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혁명 시대 걸맞는 인재, 한국 교육으론 어렵다” ['2019 미래교육' 현장보고서] (세계일보)
http://www.segye.com/newsView/20190415515566?OutUrl=daum
얼마 전 한 포털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서 이 같은 기사를 읽게 되었다. 4차 산업혁명과 교육에 관한 기사를 읽다 보니 현재 우리나라의 미래교육에 대한 담론이 어디까지 와있는지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글로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특별히 학술적인 근거를 가지거나 그에 준하는 권위를 가지고 주장하는 내용이 결코 아니며 나 역시 모두가 참여하는 교육에 관한 논의에 그저 한 마디 보태보는 것뿐이다.
4차혁명 걸맞는 인재, 한국 교육으론 어렵다 (기사 제목 중)
[설문조사 결과] 현재 한국 교육으로는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인재를 육성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 본문 중)
기사의 제목과 도입부를 살펴보면 글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현재 한국의 교육 실태가 미래를 위한 교육에 부적합하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설문조사를 통한 통계 자료를 근거로 한 대중의 의견이면서 동시에 기사를 작성하는 필진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 문제의식을 보다 자세히 분석해보면 이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 교육이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교육이어야 하며, 곧 그러한 시대에 맞는 인재를 육성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첫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인재라는 말이 생각보다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며,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설사 우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규정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그 자체로 전체 교육의 목적으로 올려져야 하는가에 대한 비판이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인재는 어떤 인재인가? 흔히 사람들이 얘기하는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인 AI와 IoT, 그리고 이러한 기술을 기반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사회가 우리가 예측하는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모습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단지 미래에 자율 주행 자동차가 길거리를 돌아다닌다는 사실, 우리 집의 모든 가구가 인터넷에 연결된다는 사실이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모든 설명일 수는 없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예측이 불가한 현시점에서 그에 적합한 인재를 규정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꾸준히 화제가 되는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 ICT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관련 기술에 보다 적합한 능력인 코딩이나 3D 프린팅을 가르치는 교육이 유행하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교육이 되어야 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특히나 학교교육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고민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학생들의 특정한 능력 향상에 학교교육이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저 하나의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 만약 이같은 논리대로 학교교육이 미래에 각광받는 모든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면 아마 그것이야말로 학교교육의 가장 큰 비효율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교육이 지나치게 규격화되고 학생들의 자율성을 필요 이상 규제하는 교육적 환경은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이다. 학교가 아이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경험과 선택을 마련해주어야 하는 환경이라는 점은 분명하며 학생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경험과 선택에 미래의 사회적 요소를 고려한 분야가 포함되어야 하는 것도 옳은 말이다. 그러나 공교육에 대한 이같은 비판은 오히려 정확하지 못한 주장과 근거 그리고 맹목적인 비난 여론이 맞물려 점차 그 진짜 의미를 잃어가는 모양이다.
기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미래 한국 사회에 다가올 변화 중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저출산, 고령화’를 꼽았다고 언급하며 기사 자체의 논조 역시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의 급감과 이로 인한 대학 정원 미달이 우려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내가 기사를 읽으면서 가장 실망한 부분은 이 통계를 언급한 부분이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그에 걸맞은 인재를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과 인구감소로 인한 사회적 인구 구성의 변화는 간접적이고 거시적으로 상관있는 주제일 수 있어도, 그것이 교육 현장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인과 요소는 아니다. 이러한 통계를 인용하는 것은 기사 전체의 논지를 흐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재 교육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만을 과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인구 구조의 변화는 교육에도 큰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4차 산업혁명과는 별개로 논의되어야 할 교육적 담론이며 인구 문제 그 자체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일 뿐이다.
“한국의 교실은 공장노동에 익숙한 산업사회의 훈육 시스템에 맞춰 획일적으로 만든 일괄감시체제 그대로여서 다양한 교육이 불가능 하다.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창의력과 통합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공간의 혁신이 절실하다.”
위의 발언은 인터뷰에 실린 국가교육회의 의장이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인터뷰의 내용은 이미 근대 교육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 20세기 초 이후로 꾸준히 지적되고 있는 문제의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나는 더 이상 이런 식의 불평에 가까운 비판을 멈추고, 우리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에 관한 보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고 현실에 대한 비판과 지적에 멈춰 서는 담론을 가지고는 우리 교육 현장에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생산적인 담론의 형성을 위해서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파악이 무엇보다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
* 기사 제목에 쓰인 "4차 혁명" 이란 단어는 매우 거슬린다. 정해진 분량 안에서 헤드라인을 뽑아야 하는 기자들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4차 혁명"이라는 실체 없는 단어를 기사에 사용하는 것은 여러가지 오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식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로 정의되는 현상에 관한 것이며 이에 대한 지적을 하고자 할 때에는 해당 단어를 명확하게 명시하는 것이 논의를 바람직하게 이끄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19. 05.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