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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ho Yoo Jan 02. 2017

2016년의 보석들

한해를 정리해봅시다. 


아코메야 이야기: 쌀가게의 경험을 더 색다르게 만들면 전혀 다른 공간이 될 수 있다. 이런 경험안의 공식을 딱 정의내리기는 어렵겠지만 좀 더 몸에 와 닿을 만큼 보고 있으면 그 공식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일본은 가장 효율적인 생산 방식인 Lean과 가장 비효율적인 조직관리 방식인 품의가 같이 공존하는 나라.... 이 모순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누군가 무례하다 답이오길 기다리는게 쓸데없어요.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진실을 취조하는 방법

증인이 모른다, 모른다 하면 그러냐고 다 인정해주면서 점점 알 수 밖에 없는 것을 물어보는거죠
그래도 모른다할거고 그럼 누가 보더라도 위증이죠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분노조절 장애 환자에요… 다음부터 옆에 김남훈씨를 앉혀주세요. 응급처치는 되더라고요.

미국 의료를 개혁할 방법은 블록체인외에는 답이 없나? 뭐 당장 우리도 못하고 있는데.




정말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사람을 해결할 방법은? 오히려 애정어린 포옹이 100마디 상담보다 더 나을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순간은 신뢰가 바닥이고 상대가 나를 해할것이라고 확신할 때인지라.

지금 악플 달리는 정치인, 그가 진짜다.

결국 시키는대로 한다는 것도 선택. 악을 막는 최후 밸브로 살아야합니다.



“그러다 우리 죽어요”하긴 하는데 그럼 내 답은 “그럼 그럴 사업을 왜 해요?”다. 왜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것들을 못하는 구조로 만들어 놓고 다 같이 개고생하려고 하는지…. 그러니 영혼이 털리지 싶다.

다른 분야와 달리 배우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확실하게 오래 걸려는 분야가 머신러닝이나 데이타 분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백에는 이유가 있다.



외주의 외주가 낳은 비극...일리가 없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미국, 유럽 같은 데서 온 백인들한테는 ‘다문화’라고 안 하지 않나요?"

(그러나 아직 미숙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최대 실수는 바로 지나친 신중함이다. 실험을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 실험을 한 후에 실패하는 편이 더 낫다. -- 제럴드 와인버그



애국심이 나라를 망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거다. 

 이랜드에 관한 이런 기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기독교적"이 의미하는 내용이 무엇인가이다. 신앙고백이 그 핵심이라면, 그래서 예수를 고백하는 것이 핵심이라면 이랜드는 기독교기업일 수 있다. 황교안도 신실한 기독교인일 수 있다.  

그러나 구약이 그러하듯이, 성경이 그러하듯이, 신앙의 내용은 결코 신앙고백이지 않다. 여호와께 대한 예배에도 예언자들은 거침없이 우상숭배에 적용하는 "가증"과 "헛됨"을 선포한다. 핵심은, 무엇이 "기독교적"을 규정하는가이다. 그 부분에서 우리네 교회 교육은 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네 교계의 칭의론 논쟁은 정말이지 허망하다. 제대로 믿으면 삶이 바뀌고 안 바뀌면 제대로 믿은 것이 아니라는 논리, 믿는 이는 견인이 따르되 그렇지 않았다면 믿은 것이 아니었다는 식의 논리는 그야말로 말장난의 극치이다.



협업에 대한 교훈 

인간의 뇌는 기계처럼 링크가 될수 없다. (컴퓨터처럼 병렬로 묶어서 바로 2배 속도를 내거나, 분산처리의 효과를 손쉽게 얻을수 없다는 것)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 (그리고 내가 도움 주기로 동의를 하면) 우리는 즉시 두개의 문제를 대면하게 된다.

문제 A - 우리가 팀을 이루게 된 목적/목표

문제 B - 서로를 어떻게 매니징(협력)할것인가

직관 또는 관련 학습 따위 없이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문제 B를 푸는 방법을 잘 모르고 일을 시작하게 되고, 많은 '비효율적인' 조직(팀)들은 B 문제를 풀려고 애쓰다가 정작 문제 A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인간들인)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한다. 우리가 가치를 느끼는 것들은 대부분 개개인 혼자서 풀기에는 너무 크고 복잡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KAI 이론 중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물질적인 문제는 기도와 영적 전쟁 없이는 해결될 수 없으며, 영적인 문제는 현실의 삶 즉 실제적인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 토지와 경제정의 中 <대천덕> -


꼰대의 말투: 그냥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해도 될 말을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한다. 어제 썰전에 나온 전원책 변호사가 자주 사용하는 말투를 보고 깨달았다.



130년 전의 영어교육방법이 지금보다 나았다. 역시 한글이라는 어마어마한 도구로 무장한 나라에서 영어 발음 표기는 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애자일을 도입하기 위해 애자일을 스터디하는 걸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스터디 과정 중에 애자일의 정신과 가치가 파괴되는 경험을 한다. 불일치이다. 그럴 경우 사람들은 경험의 암묵적 층위, 즉 반-애자일(anti-agile)을 더 따르게 된다. 친구 때리지 말랬지 하면서 아이를 때리는 부모가 있을 때 아이는 어느 메세지를 더 따를까 생각해 보라. - 김창준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결과로 가르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무섭게 소리 지르고 화내면 아이는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변하지 않아요. 자신의 문제 행동에 값을 지불했다 생각하죠. 오늘 청문회를 보면서 답답했습니다. 재벌들에게 소리 지르면 뭐합니까? 법으로 값을 치르게 해주세요. 그래야 그들이 변합니다. - 서천석


참된 반공은 반독재 

서광선 명예교수 “박근혜 게이트의 주범은 한국교회” (veritas.kr)

"순교자 아버지는 공산당 독재를 반대하고 그렇게 설교하다가 목숨을 바쳤습니다. 저는 순교자 아버지의 뜻을 이어 유신독재를 반대하고 투쟁했습니다. 참된 반공이라고 하는 것은 민중을 억압하고 굶어 죽게 하는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자유와 정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유신 독재를 반대하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 독재를 반대하는 것이고, 이 땅에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반공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말살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반공은 반인간적이며 반민주주의이며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 질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러려고, 이렇게 되라고 이 나라 이 땅을 이런 꼴로 만들려고 반공을 한 것이 아닙니다.”




참 어이없는 북의 미사일 개발 비화 

 최초의 자체개발 미사일인 노동 미사일을(북한명 화성5호) 만들때 김정일이 하도 빨리 만들라고 닥달을 해대는 통에 정신없이 만들어냈는데 중간에 문서화를 하나도 안 해놨던 상황.

김정일: 이제 양산하라!

책임자: 그럴 상황이 못 됩니다.

김정일: 왜 그리 됐나!

책임자: 그건... 체계적으로 문서화를 안 해서 기억을 못 해서.. (우씨.. 자기가 막 만들라고 해놓구서...)

김정일: 뭣?! ...... 음, 우리 국방과학자들이, 화장 못 하는 여자처럼 뒤죽박죽 개발해놔 아~무 소용없는 미사일을 만들어놨구나. 기본 크림 바르고 색화장 하듯이 차례로, 단계적으로 하며 다시 만들라! (실제로 이렇게 말했고 유명한 얘기라고..)

책임자: 네! 최고지도자 동지.


되고 난 뒤,

김정일: 자 이젠 위성 만들라우! 체계적으로 하는 것 잊지 말라우.

책임자: 네! 최고지도자 동지.


어린이 코딩 교육이전에 컴퓨터를 활용한 협업교육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낭비라고 느낀다면 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창준





2016년은 코스모스가 재방영한 해입니다. 

창백하고 푸른 점 - 칼 세이건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모두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 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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