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you need is Love
아침에 홍여사가 ‘러브액츄얼리’란 영화를 봤느냐고 묻는다. 봤지. 기억이 안 나서 보고 또 보고 했지.
근데 왜?
아니 그냥. 유명한 영화라길래... 한번 보려고 넷플릭스 들어갔더니 없더라구.
원래 넷플릭스 같은 거 안보는 사람인데, 일전에 휴대폰을 바꾸면서 서비스로 무료이용권 한 달 치를 주었단다. 한 달 동안 열심히 봐야 하는데 뭐 별로 볼 게 없다신다.
러브액츄얼리에는 다양한 사랑이 나오는데, 친구의 아내가 된 키이라 나이틀리를 좋아하는 귀여운 찌질이가 나오는 부분이 제일 좋았다. 아마도 나의 찌질한 과거가 오버랩되면서였을까. 나만 찌질한게 아니었어 뭐 그런 위로받는 기분 같은 거.
사랑이란 이름을 프리즘에 넣고 쫘악 스펙트럼을 펼쳐보면 다양한 색깔이 나올 텐데, 짝사랑은 그중 어디에 속할까. 찌질하고 못난 사랑이므로 아마도 색깔로 따져보면 초록과 파랑 중간 어디쯤이어서 구분도 안 되는 곳에 위치하지 않을까.
부끄럽게도 이런 짝사랑을 아주 많이 경험했다. 두 번 정도는 심지어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여자한테 들켜서 매우 한심한 눈초리를 받은 적도 있다. 제주에 살고 있는 우리 지수에 대한 이야기는 브런치에 한번 올렸던 적이 있고, 또 한 명은 나중에 알고 보니 우연하게도 홍여사의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홍여사를 졸라서 졸업앨범을 보여달라 해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애만 태웠다. 결국엔 그녀의 초등학교 때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게 질투는 아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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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이니 두 경우 모두 당연히 어긋났겠지. 우리 지수에게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좋아했었다>고 고백했다. 수 십 년이 지나버린 고백이라서였을까. 내 입을 떠난 고백은 마치 오래된 편지가 꼭꼭 싸매여져 있다가 공기와 만나는 순간 먼지처럼 바스러지는 것처럼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슬프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주 유쾌한 시간을 보냈고, 고백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해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좋아한다고 고백하던 순간 관계가 끝나버렸다. 그렇게 될 거라고 짐작을 하고 있었다. 내 맘속에 그녀가 있었지만, 그녀 마음속에는 다른 남자가 있었다. 질척거리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돌아섰다. 죽고 못 살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나 보다. 힘들지 않았다.
짝사랑은 비교적 안전하다. 초록과 파랑사이 어디쯤에 있는 안전구역의 색깔이다. 참고로 위험한 색은 주홍과 주황 어디쯤이다. 손가락 정도는 가볍게 잘라버릴 수 있는 위험한 기계의 안전커버 색깔이다.
들키지 않은 짝사랑은 은밀하게 감추어두고 있다. 혹시라도 우연히 터져 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지금도 틈만 나면 ‘짝사랑 전문가’라고 놀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선' 또는 '금' 그런 게 중요하다. 여기서 '금'이란 '금 밟으면 죽는다‘에서의 '금'과 용례가 유사하다. 홍여사는 그런 게 없다. 수시로 선과 금을 넘나들면서 나를 놀릴 것이 분명하다.
사랑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냥 지나가면 섭섭한 부부간의 사랑이 있지. 홍여사는 내가 허구한 날 투덜거리기 때문에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부부간의 사랑을 짝사랑처럼 은밀한 욕구가 드러나는 범주에 넣을 수는 없지. 의리로 산다고 농을 치는 우리와 달리 박범신 작가는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한다. 확실히 작가는 같은 말도 멋지게 늘려 쓰는 재주가 남 다르구나.
<오래 함께 산 원만한 부부가 맞이하는 마지막 단계를 나는 ‘인간주의 단계’라고 부른다. 서로에 대한 낭만주의적 욕망들은 대부분 해체되고 오로지 깊은 인간적 우의로 맺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청춘이 모두 지나갔다는 쓸쓸한 자의식을 공유하면서, 생로병사로 이어지는 유한성의 길목에 함께 서 있다는 존엄한 결론을 붙잡고 걸어가면서, 서로의 존재를 눈물겹게 확인하는 단계이다>
홍여사. 당신과 나. 이제 의리만 남은거 맞다니깐.
마지막으로 우리 집 꼬맹이. 이거야말로 답이 없는 짝사랑이다. 아빠 좀 봐줘. 응.
허접한 짝사랑타령은 그만하고 비틀즈의 노래나 들어야겠다. All you need is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