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계획하지 않은 것들이 더 큰 추억을 만든다
영화 김종욱 찾기로도 유명한 조드푸르. 브라만 계급을 표시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파란색으로 칠하던 관습이 이어져 푸른색 시티를 이루었다. 조드푸르에서의 일정은 김종욱 찾기 영화 보기로 시작
다른 이동은 비행기를 이용한 반면, 자이푸르에서 조드푸르까지의 이동은 버스를 이용했다. 슈퍼럭셔리 버스. 심지어 여성은 할인도 해주었다. 버스 탈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자이푸르에서 조드푸르까지 버스 타고 8시간. 숙소랑 터미널 이동시간까지 거의 10시간은 걸렸다.
아무리 도로 사정이 다르다고 해도, 같은 라자스탄 주 안에서의 이동이 이렇게나 멀다니 인도라는 게 다시 한번 체감되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서울에서 부산만큼의 거리였다.
구글맵에서 볼 때는 같은 라자스탄주에 있는 자이푸르와 조드푸르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인도는 세계 탑 10에 드는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곳이고, 한국의 32배나 되는 그런 곳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아예 먼 거리라고 느꼈으면 버스는 생각지도 안았을 텐데... 슈퍼럭셔리 버스 타본 걸로 만족
긴 이동을 무사히 마치고 숙소에 도착했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밖에 나가려는데, 우연히 마주친 매니저 아주머니께서 루프탑에 선셋이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다고 알려주신다. 바로 방향을 바꿔 루프탑으로 향했다. 와우. 이렇게 멋진 레스토랑이 숙소 바로 위에 있다니 완전 럭키였다.
인도식 치킨요리와 맥주 한잔을 주문했다. 나지막이 떠있는 해가 저녁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루프탑 조명이 하나 둘 켜진다. 세상의 평화가 이곳에 다 모인 듯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도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아침이면 여느 때와 같이 일단 나간다. 온갖 것들을 다 볼 수 있는 재래시장인 사다르바자르로 향했다. 가죽공예품, 수공예품, 생활용품, 옷과 신발, 각종 향신료 등등 모든 것들이 다 있다. 약간의 기념품과 공예품을 사고 왜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유명한 오믈렛 하나를 먹고는 메헤르가르성까지 걸어 올라갔다. 파란 집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메헤랑가르 성에 다다랐다. 성 안에는 왕궁을 개조한 박물관도 있고 짚라인 타는 것도 있다고 했으나 과감히 생략했다.
돌아오는 길, 길을 잘못 들어 사람도 차도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길로 들어섰다. 기찻길 옆으로 쓰레기들만 바람에 나뒹군다. 길 따라 걷다 보니 아주 작은 샛길이 나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보았더니 조용한 아주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성곽길 위에서 보았던 파란색 집들이다.
아주 큰 나무 밑 벤치가 있길래 잠시 쉬어갈 겸 앉아있는데... 저만치 보이는 문틈 사이로 한 여인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더니 손을 흔든다. 그러더니 한 분, 두 분, 세 분... 내가 앉아있는 벤치 바로 옆집에서도 한 부부가 나온다. 형제처럼 보이는 사내 둘도 나온다. 예쁜 여동생도 나온다. 심지어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도 나왔다. 다들 내가 신기한가 보다. 반갑게 맞아주시니 간단히 인사도 하고, 물도 가져다주시길래 한 모금 마셨다.
폰을 들고 오시더니 다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자고 수줍게 말씀하신다... 가족사진에 홀로 끼어든 모습으로 사진도 찍었다. 반가웠고,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린 후 발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못 가 놀이터가 나온다.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놀고 있다. 아이들은 나를 발견하고는 신기하다는 듯 할로~할로~ 엄청 반갑게 인사해준다. 부끄러운 듯 인사하고는 금방 사라지더니 그새 친구들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그래 안녕~ 반겨주니 고맙구나
작은 마을을 지나 큰 대로변으로 나오니 작은 마을의 정감이 그새 사라진다. 다시 도시구나...
모래바람이 부는 도시이다 보니 마스크를 쓰고 다녔는데도 목이 너무 아팠다. 감기 기운도 있고 해서 하루 정도는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숙소에서 주는 아침이 정말 예술이다. 위층 레스토랑 셰프인 비쉘이 직접 만들어준다. 사실 투숙객을 위한 요리는 서양식이고, 매니저를 포함한 직원들을 위한 인도식 식사를 따로 만든다. 내가 인도요리에 호기심을 보이니, 비쉘이 맛보라고 조금 나눠줬는데 내가 너무 잘 먹으니 그 이후로는 따로 계속 챙겨주었다. 인도식 콩요리인 달과 파라타 등등. 마치 인도식 집밥을 먹는 느낌이었다.
아침을 잘 먹고 난 후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는 숙소 안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우연히 눈에 띈 힌디어책. 보면 볼수록 상형문자처럼 생긴 힌디어를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들고 와 펼쳤다. 음..... 나름 영어 발음기호와 함께 잘 설명이 되어있군. 하지만 인도에서의 발음은 우리가 알고 있던 발음과는 차이가 있기에 숙소 매니저 아밋에게 찾아갔다. 힌디어를 배우겠다는 내가 신기한 듯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힌디어 발음과 억양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नमस्ते (나마스떼) 안녕하세요
धन्यवाद (단네왓) 감사합니다
शुक्रिया (수끄리아) 감사합니다
간단한 인사말과 여행에 필요한 단어들을 배우고, 나는 이곳의 고마운 사람들에게 작은 카드 쓰기에 도전하였다. 물론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매일 아침마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는 비쉘 요리사
내게 힌디어도 알려주고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는 매니저 아밋
짧은 문장이더라도 이상하게 번역되지 않도록 애써서 완성했다. 그렇게 나의 마음을 글로 전했다.
아밋은 감사인사로 나에게 짜이 한잔을 대접했다. 다만 카페인에 취약한 나는 짜이 한잔에 늦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역시 다음날 아침도 비쉘의 맛있는 요리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비쉘은 레스토랑 쉬는 날이라며 함께 구경을 나가자고 했다. 비쉘은 자신의 집에 가서 준비하고 올 테니 숙소에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지나도 비쉘은 오지 않았다.
어젯밤 아밋이 준 짜이 때문에 잠을 못 잔지라, 한숨 청했다. 잘 자고 일어났는데도 비쉘은 오지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원래 가려고 했던 우마이드 바완 팰리스로 향했다. 오래간만에 보는 잘 정비된 사람 다니는 길이었다. 인도(사람 다니는 길) 양 옆으로 빨간 꽃이 가지런히 피어있는 그런 곳.
우마이드 바완 팰리스는 과거 왕궁으로 만들어졌으나 현재에는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구경하고 돌아와 루프탑 레스토랑에 가니 비쉘이 있는 게 아닌가. 비쉘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종이를 꺼내더니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건넨다. 그 종이에는 삐뚤빼뚤하지만 정직한 글자체로 적은 편지가 쓰여있었다. 한글로 말이다. 내가 힌디어로 쓴 카드에 대한 답장이었다.
편지에는 그에게 갑자기 일이 생겼으나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며 정말 미안하다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꼭 네팔에도 방문해달라고 적혀있었다.
(비쉘은 네팔 출신. 인도에는 네팔에서 와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감동이었다. 몇 문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 처음 보는 그런 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편지를 다 읽을 수 있었고, 그가 하려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조드푸르 마지막 날의 잊지 못할 감동을 선물받았다. 고마워요 모두들
* 2019년 1월 28일부터 2019년 2월 16일까지 인도의 바라나시, 자이푸르, 조드푸르, 델리 4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느낀 나의 생각들을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