 된장찌개 끓여먹었다고, 우리 집은 따뜻하니 걱정 말라고 그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멀리 있어야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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