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사전 정의는 간단하다. 어떤 일에 있어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 영어로는 authoritarianism이다. authority와 다른 정의다.
뉴욕주립대 조나단 하이트 교수의 moral foundation 이론에서 정립한 것은 authority이다. 즉 "권위"는 중요한 도덕적 토대 중 하나이지만 "권위주의"는 다른 개념이다. 특히 리더가 됐을 때 지양해야 하는 개념이다. 서로 양립할 수도 있는 개념이다. 바로 권위가 부족하거나 부재할 때 권위주의를 내세운다. 왜냐하면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권위는 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추종하지만, 권위가 부족하면 본인이 존경을 받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것이 권위주의다. 때로는 강압적이며, 폭력적이고, 부도덕한 행동까지 보여줄 수 있다. 더 심하면 갑질로 증명되어 명예 실추 및 법정 구속도 된다.
유교 문화? 장유유서 개념? 뭐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문화가 이렇든 저렇든 선이 있다. 한데 한국에서 이 선을 외줄 타거나 넘어버려 갑질하는 경우를 우리는 본다.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 이 역시 한국은 "정도", "빈도수"가 더 많게 느껴진다(통계를 모르기 때문에 사실일 수는 없다). 필자의 개인적, 주변의 경험에 의한 작은 N(샘플) 수 이기 때문에 일반화는 하면 안 된다.
중요한 점은 한국에서 보이는 특이점이다. 유독 사회적 지위와 성공을 향유하기 때문에 힘이 있거나, 영향력을 행하고 싶은 직업이나 명예에 관심이 많다. 즉 의사, 판사 등이 되고 싶다는 "직업적" 목표의식이 뚜렷한 사람이 그 위치에 갔을 때 두드러질 수 있다는 점이 무섭다. "내가 말이야, XX인데"라는 말을 하는 위치 말이다. 저번 이야기처럼 한국 사회는 매우 동질 하기 때문에 가시적인 부, 명예, 지위를 통해 상하를 나누는 것이 용이하다. 내가 "상"이 됐을 때가 영향력을 행할 수 있으며, 갑질을 할 수 있는 위치다. 노룩패스부터 시작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까지. 이게 바로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권위주의다.
영향력이 있는 위치라면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왜 권위주의를 보여줄까. 사회 축소판인 학교와 군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부하가 상급자를 따르지 않을 때, 존중이 없을 때, 상급자는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적 모습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기는데 강압적으로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상급자가 존중이나 존경을 받지 못하니, 본인의 힘을 무분별하게 행한다. 정말 심각한 현상이다. 리더가 권위주의를 행할 때 조직을 넘어, 국가 전체에 위기일 수 있다. 국가를 리딩하는 기득권이 부패하는 것이다. 물질적 부패를 넘어 정신적 병폐일 수도 있다.
한국 교육은 리더가 됐을 때 권위를 어떻게 행할지 알려주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 없이 공부만 했던 샌님이 교수가 되고 사회적 리더가 됐을 때 책을 뒤져본다. 리딩을 할 줄 몰라 인터넷, AI한테 물어본다. 인지만 발달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인지적으로만 발달이 됐을 때 한 청년이 20살에 교수가 되고 판사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이 청년은 교수가 되어 대학원생을 리드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있을까(이공계 교수는 혼자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펀딩을 따오고 팀을 리딩해야 한다). 판사가 되어 딜레마에 빠졌을 때 공리적 결정이 아닌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을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런 교육을 하지 않는 시스템"만" 문제라는 것도 아니다. 필자가 거듭 강조하는 것이 바로 "문화"다.
개인이나 제도가 문제라면 오히려 해결책은 간단하다.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는 범주이기 때문이다. 유교문화? 장유유서? 무엇이 됐든 고질적인 한국적 문화현상이기 때문에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관행처럼 해왔기 때문에 무뎌지는 것이다. 관행이 오래 쌓이다 보면 문화가 형성된다. 아쉽지만 문화는 바꾸기 매우 힘들다. 곰팡이가 오래되면 화석이 되기 때문이다. 해결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해결을 시작할 수는 있다. 한국의 기득권은 자성해야 한다. 리더는 육각형이어야 한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