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갑질’ 이야기

무모했던 박 대리의 이불킥

by 지노그림

기술영업(세일즈 엔지니어)을 17년째 하고 있다. 가끔 “어, 이거 갑질 당하고 있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발끈하던 성질은 그동안의 영업 생활 동안 많이 죽어버렸고 웬만한 스트레스에는 내성이 생긴 것 같다. 달리 말하면 늙고 노쇠해졌다는 말이다.

그래도 가끔 ‘갑질’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듣게 되면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IMF로 모두가 어렵던 시절 이야기이다.


나의 첫 직장은 설계용역회사였다. XX엔지니어링이라고 불리는 회사였는데 아내처럼 문과계통의 사람들은 기계를 고치고 만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다른 일이라고 설명을 해주어도 문과계통의 처가 식구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래, 자네 무슨 일 하고 있다고 했지?”라고 또다시 묻곤 하셨다.


내가 하던 일을 디렉터리를 만들어 나간다고 하면 대충 이런 순서대로 만들게 될 것이다.

기술직- 설계용역- 플랜트 설계- 환경플랜트 설계- 자원회수시설 설계- 사업관리.


설계용역은 사업주로부터 의뢰받은 내용대로 플랜트(공장) 설계를 하고 이에 필요한 각종 계산, 도면작성, 보고서 작성 등을 수행하는 일이다. 그중 사업관리부서에서 맡은 일은 주어진 물적, 인적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분배하여 프로젝트를 경제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기계, 전기, 토목, 건축 등 각 설계부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스케줄을 관리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는 허드렛일이나 다름없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거의 매일 야근이었다. 아마 지금도 그 관행이 없어졌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사업주의 의도에 따라서 설계의 기본방향이 흔들리고 재설계를 해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재설계에 재설계를 하다 보면 어느새 처음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아마도 재설계를 할 때마다 비용 청구를 했다면 사업주는 심사숙고해서 재설계를 요청하겠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냥 “갑”이 요청하면 수정하고 또 수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당연히 노동생산성은 바닥을 기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아마도 사업주에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을 거라고 짐작한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나”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그 일을 대체하게 될 테니 말이다.


1999년 D건설회사로부터 민간제안사업서를 작성하는 설계용역업무를 맡았다. 선배사원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이제 조금씩 프로젝트를 리드해야 하는 위치에 오게 된 것이다. 이때의 직급은 대개 사원 딱지를 떼고 과장이 되기 전인 “대리”들이다. 말 그대로 누군가를 대리해서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 “대리”들이 올바른 방향으로(여기서 올바른 방향이란 사업주의 의도대로 진행하는 방향을 의미하며 절대로 올바르지 않을 때도 있다.) 마차를 끌고 나갈 수 있도록 프로젝트 매니저(PM)는 마부 노릇을 하게 된다.


당연히 PM은 이런 일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조언과 갈굼의 애매모호한 경계에 서서 대리들이 마차를 끌 수 있도록 한다. 아마 직장 내 갑질이라고 하면 이 부분에서 조언 대신 욕설을 퍼붓거나 노골적인 갈굼으로 대리들을 끝없이 좌절하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이런 힘든 시절을 겪어야 대리 딱지를 떼고 과장-차장-부장이 될 수 있었다.(이 땅의 대리들에게 희망을)


대리가 되고 나니 몇 개의 자질구레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아주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해낼 수 있는 일들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좋은데 자만감이 함께 생기게 된다. 이때 당사자의 입장에서 자신감과 자만감은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오버“를 할 잠재적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사건의 발단은 D 건설회사에서 설계용역업무 감독을 위해 우리 회사에 상주하던 담당이었다. 계약서에 명기되는 않은 자질구레한 일들을 은근슬쩍 업무내용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뭐 그런 정도야 사업주들에게서 흔히 보아왔던 행태인지라 별로 개의치 않았다. 회사 내부의 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으니 몇 시간의 야근을 하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부조리한 일들에 화는 났지만 참을만했다.


경제성 분석이라는 것이 있다. 이 사업을 수행할 경우 어느 정도의 비용으로 어느 정도의 수익을 몇 년에 걸쳐 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분석하는 일이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소요될 비용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를 분석하는 일은 그 당시 설계용역업체로서는 수행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일에 정통한 전문 회계사가 여러 가지 인자들을 고려하여 수익분석을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담당자로서 나는 이 일을 추가하는 데 있어서 부당함을 언급했고 담당은 X만 한 대리한테 업신여김을 당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회의 도중 오가는 말이 거칠어지고 “오버리액션”을 할 잠재적 준비가 되어있던 나는 회의실을 박차고 나오면서 “이런 일을 할 바엔 차라리 계약을 타절 하는 것이 낫겠다”라고 한마디 쏘아붙이고는 그냥 퇴근해 버렸다.


나중이 들은 바로는 건설사 담당이 분에 겨워서 회사 내 여기저기를 “대리 무서워서 일 못하겠다”라고 고함을 치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단결근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던 날 밤에 과장이 찾아왔다. 나로 인해 D건설회사와의 관계가 험악해졌다고 내가 가야 일이 해결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한심한 과장이라 생각했지만 회사일에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따라나섰다.


도착한 룸에는 벌써 거나하게 취한 부서장과 건설사 담당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아마 내 인생에 두 번 다시없을 모욕적인 요구를 하게 된다.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면 없던 일로 하고, 계속해서 우리 회사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성 분석도 건설사에서 회계사를 고용해서 추진하겠다고 했다. 한참을 쳐다보다가 도대체 왜 내가 이런 인간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면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음날 부서장에게 이 프로젝트에서 나를 제외시켜 달라고 요청을 하고 남은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육체의 피곤함은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 무너진 것은 그렇게 쉽게 극복되지 않았다. 그렇게 휴가를 보낸 후 회사로 복귀했지만 다시 예전의 회사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겉보기엔 똑같은 회사생활이었지만 영혼이 빠져있었다. 그렇게 수개월을 그럭저럭 보냈다.


나를 믿고 지켜보던 나의 사수에게 먼저 이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했다. 아쉽지만 나를 잡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 밤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들어서 충분히 알고 있고 아마 자기도 그런 일을 겪었으면 계속해서 부서장을 볼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결국 자기들이 할 거면서 왜 우리를 코너를 밀어 넣었을까? 갑질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건가? 벌써 20년이 지난 이야기이지만 그때의 사수와 후배 사원을 만나 소주 한잔 할 때면 지금도 가끔 그 이야기를 꺼내 나를 놀리곤 한다. 그 날 이후로 아주 사람이 사악해졌다고, 회사를 그렇게 그만두어서 자기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내 기억과는 아주 다르다. 난 그래도 깔끔하게 뒷정리를 하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내 생각이었나 보다.


그 회사를 그만두고 2년 정도 건설회사에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다가 지금 회사에 자리를 잡았다. 직종이 기술영업이니 발주처에게 잘 보여야 하는 일이 많다. 가끔씩 발주처에서 갑질인 듯 아닌 듯 한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내용을 검토해 보고 내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가급적 해주려고 한다. 권한 밖의 일이어서 해 줄 수가 없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하면 또 그런대로 지나가기도 한다.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것이 상대적인지라 내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꼬였던 일도 풀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시간이 필요하고 약간의 갈등을 있을 수 있겠지만 17년 동안 기술영업을 하면서 겪어본 바로는 사람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래도 한 가지 나에게 칭찬하고 싶은 일은 그 날 내 자존심을 죽이고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던 것과 그 회사를 그만두고 내 자존감을 되찾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날 이후 난 좀 더 단단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온전하게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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