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법사가 되는 비법
인생의 마법사가 되는 비법
산다는 것이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이나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이 산다는 것의 경이로움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하루하루의 경험과 배움에서 삶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면)을 어렴풋이 깨우칠 뿐이다. 삶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보여주는 작가 미하엘 엔데는 ‘마법’이라는 소재를 즐겨 쓴다. 그에게 마법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보여주는 도구다.
미하엘 엔데의 ‘마법 학교’를 읽으며 나는 ‘마법’을 점차 ‘인생’으로 바꿔 읽고 있었다. 마법 학교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마법의 비법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비법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했다. 마법의 핵심은 마음속에 감춰진 소원의 힘을 다루는 것이다. 소원의 힘이 생기려면 그 소원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마법의 첫 번째 방법이자 전제 조건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언지 모른 채 살아간단다. 다만 알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지.” 마법의 시작점은 마음이었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이 섞인 마음에서 진실로 내 것인 마음을 골라내는 것. 어쩌면 모래 속에서 금을 찾는 것처럼 힘들겠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닌 바람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가? 삶이 그렇게 간단하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을 미하엘 엔데가 간과할 리가 없다. “나쁜 마법사는 자신의 진정한 소원이 무엇인지 몰라서 자신과 일체가 되지 못하는 사람에게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단다.”
이 동화에서 가장 소름 돋는 부분은 나쁜 마법사에 대한 짧지만 중요한 묘사였다. 아무것도, 어느 누구도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좋아하지 않는 존재가 바로 나쁜 마법사였다. 인생에 나쁜 마법사의 힘이 흘러들어온다면, 사람도 그처럼 변해가지 않을까? 욕심 또는 무모한 소원이 인생을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해 화살을 겨누게 되는 비극으로 향하는 것은 나쁜 마법사의 영향일 지도 모른다.
이 비법을 토대로 마법 학교 학생들은 소원의 힘을 다루는 방법을 하나씩 연습해 간다.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는 마법, 멀리 떨어져 있는 물건을 눈앞으로 불러오는 마법, 물건을 변신시키는 마법, 그리고 이것들을 인간을 대상으로 적용시키는 마법과 하늘을 나는 마법. 여기까지는 마법 학교 선생님이 그 방법을 보통 세계에 알려도 된다고 허락한다.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는 마법의 방법은 그 물건과의 교감, 눈에 안 보이는 물건을 불러오는 마법은 상상력이 핵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러온 물건은 다시 자기 자리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온화한 선생님이 다소 엄격하게 반복하는 대목은 바로 이것이었다. “무능력자와 진실하지 못한 사람만이 자기가 진실로 필요치 않은 물건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거야.”
교감과 상상력은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 중에서도 핵심적인 능력이다. 마법의 비법이 삶의 비법을 은유한다고 할 때 교감과 상상력을 잘 발휘할 수 있다면 삶의 윤활유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불러온 타인의 마음은 타인의 것이라는 것을 유념해 내 것처럼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물건을 변신시키는 마법은 바꾸고자 하는 물건과의 공통적인 속성을 찾는 게 비법이다. 공통적인 속성을 찾다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너의 어려움이 나의 어려움일 수 있다는 생각. 인류가 위기를 극복하는 마법적인 순간의 바탕에는 늘 이런 생각이 있었다.
그다음 세 가지는 아직 보통 세계에서는 적용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마법 학교 선생님은 주인공 ‘나’에게 방법을 알려선 안 된다고 당부한다. 투명인간이 되는 마법과 물건과 생물을 창조하는 마법이다. 여기서도 선생님은 앞서와 마찬가지로 꼭 필요한 것만 창조하고 나머지는 모두 다시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모든 피조물이 그것의 창조자를 변화시킨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해.”
작가가 이 세 가지 마법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에 나오는 두 아이 머그와 말리는 좋은 뜻으로 주인공 ‘나’를 돕기 위해 날아다니는 동물을 창조하지만 그가 괴물이었던 것을 보면 엔데는 인간의 창조와 관련한 인간의 한계를 직시한 것 같다. 작가가 말하는 창조의 핵심은 세세한 상상력인데 귓불의 모양과 눈동자, 날개의 재질까지 완벽하게 상상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인류가 이룩한 뛰어난 과학적 성취에도 인류의 현재 모습이 완벽에서 점점 멀어져 이 우스꽝스러운 괴물처럼 느껴지는 것에는 작가의 회의적인 태도가 옳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마음을 제대로 알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욕심내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향해 나와 같은 애정을 갖는 것. 마법 학교 선생님이 이 보통 인간들에게 허락한 이 정도 마법의 힘만 제대로 발휘해도 우리는 인생의 마법사로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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