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어쩌다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게 되었을까?

IT 업계에서 UI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던 내가 어쩌다 보니 지금은 패션업계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

디자이너지만 나와 상관이 없다 여길 정도로 패션이라는 분야엔 관심이 하나도 없던 사람. 그런 내가 니트 만드는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 미싱을 자연스레 익히게 되었고 함께 런웨이를 보는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흘러가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나의 관심분야는 점차 더 넓어지게 되었고 그만큼 더 많이 배우게 되었다.


예전부터 나는 취미가 곧 배움이었고 특기 또한 배움이겠다 생각할 정도로 배움의 행위를 매우 사랑했다. 관심이 가는 분야가 생기면 곧장 책이나 클래스를 알아보곤 했다. UX/UI, 편집디자인, 웹퍼블리싱 같은 디자인 외에도 캘리그래피, 피아노, 기타, 드럼, 수채화 등... 정말 다양한 클래스 및 워크샵에 참여했다. 예전부터 아르바이트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배울 수 있는 곳을 선호했다. 덕분에 북아트와 가죽공예 그리고 커피 및 각종 음료와 디저트 레시피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인들이 무언가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자연스레 해당 분야를 찾아보곤 했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성향이 있다. 때문에 배울 점이 보이면 바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종종 생기는 편. 그런데 정말 사랑하는 남자 친구(현 남편)가 Knit maker라니! 자연스레 나의 관심 목록엔 니트가 추가되었다.



니트와 일반 옷을 구분하지도 못하던 내가 니트를 고치고 봉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니트 전용 니들이 있는데 (일반 코바늘과는 다르게 생겼다.) 남편과 교제할 당시 선물 받은 니트에서 실 한가닥이 걸려 늘어난 적이 있다. 그때 남편의 주머니에서 얇은 니들 하나가 나오더니 마법같이 실 한가닥을 원래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이제 그 정도는 내게도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단 사실이 아직도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니트를 만드는 남편은 원래 패션과는 전혀 상관없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금융 쪽으로 가기 위해 금융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동시에 워낙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매 시즌 나오는 패션 런웨이를 즐겨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확고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추고 있던 사람.

그런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남편은 금융업계에 회의감을 갖게 되면서 길을 잠시 방황하게 되었는데 조심스럽게 어머님이 남편에게 제안을 하셨다고 한다. 아버님이 하시던 니트 사업을 돕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당시 느낌을 남편은 한마디로 말하길 '등잔 밑이 어둡다.'였다. 남편은 왜 이 생각을 그동안 못했을지 조금 놀랐다고 한다. 그렇게 니트 공장에서 귀한 젊은 인력이자 인재가 되어 10년 정도 일을 해오고 있는 우리의 니트 메이커!


그리고 그런 그에겐 점차 고민이 생겼다. 이 일이 너무나 적성에 맞았던 남편은 가능한 계속 니트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제조업의 현실은 인력비가 값싼 해외 제조업의 대량 생산에 치여 점차 공장의 개수가 줄고 있는 상황. 물가가 오른다고 하지만 패션업에겐 해당이 안 된다. (특히 제조업에게는-)

대량 생산은 대부분 해외 공장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비교적 대량 외주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큰 기업으로 갈수록 비용을 받는 절차 과정이 터무니없이 길어서 (생산 후 1~3개월 안에 비용을 받으면 빠른 편) 생산을 다하고도 보충할 돈이 없어서 돈을 받기도 전에 결국 문을 닫는 공장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기업의 갑질이 너무 심하기도 하고...ㅜ 그래서 우리 공장은 더 이상 대기업 OEM은 하지 않는다.)


때문에 남편은 앞을 내다보았을 때 자신이 직접 기획부터 생산, 모든 것을 핸들링하여 좋은 퀄리티 대비 좋은 가격에 파는 니트 전문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했고 마침 나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기에 충분히 내가 함께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단 생각을 했다.(그런데 이렇게 많은 곳에 관여하게 될 줄은 몰랐지 'ㅁ'...!)

2018년, 우리는 결혼을 했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니트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촬영을 어떻게든 마무리했다. 아임웹 홈페이지를 통해 코딩 없이 손쉽게 자사몰을 오픈할 수 있었고 동시에 네이버 스토어에도 제품을 올렸다. 여러 제품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 개인적으로 의미 있던 터틀넥은 장미 자수를 포인트로 한 니트 제품이다. 내가 일러스트로 그려낸 장미를 자수로 박은 제품인데 뭔가 나와 남편의 첫 콜라보 작품 같아서 나 홀로 만족했던 ㅋㅋㅋ 지인들 위주로 판매가 되었던 우리의 첫 번째 시도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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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ment.kr


그러다 (감사하게도) 공장이 너무 바빠지는 바람에 잠시 브랜드는 뒤로하고 있었는데 2020년 여름 어느 날 인터넷으로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제조업 지원사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의류 제조업 몇 군데를 뽑아 브랜드 런칭을 지원해주는 사업이었다. 이건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바로 남편에게 공유를 했고 많은 경쟁률 속에서 운명적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우리는 당연히 합격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지원사업과 우리의 목적이 정말 많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브랜드를 한번 소소하지만 런칭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그게 정말 큰 가산점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2020년 여름부터 시작해 3개월밖에 시간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2020년 FW 브랜드 런칭을 준비하게 되었다. 디자이너가 필요한 제조업에게는 서울시에서 디자이너도 연결해주기도 했지만 우리는 이미 너무나 훌륭한 실력자 패션 디자이너 지인이 있었다. 누구나 알만한 우리나라 패션 대기업 브랜드에 있다가 스카우트되어 계속 해외에 있던 언니인데 그때 당시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한국에 와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그 언니 역시 평소 남편과 니트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어 했던 터라 짧은 시기에 열정으로 다 같이 하나의 시즌을 만들어냈다. 언니의 리드 하에 남편과 나는 무드보드부터 시작해 기획하고 컨셉을 만들었으며 샘플이 나올 때마다 언니 의견을 물어보았다. 확실히 하나의 필드에 전문적으로 있는 사람이었기에 정말 많이 배웠고 그때 당시 배움은 우리에게 큰 자양분이 되어 우리 부부가 지금도 계속 브랜드를 운영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서울시 지원 사업을 통해 우리는 정말 빠르게 온전한 시즌 하나를 만들 수 있었고 전문적인 룩북 촬영을 했으며 손쉽게 '무신사'와 '29CM'에 입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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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usinsa.com/brands/testament


그렇게 우리는 본격적으로 패션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떻게든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해냈고 그 경험들은 우리에겐 너무나 귀중한 첫걸음이자 큰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그 이후로는 우리가 경험하고 배운 것을 토대로 꾸준히 작업물을 내고 있다. 직접 모델을 컨텍하고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촬영해보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환경 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해내가고 있는 중이다.


관심사가 끊임없이 추가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배움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패션은 경험하면 할수록 정말 어마 무시하게 커다란 분야임을 느끼게 된다.

인문학, 음악, 예술 등 정말 다양한 분야로부터 모티프를 가져와 예상치 못한 컨셉을 기획해서 옷을 만들어내고 룩북 이미지 하나하나에 그 결과물을 트렌디하게 녹여내는 등 패션 디자이너야말로 어쩌면 디자이너 중에서도 제일 만능꾼 일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일련의 브랜딩 프로세스가 매 시즌마다 나와야 하는 곳이기에 그 누구보다 트렌드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리고 번뜩이는 기획력과 실행력, 실력과 속도 등 모든 걸 다 갖춰야 하는 사람들.... 이 바로 패션 디자이너 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감사하게도 나는 지금 내 상황이 참 즐겁다. 지루할 틈 없이 바쁘게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작업하고 있다. 매일이 성장하는 기분이다.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영상 작업, 웹디자인, 상세페이지, 인스타 운영, 그리고 카메라 촬영과 보정까지... 정말 많은 것들을 하게 되었고 배우게 되었다.


https://www.instagram.com/testament_official/


UI 디자인만 하던 내가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제는 나도 점차 '나의 것'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나의 그래픽으로 전부터 하고 싶었던 굿즈 브랜드를 오픈하고 싶다. 마침 나에겐 니트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있으니 니트 굿즈를 중심으로 다양한 굿즈를 펼쳐내고자 하는 목표가 생겼다.


때마침 작업실도 생겼겠다.(해당 이야기는 나중에 또 글로 써봐야지) 내가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환경이 다 갖추어졌으니!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그리고 후회하기 전에 지금 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로 결심하고 또 결심한다.


그저 회사원이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사업을 꿈꾸게 되었을까?

앞 일은 정말 모를 일이다.

내가 디자인을 하게 된 것도, 남편을 만난 것도, 그리고 브랜드를 운영하게 된 이 모든 상황들이 그저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