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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Oct 02. 2021

이탈리아 친구들 휴가에 진심입니다

 부온 페라고스토 Buon Ferragosto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 있다. 휴가를 즐기는 것이다. 일을 하는 이유가 멋진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해도 크게 무방하지 않다. 특히 여름휴가와 크리스마스 휴가는 길고도 길어서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외에도 카톨릭의 나라답게 각종 성인의 날이 휴일인 경우도 많다.


도시마다 모시고 있는(?) 수호성인이 다르다. 베네치아는 성 마르코(San Marco)를 모시고 있다. 원래 모시던 성인은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등급(?) 성인이었다고 한다. 성 마르코가 베네치아의 성인이 된 이유는 도시의 상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성 마르코의 유해를 모셔오면서 부터라고 한다.


이슬람의 카톨릭 수도원에 대한 약탈이 빈번해지면서 마르코의 유골을 보관하고 있던 수도사들은 패닉 상태가 되었고 장사 속이 밝은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적당한 가격을 제시하면서 거래가 성사되었을 거라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일급(?)의 성인을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된 베네치아 사람들의 기쁨은 짐작이 된다. 게다가 마르코의 상징이 날개 달린 사자라니 뭔가 잘 될 것 같은 기운이 도시에 넘치지 않았겠는가.


볼로냐의 성인은 산 루카(San Luca)이다. 10월에 산 루카의 날이 되면 마조레 광장에는 시장이 들어선다. 벼룩시장처럼 잡다한 것을 팔기도 하고 예쁜 수공예품 그리고 주변의 농부들이 생산한 맛 좋은 프로슈토(햄)와 올리브 오일, 꿀과 같은 다양한 농산물도 판매되고 있다. 시장에서 먹거리가 빠질 수는 없다. 핑거푸드에 맥주나 와인 한잔을 손에 들고 어슬렁거리면서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체력에 자신이 있다면 볼로냐 남쪽의 산 정상에 있는 산 루카 예배당까지 걸어서 올라가도 좋다. 산 루카의 날에는 정상까지 올라가는 도로를 막고 차량통행을 금지시킨다. 도로 주변으로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즐비하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손을 잡고 올라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8월에는 성모승천일(Assumption of Mary)이 있다. 8월 15일을 시작으로 2주간의 공식적인 휴가가 시작되지만 보통 한주 먼저 휴가를 시작해서 3주간의 길고 긴 휴가를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8월의 휴가기간을 페라고스토(Ferragosto)라고 부르는데 고대로마의 황제의 축제였던 아우구스투스의 Festival of August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를 떠올리면 벤허의 유명한 장면인 전차 경주 장면이 떠오른다. 우연하지 않게도 8월 16일 시에나의 말달리기 경주인 팔리오가 자연스럽게 연상되기도 한다.


독재자 무솔리니 시절에는 도시의 노동자들도 주변으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이 기간에는 모든 기차표를 반값에 공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본사 직원 중에 마르코가 있다. 걷기를 즐기는 마르코와는 다른 마르코이다. 길을 걷다가 마르코를 부르면 두 세명을 뒤돌아 볼지도 모른다.

코로나 이전의 Ferragosto동안 시칠리아로 휴가를 갔었다고 한다. 굉장히 특이하고 멋진 곳이라고 자랑을 한다.


“시칠리아? 대부의 마피아가 나온 곳 말이야? 안 무서워?”


깔깔 웃으면서 절대 관광객에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돈을 쓰고 가야 시칠리아 사람들이 돈을 벌고 그래야 마피아가 세금을 걷는다고 하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는다.


시칠리아에는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그리스의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아그리젠토에는 멋진 그리스 신전이 남아있다. 이슬람의 지배는 이국적인 음식문화를 남겨 놓았다. 하물며 북유럽의 바이킹까지 내려와서 바이킹 왕국을 건설하기도 했다고 하니 문화적 다양성으로 말하자면 ‘멜팅폿’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마르코 말로는 이런 역사 때문인지 시칠리아 사람들은 종잡을 수 없다고 뒷담화를 하신다. 남의 동네 흉을 보는 것을 보니 마르코도 어쩔 수 없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시칠리아로 휴가를 가는 것은 참 좋은데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가족들은 비행기로 슈웅하고 가고 자기는 볼로냐에서부터 차에 짐을 가득 싣고 운전을 해서 가야 하는 거라고 투덜거린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 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 친구들은 8월이 오기를 몹시 기다리겠지만 나는 더위가 시작되면 슬슬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본사의 직원들은 휴가가 시작되기 전에 각국에 있는 지사에서 몰려든 주문을 처리하느라 몹시 바쁘다.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신경을 쓴다고 해도 실수할 확률이 평상시보다 높아진다.


회사일 하랴 휴가 준비하랴 정신줄을 놓아버린 직원이 사고를 쳐놓고 ‘에라 모르겠다’하고 휴가를 가버리고 나면 그 사고 수습은 지사에서 해야 한다. 해마다 겪는 일이라서 이젠 그런가 보다 하고 무덤덤해져야 하는데...그게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는다.


모두가 휴가를 가버린 소도시의 풍경은 대충 이렇다.


물론 로마나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유명한 관광지야 별 문제없겠지만 그래도 8월에 이탈리아로 여행하는 것은 비추한다.

8월의 무더위는 상상하기도 싫다. 휴가기간에 모든 것이 비싸진다. 호텔비가 특히 그렇다.


피렌체에서 근사한 파니니를 만들어 팔고 있는 식당 주인에게 누가 물었다.


“다른 식당이 모두 문을 닫았을 때 휴가를 가지 않고 파니니를 만들어 팔면 돈의 홍수를 맞을 텐데 어떻게 생각해요?”


이해할  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하지만 Ferragosto 잖아요”


하하하. 내가 이래서 이탈리아 사람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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