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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ul 21. 2020

프라하- 연인들의 도시로 떠난 가족여행

방구석 드로잉 여행  4

  참 다행이다. 연인들의 도시로 소문이 자자한 곳을 혼자가지 않을 수 있어서.

체코는 아내가 꼭 가고 싶어 하던 곳 이었지만 딸아이가 여행을 같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랄 때까지 꾹 참고 미루고 있었다. 여행의 기분을 북돋우기 위하여 딸아이는 거실 벽에 ‘체코에 가면 어디를 가볼까’ ‘체코가 가면 무엇을 먹을까’ ‘체코에 가면 무엇을 해볼까’ ‘체코야!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온갖 촌스러운 문구를 붙여 놓고 즐거워하고 있다. 정작 체코가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참 다행이다. 직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어서.

환승을 하지 않는다면 11시간 정도라도 갈 만하다. 기내식 2번 먹고 영화 2편 보고 조금 자다보면 어느새 도착할 시간이 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아내의 경험으로는 여행 중 가장 힘든 시간은 11시간 비행 후 환승을 위하여 대기하고 있을 때라고 한다. 화장은 뭉개지고 몸에서는 냄새가 나는 느낌이고 소금에 푹 절인 배추처럼 처지고 아무튼 최악의 경험이었다고 한다. 쳇, 매번 환승해서 볼로냐로 가야하는 나는 어쩌란 말이고.


  참 다행이다. 딸아이와 함께 가족여행을 하고 싶었다는 아내의 소망을 들어주어서.

딸아이가 크게 아프지 않고 자라주어서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어 고마웠다. 물론 팔 골절 2회, 손가락 골절 1회 등 자잘한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뭐 그럴 수 있는 일 아닌가. 한번은 여자아이가 왜 그렇게 골절사고를 내냐고 했다가 ‘그런 성차별적인 말은 취소하라’고 하는 통에 즉시 사과를 한 적도 있다. 아니 그런데 꼬마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을 배우는 거지.


  출발일이 다가오면서 한껏 기분이 고조된 딸아이는 ‘샤랄라’한 옷과 조그마한 가방을 사가지고 왔다. 이 조그만 가방 안에 선생님께 줄 기념품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사서 가득 채워 오겠다며 즐거워한다. 참 다행이다. 가방이 너무 작아서.

  아주 오래전에 했던 드라마 때문일까.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가 보다. 심지어 공항 안내판에 ‘입국수속’이라는 한글이 적혀 있을 정도이다. 출국장을 나오니 호텔로 데려다 줄 픽업차량이 기다리고 있다. 크리스티나. 러시아 아가씨. 호텔로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는데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프라하공항에서 코린시아 호텔까지 그리 멀지 않다. 브세흐라드라는 곳에 있는데 보헤미안의 초대 왕이 묻혀 있는 곳이란다. 전설인지 실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차에 적응되지 않은 지라 새벽에 눈이 저절로 떠진다. 어제 저녁도 생략한 채 그냥 잠이 들어서 배가 고프다. 아침식사 시간이 되자마자 식당으로 내려간다. 아침을 먹으면서 딸아이가 갑자기 자기 손가방을 찾는다. 곰곰 생각해보더니 아무래도 비행기에 두고 내린 것 같다고 울상이다. 여행 시작하자마자 살아오면서 가장 큰 위기를 맞은 것처럼 침울해한다. 손가방에 들어있는 것은 우리한테는 별거 아닌지 몰라도 꼬맹이한테는 중요한 것이었겠지. 교통카드, 아람단 카드, 조그마한 토끼 인형, 병원카드(이건 뭐지?) 암튼, 프라하 여행 마지막 날 렌터카를 가지러 공항에 가서 찾아보자며 안심을 시킨다. 아이는 아이다. 언제 침울했었는지 잊어버리고 다시 신나서 아침뷔페식당을 돌아다닌다. 줄을 서서 기다려서 자기 입맛에 맞는 오믈렛도 만들어오고 마치 물 만난 물고기 같다.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끝내고 슬슬 프라하 관광을 떠나보려고 한다. 어제 호텔 로비에서 만난 루마니아 친구가 40유로에 투어+점심+보트탑승까지 할 수 있는 일일투어를 같이 가자고 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물론 전문가가 최적의 동선으로 안내하는 것을 따라가면 좋겠지만, 우리 꼬맹이가 어디에 꽂힐지 몰라서 우리끼리 내키는 대로 비효율적으로 돌아다니는 것으로 결정했다.


  호텔데스크에 가서 원데이 트레블 카드를 어디서 구하냐고 물었더니 서랍에서 쓱 꺼내면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이는 무료탑승. 친절하게도 비세흐라드에서 프라하 성까지 최적의 루트를 상세히 알려준다. 꼬맹이는 처음보는 트램이 신기한가 보다. 버스도 아닌 것이, 전철도 아닌 것이···…. 꼭 장난감 기차를 타고 가는 것 같다고 신이 났다. 아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여행의 재미를 알고 있는 것 같다.


  트램노선표를 꼼꼼히 들여다보니 중간에 푸니쿨라를 탈 수 있는 곳(Ujezd)이 있다. 꼬맹이에게 물어보니 당연히 가자고 한다. 이른 아침이라서 푸니쿨라를 타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표 검사를 하는 영감님이 직접 운전도 하신다. 계단처럼 생긴 푸니쿨라를 타고 위로 위로 올라가니 종착역은 공원이다. 전망대로 있고, 성당도 있고, 엥! 조랑말도 있다. 전망대를 걸어서 올라갔다가는 오늘 하루 에너지를 다 쓸지도 모르기 때문에 일단 생략. 공원을 돌아다니다 보니, MIRROR MAZE가 있다. 대충 뭔지 알겠는데 우리 꼬맹이 또 꼭 가보고 싶다고 조른다.


  뭐 글자 그대로 거울 미로방이다. 신이 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꼬맹이. 자기를 찾아보라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깨끗한 거울이라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 헷갈린다. 꼬맹이는 그게 재미있어서 자꾸 도망 다닌다. 결국 관리하는 아주머니에게 경고를 먹는다. 너무 심하게 돌아다니지는 말라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고, 미소를 띠고 있지만 분명한 경고로 꼬맹이는 살짝 주눅이 들었다. 미로는 이제 그만하고 올록볼록 거울방으로 데려간다. 거울이 요술을 부려서 난장이도 되고, 키다리도 되고, 뚱뚱이도 되고······. 어른들도 재미있어 한다. 재미있어서 놀다보니 너무 시간이 지나갔다.


  프라하성으로 가는 트램 안에서 만난 모녀가 프라하성을 가려면 어느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지 물어본다. 나도 초행길이라서 잘 모르지만 아마 트램에 타고 있는 사람 대부분이 프라하성으로 갈 거니까 따라 내리면 될 거라고 전문가적인(?) 조언을 해 주었더니 맞은 말이라며 깔깔 웃는다. 따님과 함께 여행 중인 영국 아주머니인데 선한 미소가 보기 좋다.


  드디어 프라하성도착. 체코말로는 프라즈키 흐라드. 아마 흐라드가 ‘성’인가 보다. 거울 미로방에서 너무 오래 놀았다보다. 어마어마한 줄이 기다리고 있다. 일단 식구들을 줄에 세워놓고 앞으로 가보니 줄 맞다. 테러 때문인지 경찰이 일일이 가방을 검사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날씨가 비교적 선선해서 기다릴만하다. 프라하성과 성당내부 그리고 황금소로를 가려면 입장표를 사야한다. 식구들은 성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 찍고 놀고 있는 동안 나는 줄을 서고 있다.   


  자 이제 구경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예쁜 철제문을 지나고 나니 멋진 광장이 나오네. 이상하다. 광장이 아니라 성당이 나와야 하는데······. 이런 잘 못 나왔다. 그 와중에 우리 꼬맹이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둘러보니 식당이 보인다. 식당에 가서 화장실을 좀 써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하니 ‘Of course’라며 친절하게 화장실을 알려준다. 체코사람들 불친절하다고 누가 그랬어? 인터넷 세상엔 내가 경험해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정보가 너무 많다.


  볼 일을 보고 나온 꼬맹이가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인다. 에잇! 기왕 온 김에 시원한 음료수나 한잔 하고 가기로 하고,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나는 맥주, 식구들은 레모네이드와 주스. 프라하 시내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멋진 곳이라서 일어나기가 싫어진다. 그래도 소화해야 할 일정이 있는지라 일어나서 다시 줄을 서고 프라하성에 가서 성당구경과 황금소로 구경을 한다.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성당, 아름다운 스테인글라스. 하지만 아이는 빨리 황금소로를 보고 싶어 한다.


  드디어 황금소로. 조그마한 상점들로 이루어진 길이 50미터의 좁은 길이다. 명성에 비하면 조금 허접해 보인다. 우리 꼬맹이가 ‘체코에서 보물찾기’류의 만화책을 보고 꼭 가봐야 한다고 우겨서 온 곳이다. 꼬맹이는 신이 나서 ‘골렘의 전설(?)’을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공예품으로 가득 찬 골목은 우리 꼬맹이 왈 ‘천국’과도 같다고 한다. 결국 인형을 하나 사고야 말았다. 체코의 전통의상을 입은 예쁜 아가씨인형. 아이의 행복지수는 최고조에 달한 듯하다. 좁은 문을 빠져 나오니 꼬맹이 배가 고프다고 투덜거린다. 처음으로 보이는 식당으로 무조건 가기로 하고 메뉴는 무조건 꼴레뇨와 굴라쉬. 굴라쉬는 그저 그렇지만 꼴레뇨는 입에 딱 들어맞는다. 맛에 놀라고 어마어마한 양에 놀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돼지족발을 말도 안하고 맛있게 먹는 딸아이를 보면서 아내와 나는 미소를 짓고 있다.    


       

  점심을 먹고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다시 관광에 나선다. 가야 할 곳은 많이 남았는데 이런 저질 체력으로 과연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카를교로. 강변을 따라 가는 길이 제법 운치가 있다. 꼬맹이는 관광이 아닌 여행 모드. 거리의 예술가도 구경하면서 놀멍놀멍 따라온다. 아 쫌 빨리 가자.


  카를교에 도착하니 비눗방울 예술가가 보인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순 없지. 우리 꼬맹이 또 끼어서 한동안 비눗방울 잡는다고 폴짝 폴짝 거린다. 카를교는 명성에 걸맞게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넘치는 예술가와 다리 밖으로 밀려 나갈 만큼 많은 관광객. 솔직히 빨리 벗어나고 싶다. 카를교를 지나 시계가 있는 광장으로 간다. 이제 식구들은 완연하게 지친 기색이 보인다. 아무래도 시계탑 광장을 끝으로 호텔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갑자기 느긋해진다. 광장에 자리를 잡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괴상한 쇼 구경을 하고 있다. 어설픈 불쇼에 차력쇼가 더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아일랜드에서 왔다고 하는데, 체크무늬 전통치마에, 문신에, 치마 밑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아서 얼핏얼핏 ‘그것’이 보이기도 하는 아무튼 기괴한 쇼를 보고 있다. 박수를 쳐야 하나. 야유를 보내야 하나. 결정을 하지 못하겠다.


  자 이제 아쉽지만 호텔로 돌아가야 할 시간. 딸아이와 엄마는 체코전통의상에 꽂혔다.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호텔로 가기 전 IP Pavlova 역 근처를 찾아보기로 한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문은 연 곳도 별로 없고 전통의상 따위는 더구나 찾아 볼 수가 없다. 서울에서 갑자기 한복집을 찾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 결국 포기하고 돌아와서 스프링롤, 똠양꿍, 인도네시아식 볶음밥, 해산물 요리 그리고 맥주와 달콤한 디저트까지 이루지 못한 쇼핑을 맛있는 음식으로 대신하고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다시 시내에 나가서 야경을 보기로 했었는데 우리 꼬맹이 몹시 피곤하다고 호텔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우긴다.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 야경투어는 다음번으로 미룬다. 결국 여행하는 동안 매일 밤 피곤한 우리 꼬맹이 덕분에 프라하의 야경은 상상 속에 남겨두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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