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바람

아이와 함께 한 남프랑스 여행기

by 허진

꽃 화분을 사려고 동네 외곽의 화원에 들렀다. 제라늄과 치자, 마거리트를 차례로 골랐다. 계산대로 가려는데 마당 한 구석에서 우윳빛 꽃잎이 하늘거렸다. 작약이었다.

“백작약은 처음 봐요.”

“귀한 겁니다. 있을 때 들여가세요.”

커다란 꽃송이에 장미보다 우아한 향이 어려 있었다.

“작약도 같이 주세요.”


차에 꽃을 가득 싣고 해 저무는 길을 천천히 달렸다. 길 양옆으로 논밭이 펼쳐진 시골길이었다. 제라늄의 쌉쌀한 향과 치자의 달콤한 향, 작약의 은은한 향이 적절히 어우러져 코끝에 맴돌았다. 향기는 문득 나를 머나먼 이국땅으로 데려갔다. 남프랑스였다. 눈앞의 시골길이 남불의 반질반질한 돌길로 이어졌다.


부부 수학여행


남편과 나는 결혼 후 기회가 닿는 대로 여행을 떠났다. 휴양을 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견문을 넓히기 위한 일종의 수학여행이었다. 우리는 유적지와 골목길, 박물관과 시장을 누비며 새로운 세상의 안면을 익혔다. 여행이 우리의 일에 당장 쓸모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제관념이 비슷하게 느슨하던 우리는 신혼 초 공부와 여행은 빚을 내서라도 하자고 합의했고, 그 약속만큼은 확실히 지켰다.


여행은 차근차근 시선과 생각의 폭을 넓혔다. 삶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고 우리는 원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대도시보다 나무가 많은 조용한 마을에서 살기, 텔레비전을 없애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아이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기. 여행을 통해 우리는 원하는 삶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삼 년 정도는 이렇다 할 여행을 하지 못했다. 대신 여행 자금은 적잖이 모을 수 있었다.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때 큰맘 먹고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구입했다. 우리에게는 파리의 예술과 남프랑스의 자연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예술에 대해 박식한 것은 아니지만, 미술관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떤 시간보다 사랑했다. 또 어릴 때 시골에 살았던 나는 끝없는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싶었다.


7월 초의 파리는 해가 늦게 져서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기 좋았다. 한국은 이미 습하고 더웠지만 파리는 초가을처럼 선선했다. 걷기만 해도 행복한 날씨였다.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센 강변과 좁은 골목길을 아침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걸었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공원에서 쉬었다. 아이는 공원의 놀이터를 좋아하고, 남편과 나는 놀이터 옆 노점에서 구워주는 누텔라 크레페를 좋아했다. 네 살 아이와의 여행은 놀이터만 있으면 제법 순조로웠다. 다행히 파리의 공원에는 놀이터는 물론 회전목마가 갖춰진 곳도 많았다.


우리는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에 들렀다. 2014년에 개관한 미술관이었다. 파리의 서쪽 끝의 불로뉴 숲속에 위치한 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범선 모양의 외관부터 압도적이었다. 건축물이 관심 많은 남편은 미술관을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평범한 구조가 아니어서 아이도 흥미를 보였다. 물론 아이가 더 흥미를 보인 것은 불로뉴 숲 자체였다. 숙소에서 준비해 온 체리와 몇 가지 간식을 숲속 벤치에 앉아 먹었다. 숲에는 제법 규모가 큰 놀이공원이 있었는데 아이는 꼬마 열차를 몇 번이고 탔다. 어느새 우리에게는 미술관에 한 번 가면 놀이터에 한 번 가는 암묵적인 규칙이 생겼다.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불로뉴 숲 놀이공원

파리에서 사흘간 머문 후 고속열차를 타고 남쪽의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로 향했다. 엑상 프로방스는 ‘프로방스의 Aix’라는 뜻이다. Aix는 라틴어로 ‘물’인데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 붙은 이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길모퉁이를 돌 때면 분수대가 나타났다. 엑상 프로방스는 천 개의 분수가 보물처럼 숨어 있는 분수의 도시였다. 아이는 분수대를 발견하면 마구 달려가 손을 담갔다. 분수대에는 종종 개구진 아이들이 매달려 있었고, 사방으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물보라처럼 퍼져 나갔다.



엑상 프로방스의 숙소는 커다란 살구나무와 포도 덩굴이 있는 교외의 농장이었다. 아침 식사로 호스트는 살구를 따서 마당에 있는 식탁에 올렸다. 갓 삶은 따끈따끈한 달걀, 하드롤 빵과 버터, 과일로 차려진 간소한 식사를 한 후 엑상 프로방스 시내로 향했다. 우리는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걸음이 닿는 대로 쏘다녔다. 때마침 마을 광장에서 로컬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프로방스산 해바라기나 라벤더 비누, 검붉은 체리, 살구, 올리브 스프레드 등 지역의 특산품을 팔았다. 체리가 달고 싸서 종이봉투로 한가득 샀다. 1kg에 5천 원 정도밖에 안 했다. 우리나라의 1/3 가격이었다. 우리는 혓바닥이 새까매지도록 신선한 체리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숙소에 있는 포도나무
로컬 시장의 체리


눈과 입과 귀가 두루 즐거웠던 엑상 프로방스를 뒤로 하고 천 년의 고도 고르드(Gordes)로 향했다. 본격적인 렌터카 여행의 시작이었다. 고르드에는 12세기에 지어진 세낭크 수도원이 있었다. 석회암으로 지은 건물 위로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었다. 오랜 세월을 견딘 수도원을 바라보는데 코끝이 찡했다. 찡한 마음은 곧 알 수 없는 위안으로 바뀌었다.



침묵 수행을 하는 수도원은 고요하고 경건했다.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 외에는 바람 소리와 새 소리, 종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앞마당에는 라벤더밭이 있었다. 수도사에게 노동은 수행의 일부였다. 수도사들은 라벤더에서 얻은 오일과 꿀을 판매해 생계를 영위했다. 회백색 수도원과 보라색 라벤더의 조화는 묘한 구석이 있어 눈을 뗄 수 없었다. 오래전 보라색은 부와 권력을 상징했다. 청빈한 수도원과는 대척점에 있는 색이었다. 라벤더가 고지대의 돌밭에서도 잘 자랄 만큼 강인해서일까? 심신을 안정시키는 향 때문일까? 처음 씨를 뿌린 수도사들이 어떤 이유로 라벤더를 기르게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수도원 마당 한편에서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성구 뽑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무 십자가 목걸이를 한 관계자 중년 부인에게 나도 신자라고 말하자 쪽지와 볼펜을 내밀었다. 우리는 자매라며 당신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기도할 내용을 쓰라고 했다. 나는 가족의 건강과 번역가라는 꿈에 대해 썼다. 부인은 따뜻하게 웃으며 날 포옹해 주었다. 뜻밖의 환대 속에 이방인으로서의 긴장이 풀어졌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수도원을 나왔다.

보랏빛 지평선, 라벤더 필드


다음 행선지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발렌솔(Valensole) 라벤더 필드였다.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 속에서 자동차 창문을 활짝 열고 신나게 달렸다. 차창 너머로 밀밭과 체리밭이 펼쳐졌다. 바람이 부지런히 시큼한 호밀빵 냄새와 달콤한 체리 향기를 실어 날랐다. 황금색 밀밭은 초록색 올리브밭과 노란색 해바라기 밭으로 이어졌다. 눈을 돌리면 산과 하늘 그리고 밭이었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눈에 거슬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전원의 프로방스 시골길은 이동하는 여정도 여행의 일부였다. 그때 저 멀리서 하늘과 맞닿은 보랏빛 지평선이 보였다. 라벤더밭이었다.


길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웠다. 내리자마자 풀 향에 가까운 라벤더 향이 코로 훅 들어왔다. 밭은 고개를 양옆으로 끝까지 돌리지 않으면 눈에 다 담기도 힘들 만큼 장관이었다. 남편과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보랏빛 물결을 그저 바라보았다. 아이만 꽃 주위로 윙윙대는 벌 때문에 소리를 꺅꺅 질러댔다. 타이밍이 좋았는지 그 시간에 관광객은 우리밖에 없었다. 아니, 한 팀이 더 있었는데 큰 소리로 불러도 들리지 않을 만큼 라벤더밭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어렴풋이 하얀 드레스와 검은 정장이 보였다. 결혼을 앞둔 커플이었을까? 덕분에 영화 속 한 장면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평선까지 가보자며 이랑 사이로 들어갔다. 벌을 무서워하는 아이를 안고 걷다가 가도 가도 끝이 없어 포기하고 돌아 나왔다. 무엇을 했는지 시간이 한 시간이나 훌쩍 지나 있었다. 신기한 점은 피곤한 채로 라벤더밭에 도착했는데, 아로마테라피 효능인지 우리 모두 고단함은 잊고 술에 취한 사람처럼 헤실거리며 차에 올랐다는 것이다.



어느덧 햇살이 황금빛으로 누그러졌다. 우리는 숙소를 예약해 둔 인근 마을로 향했다. 동화 같은 전설이 내려오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꼽히는 무스티에 생 마리(Moustiers-Sainte-Marie)였다. 마을 중간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흘렀다. 물소리가 들리는 언덕에 마을에서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었다. 식당의 사장은 할머니였는데 가슴이 반쯤 드러나는 깊이 파인 원피스를 입고 볼드한 팔찌를 차고 있었다. 패셔너블한 할머니 사장은 식당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음식을 보고서는 그 자신감이 이해되었다. 전식부터 디저트까지 모든 요리가 작품이었다. 그날 맛본 비스큐 파스타는 살면서 먹어본 파스타 중에 가장 맛도 좋았다. 프랑스는 본질만큼이나 외형도 중시하는 듯했다.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속담도 있지만,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외형이 진실과 무관하다는 믿음이 어쩌면 오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프랑스 여행의 비밀


다음 날 아침 일찍 마을을 산책하고 마지막 여정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파리로 돌아가기 위한 공항이 있는 니스가 여행의 종착지였다. 그 사이 베르동 협곡을 거쳐 그라스(Grasse)에 들렀다. 샤넬의 대표적인 향수 No,5의 원료인 장미와 재스민이 재배되고, 세계 향수 원액의 60%가 생산되는 ‘꽃과 향수의 도시’였다.


도시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반질반질한 돌길을 걸었다. 도시 구경은 늘 천천히 걷기로 시작되었다. 도시의 리듬에 우리의 보폭이 맞춰질 때까지 걷는 것이다. 돌길 양옆으로 상아색과 레몬색, 연주황색의 오래된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햇살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했다. 꽃이 자라기에 최적이라는 그라스의 햇살은 마음의 구김살까지 펴줄 것 처럼 따사로웠다.


골목을 지나는데 머리 위로 건물과 건물을 잇는 전선 같은 것이 보였다. 선에서 한 번씩 증기가 ‘치이익’ 뿜어져 나왔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꽃향기가 물씬 풍겼다. 우리 가족을 비롯한 관광객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증기는 분명 향수였다. 거리에서 받는 향수 세례라니, 느닷없는 은총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관광객들은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이 같은 표정으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 웃음이 퍼져나갔다. 그 순간, 나는 이 도시에 마음이 활짝 열렸다.


자세히 보면 사진 위쪽에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전선이 보인다.


향수를 뿜어내는 선은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도시를 한 번이라도 다녀간 사람은 아마 꽃향기로 이곳을 기억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남프랑스는 향기의 고장이었다. 라벤더 향기, 밀밭 향기, 체리 향기, 꽃향기.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를 물으면 나는 늘 주저 없이 남프랑스를 꼽는다. 향기의 힘으로 생생하게 기억이 저장된 덕분이다. 후각은 다른 감각과 달리 중간 과정 없이 바로 대뇌로 전달되는데 이 과정에서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인근 부위가 함께 자극된다고 한다. 냄새를 맡는 순간의 기억과 감정이 대뇌에 함께 저장되는 것이다.


눈앞의 돌길은 다시 시골길로 바뀌었다. 이국의 나른한 꽃향기를 불러낸 제라늄과 치자와 작약이 차 바닥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 꽃들의 향이 남프랑스의 향기와 비슷했을까? 어느새 중학생이 된 아이는 그 여행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의 머릿속 깊숙이 저장된 향기가 어느 날 문득 남프랑스의 햇살과 향기를 불러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란히 돌길을 걸으며 향수 세례를 받던 초여름의 행복이 필요한 날에 이 향기가 실린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와 주었으면 좋겠다.


수도원의 종소리를 들으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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