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by JJ Ella


남들보다 기도를 오래하고

금식(단식)기도하고

성경을 많이 아는 것

그런 것이 영성적인 삶일까요?


무엇이 중요합니까?


[김기석 목사 설교 중에서]

https://youtu.be/EaSPT9D0XpM?si=mXVifvoGmI8vs3Ij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35)


<성삼일 전례와 금육과 단식/금식>


오늘 평일 미사가 없는 줄 모르고

성당에 갔다.


성당 사무실에

"오늘은 평일 미사가 없나요?"라고

물어봤다.


그냥 단순한 질문인데...


"성삼일 전례 기간이라서

평일 미사 없다고!

한참 전부터 주보에 공지 했는데

왜 몰라요?!"


"주보를 보세요. 주보를!"

라고 말하는 성당 사무실의 그녀.


"아... 저는 카톨릭 초신자라서요."

라고 하자,


그녀는

"성삼일 동안은

매일 전례에 참여해야 해요.

그게 얼마나 크고 중요한 전례인데!

새신자 교육할 때 알려줬을텐데!!??"

라고 짜증을 냈다.


그녀는 날마다 성당에 있으며

주님의 뜻과 전례를

몹시도 잘 안다고 자부하면서,

마치 옳은 일을 하듯이

교만한 태도와

책망하고 하대하는 말투로 나를 대했다.


나는 ‘개신교 4대째 모태신앙으로

3대째 카톨릭 신자와 결혼하면서

시부모님이 강권으로

평일에는 성당 미사에 참석하고,

주일에는 개신교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다‘는

구구절절한 변명 대신

주보 하나를 받아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주민센터의 직원이나

여느 사무실의 '비그리스도인'도

저렇게 불친절 하지는 않을 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했다.


다른 장소도 아니고

성당 사무실 직원이라면

자타 공인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희생 제물보다 낫다.

(마르 12,33)

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주님께서는 제사 보다는,

화려한 파스카 부활 성야 촛불 퍼포먼스보다는,


주님께서 주신 빛으로

우리 내면을 초처럼 밝혀서

'따뜻한 말과 미소'로

주변 사람들을 비추는 것을

더 좋아 하시지 않을까?


비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찬양하게

(마태 5:16)

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외식자는 자,

즉 겉으로만 보기 좋게 드러내는 자를

이렇게 책망하신다.


그들은 나를 날마다 찾으며,

나의 뜻을 몹시도 알고 싶다면서,

마치 옳은 일을 해 온 백성이기나 하듯이,

(이사 58,2)


단식(금식)한다는 것들이

시비나 하고 싸움이나 하고

가지지 못한 자를 주먹으로 치다니,

될 말이냐?

오늘 이 따위 단식은 집어치워라.

너희 호소가 하늘에 들릴 리 없다.

이 따위 단식을 내가 반길 줄 아느냐?

(이사 58,4-5)


내가 기뻐하는 단식(금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주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주고

멍에를 풀어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이사 58,6-7)


비신자나 새신자들이

교회나 성당에 오래 다녔다고 하는

'자칭 그리스도인이지만 바리새인'

'외식하는 그리스도인'


'가라지'들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교회나 성당에 실망을 하여

주님을 등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주님! 주님!"하고

온갖 화려한 전례와 예배를 봉헌하지만,


정작 주님께서는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실만한

'가라지(가짜 벼)'가

항상 교회나 성당에 섞여 있기에

일부 가라지 교인의 행실을 보고

'개독교'라고 오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박해자 사울'에서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되었듯이

가라지가 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라지와 밀을

판단할만한 실력이 없기에,


주님께서는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마태 13, 29) 고 하셨다.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마태 7, 21)


그날이 오면 주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마태 7,23)

고 하시지는 않을까?


오늘 그녀와의 일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게 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자매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루카/누가 6, 41-42)

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다.


그녀의 모습이 나에게는 없는지

돌아보고 회개하게 하셨다.



<기도>


주님,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게 하소서.
(필리 2, 26)


나를 보내신 이곳

파견하신 내 일상에서


나의 행실로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께서 저를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청파아침묵상 : 시편 108편 묵상, 김기석 목사>

https://youtu.be/czk-VKqLsx0?si=1i8CXllSayO-vvs8


복음을 전한다는 전도에 대해

우리는 여러 오해는 물론

왜곡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불쾌한 음성으로 윽박지르거나,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말을 전하려는 모습,

불필요한 용품을 나눠주는 모습 등으로


우리는 전도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

즉 기쁜 소식을 전하고 나눠야 함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엄연한 사명이고 또 주님의 명령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 전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도는

"당장 나와 교회에 나가자."

"예수를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불행해지고

나아가 죽음 이후에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으로

귀결될 수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는 전도도 아니고

무엇보다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일진대

이 말은 저주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웃들과 나누어야 할 전도용품은

무엇보다

'따뜻한 말과 미소'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기쁨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웃을 향해

"힘든 일이 있으면

함께 고민해 보자."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복음 전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당의 부활 성야 미사 : 빛의 예식>


파스카성야, 촛불예식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성주 간 토요일 밤.

성당에는

어둠을 밝히는 ‘빛의 예식’을 진행합니다.


성당의 모든 불을 끄고

캄캄한 어둠인 이 땅에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어둠을 뚫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셨음을

상징하는 부활초를 켭니다.


부활초의 불을 성도들이 옮겨 붙이며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빛을

밝히고 이웃과 나눕니다.


이 의식을 통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춘다.'는

마태오가 전한 말씀의 의미를 전합니다.



<삶에서 실행하는 빛의 예식>


내가 바라는 것은

제가가 아니라 자비다.

(호세 6,6)

는 말씀처럼


온갖 화려한 전례(예배 의식)와

사순절 금식도 좋지만,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메세지를 바르게 알고

나의 행실로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우리의 몸이

성령의 성전이며

(1 코린 6, 19)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나의 일상에 파견된

'주님의 사제단'(1 베드 2, 9)임을

명심합시다.


나의 일상에서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말 한마디와

온화한 웃음이야 말로


참그리도인으로서

주님께 영광돌리는 길이며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주님,

상냥한 꿀 송이 같은 말로

듣는 이의

목에 달콤하고

몸에 생기를 주도록

저를 도우소서.

(잠 16,24)


나를 부르신 내 일상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소서.

(손경민의 찬양 일상, 마태 6:10)

https://youtu.be/2tSN0sQiLe4?si=V0mg5S_YozOjEMmz


<성삼일 단식-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카톨릭과 전례가 가장 유사한 개신교회인 것 같다.

존웨슬리 감리교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 설교 중에서

https://youtu.be/EaSPT9D0XpM?si=mXVifvoGmI8vs3Ij


금식(단식)이란

육체가 요구하는 것을 저항하고

절제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줄일 수도 있겠고

요즘 얘기 하는 탄소 금식도 있고

SNS금식도 있고

나를 온통 사로잡고 있던 것들로 부터

놓임을 받는


그래서 내 마음을 하나님께로 집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금식입니다.


내가 영성이 깊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남들보다 기도를 오래하고

금식기도하고

성경을 많이 아는 것

그런 것이 영성적인 삶일까요?


겉보기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오만해진 사람들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타자들의 고통이

내 마음속에 와닿기 시작할 때

나는 비로소 영성이 깊어졌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타자의 눈물이

내게 와닿기 시작할 때

나는 영성이 깊어져

예수님을 닮기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자선의 훈련이라고 함은 무엇입니까?

나만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돌려서

타자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고통에 함께 공감해 주고

그 고통의 문제를 해결 해 주기 위해

사랑의 수고를 다 감당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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