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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ul 22. 2020

쿠트나호라: 해골성당 방문기

방구석 드로잉 여행 5

  혼자 여행을 할 때는 개략적인 루트 정도만 생각해 두고 행동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계획을 세워 두었다 하더라도 즉흥적으로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도 괜찮았다. 혼자 하는 여행에 계획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떤가. 하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다르다. 어느 정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두어야 하고 숙소도 일정에 맞게 모두 예약하고 교통편도 해결해 놓는 등 어느 정도는 ‘일’처럼 해두어야 한다. 특히 아내와 아이는 불확실한 상황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오늘은 미리 예약해 둔 투어를 따라가면 되는 일정이다. 쿠트나호라의 해골성당과 바바라성당 그리고 현지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오면 된다. 전세버스로 쿠트나호라로 이동하면서 옆자리에 앉은 스웨덴에서 의사를 하고 있다는 아주머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살짝 들었다. 한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쿠트나호라는 걸어서 모두 돌아볼 수 있는 휴먼사이즈의 아주 조그마한 마을이다.


  해골성당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특별히 이런 것에 관심은 없지만 투어에 포함되어 있으니 따라가긴 한다. 옛날에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뼈를 모아 내부를 장식하였으니 성당이라기보다는 무덤이라고 해야 적당할 듯하다. 제대로 된 무덤에서 안식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희생되어서였을까. 영어가이드가 뭐라고 설명하는데 식구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어떤 해골은 너무 작아서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긴 의료체계도 없고 전염병은 신이 내린 천벌이라고 생각했던 암흑의 중세시대였으니 유아 사망률이 높았더라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 꼬맹이 무섭다고 얼른 나가자고 조른다. 해골성당은 뒤로 하고 성당주변의 나무 그늘에서 다른 사람들을 기다린다. 성당 주변에도 많은 묘비가 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이렇게 성당 옆에 공동묘지가 있는 것을 종종 보인다.      



  메멘토 모리. 항상 죽음을 기억하라. 자만하지 말고 언제라도 죽을 수 있으니 오늘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공동묘지를 보고 있자니 죽음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지금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게 느껴져서 괜히 울컥해지는 순간 해골성당 구경을 마친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다음 목적지는 바바라 성당이다. 플라잉아치가 특징인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성당이라고 한다. 고딕양식 성당은 하도 많이 봐서 이제 척 보면 알 것 같다. 내부에 들어가니 역시 화려한 스테인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내부가 시원해서 세 식구 나란히 성당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주위를 둘러본다. 평화롭다. 너무 평화스러워서 졸음이 쏟아진다. 아이와 엄마는 소곤소곤 뭐라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짓고 있다. 참 평화로운 곳이다.


  오늘 일일가이드를 하고 있는 데이비드가 슬쩍 옆에 와서 앉으며 자기소개를 한다. 자기도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 가족여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아직 한국이나 일본을 가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가족과 함께 가보고 싶다고 한다. 지역가이드, 마라톤 선수, 인생코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일은 체코가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라고 한다. 많은 관광객들이 프라하만 보고 가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라며 조만간 프라하 외곽지역을 탐방하는 트레킹 투어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6인-8인의 소규모 그룹투어로 운영할 생각이며 트레킹과 함께 주변 지역의 역사, 문화 그리고 음식까지 곁들인 아주 멋진 투어가 될 거라도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투어가 기획되면 다시 한 번 프라하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잠깐이나마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한다. 아직 데이비드가 한국에 온 적은 없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하여 서로의 근황을 확인하고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한국에 온다면 기꺼이 내가 데이비드 가족의 일일가이드가 되어 주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점심시간이다. 데이비드를 따라 간 곳은 나름 이 동네에서는 유명한 ‘맛집’인가 보다. 벌써 사람들이 와글와글 북적이고 한국사람들도 간간히 보인다. 식당이름은 어려워서 기억이 나지 않는데 혼자 여행 중인 한국학생 말로는 ‘맛집’으로 소문이 난 곳이라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한다. 일단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내 평생 또 올 일이 있을까 싶다. 메뉴는 오면서 버스 안에서 이미 정해 두었었다. 현지식당에서 굴라쉬를 제대로 먹어 보겠다고 주문했는데 어제 먹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식구들 입맛에는 굴라쉬보다는 꼴레뇨가 나은 것 같다.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은 반나절 만에 친구가 되었는지 식사보다는 대화에 더 즐거워 보인다. 옆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조용히 음식만 드시고 계신다.


  체코가 맘에 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음식의 양이 푸짐하다는 것과 서유럽에 비교하면 저렴한 가격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맥주가 아주 좋다. 데이비드 말로는 황금색 맥주인 라거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들이 체코의 플젠사람들이라고 한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필스너가 바로 첫 번째 황금색 맥주라고 아주 자랑이 대단하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현지에서 마시는 필스너는 모든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루마니아에서 온 친구들은 벌써 몇 잔의 맥주를 마셨는지 얼굴이 발갛게 익었다.                                  


  가볍게 동네를 산책하면서 전세버스를 세워둔 곳으로 이동한다. 오는 길에 맥주를 과하게 먹은 친구들을 위하여 주유소에 들려 볼 일을 보게 해주는 데이비드의 배려가 고맙다. 하마터면 실례를 할 뻔 했다. 여행을 온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모두 느긋하다. 호텔로 돌아오니 저녁 뷔페 전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데이비드에게 호텔 근처에 체코전통의상을 살 수 있는 곳이 있냐고 물어 보았더니, 근처에 쇼핑센터가 있긴 한데 전통의상을 파는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지하철로 한 정거장거리. 꼬맹이가 지하철 표를 사보겠다고 자판기 앞에 갔는데 잔돈이 없다. 지하철역안의 가게에 가서 잔돈을 바꾸어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더니 용감하게 가게로 가서 뭐라고 하더니 다시 돌아온다. 잔돈을 바꿀 필요가 없이 가게에서 바로 지하철표를 구매하면 된다고 한다. 우리 꼬맹이 며칠사이에 눈치가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쇼핑센터는 좀 허접하다. 역시 체코의상은 구할 수 없다. 슈퍼마켓도 가서 체코과자 하나 사고, 문방구점에 가더니 꼬맹이는 예쁜 수첩을 하나 고른다. “이거 너무 비싸지” 하면서 눈치를 본다. “흐음, 비싸긴 한데 엄마 아빠는 쇼핑을 하지 않으니 너라도 해서 좋다”고 하니 신이 난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서 셋이서 나누어먹고 투어에 포함되어 있던 저녁뷔페를 먹으러 호텔로 돌아온다. 아마도 오늘 저녁도 프라하 야경을 보기는 틀린 것 같다. 예상대로 저녁식사 후에는 모든 것이 귀찮아져서 호텔에서 쉬기로 한다.


  같이 여행을 하면서 아이는 이제 혼자서 무엇이든 직접 해보려고 한다. 슈퍼마켓에 가면 혼자서 물도 사보려고 하고 계산대에 가서 의젓하게 계산도 하고 나온다. 버스 출발 전 데이비드에게 가더니 화장실을 다녀오고 싶다고 한다. 데이비드가 주변의 화장실 근처까지 모녀를 데려다주었다. 나오면서 환한 웃음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지만 혼자서 해보려고 하는 것이 기특하다.


  엄마 아빠를 따라 다니면서 특별한 관심이 없는 듯이 행동하지만 우리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깨 넘어 본대로 따라 해보면서 배우는 것이겠지.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바로 나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조심을 하게 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을 기다렸다가 타는 것, 트램에서 빈자리가 있더라도 주위를 둘러보아 나보다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 식당에서 너무 큰소리로 떠들지 않는 것 등 사소한 일이지만 이런 것들을 보고 배우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많은 부분을 엄마 아빠에게 의지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혼자서 서야 하는 날이 오겠지. 그런 때가 너무 빨리 오지 않았으면 한다. 맥주도 같이 마시고 싶고, 운전도 가르쳐주고 싶고, 남자친구와 싸우고 돌아온 날에는 같이 흉도 보고 싶고······. 아직은 아이와 쌓아야 할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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