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이력은 동거입니다.
2017년 예상치도 못 한 휴학을 했다.
16년도 입학생으로
휴학이나, 자퇴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사는 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자퇴를 뜯어말린
나의 부모님은 땡깡을 부리는 나에게
휴학을 권유했다.
친구는 끼리끼리의 법칙을 적용해
그 맘 때쯤 휴학이나 자퇴, 재입학을 선택하는
주변 사람들이 늘어났다.
인생의 막연한 계획도 목표도 없는 우리는
편의점 알바, 술집 알바 등등
각자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놀궁리들을 하고 있었다.
한창 술에 관심이 많고 시기상조로
마침 애인과 이별을 했던 나는
친구의 소개로 아는 오빠 두 명과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같은 학교를 다니는 오빠들이라
선배개념으로 알고 지내면 좋겠다
라며 그날의 술자리는 이어졌다.
시내라고 불리는 술집들의 행렬,
특유의 끈적한 테이블.
두어 개 나오면 한 개는 꼭 깨져있던 소주잔.
메뉴판의 만원도 안 되는 가격의 안주들,
조도가 낮은 조명이 주를 이루는
골목에서 여기서 저기로 거기서
여기로 옮겨 다니며 술을 마셨다.
사실 연애 경험도 남자 경험도 별로 없던
나는 이런 약속만 있어도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나와 다른 종족이라 여긴
남성의 성별을 마주하기가
무서웠다.
나이차이도 당시로는 5살 차이 나는
21살 상대방은 26살이었는데.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능숙한
오빠 한 명이 말은 건넸다.
몇 살이야? 전공은 뭐야? 라며
능글맞은 표정으로 재미까지 줬다.
이 정도면 마음도 준거 아니야?라고
크게 착각한 나는 10분 만에 그에게
빠져버렸다.
유명한 금사빠인 나는 그날로
그 사람과 사귀게 될 날만 꿈꿨다.
내 사랑의 특징은 금사빠이지만
금세 빠져나오지는 못 하는 불운의 여자였다.
그날 이후 연애를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그 사람 집 앞에서 울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연락처를 공유하고 그날은 그렇게 저물었다.
여러 번 저번처럼 술자리를 가지길 원했지만
그 오빠는 연락이 대체로 안 됐었다.
그날 참석한 그 오빠의 친구는 되려
나와 친구가 되길 원했다.
편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고 저녁에 밥 먹을 사람이
없거나 술 마실 사람이 없으면
같이 시간을 보냈다.
주로 하는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그 오빠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나도 그러면 안 되지만 그 오빠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에
가까이 함을 허락했다.
몇 번 답장이 오다가 피 말리게 답을 하지 않고
전화는 어느 순간 차단이 되어 있었다.
사정을 물어보니 오빠의 친구는 그저 한 마디만 했다.
너 얼마나 좋아해?
그냥 많이 좋아.
알겠어 내가 물어볼게.
매일 그 메아리의 반복이었고.
다 포기하고 길거리를 걷다 그의 이름과
동일한 이름의 물건이 있어
휴대폰으로 찍은 후 오빠 친구에게 전송했다.
[오빠 나 이거라도 사야 하나 봐 ,
정말 너무 보고 싶은데]
말도 안 되겠지만 이 문자를 전송한 이후
그에게 연락이 왔다.
아마도 내가 이러는 게 안쓰러워
그의 친구가 전달해 준 듯하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사실 연락이 닿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해도.
그렇치만 나한테 그는 너무 간절했다.
그 문자를 전해 들은 이후 그는 자기의
시간이 여유가 있을 때 날 불렀다.
내가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어도
거들떠도 보지 않다가
자기의 시간이 나면 나를 5분 대기조 취급을 했다.
역시 그 당시엔 알지 못했고
그의 부름의 언제든 응답했다.
술이 마시고 싶다고 하면 술을 마시고 시간을 보냈다.
봄쯔음에 만난 우리가 가을이 찾아왔나 싶을 때.
그는 춥다는 날 안아주며
오늘 집에 가지 않아도 되냐고 물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던 순수하고
바보 같았던 나는 그래도 된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리에는 찬 바람이 불고 우리가 들어간 방은 따뜻했다.
그곳이 지구 어디라고 해도 좋았을 것이다.
작은 달방 같은 곳에서 티브이를 보며
좋아하는 아이돌을 응원했다.
그 사람은 티브이를 본 후에 자기
얼굴을 번갈아 보지 말라며 비교된다고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 마저도 지금 생각하면 여우네 싶지만
그땐 모자란 게 없어 보이는데
왜 라며 손을 치우려 다가갔고 그러다 보니
불은 꺼져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예상치 못 한 경험에 당황한
나는 아침 댓바람부터 친구 집 대문을
두드리며 나 어떡하냐며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거야? 사귀게 되는 건가? 하며
오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이후 여전히
우리 사이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했고
분노한 애꿎은 내 친구들만
그를 저주하고 멀리서 욕을 하며 침이나 뱉었다.
가끔은 동네가 같으니 술집에서 몇 번 마주쳤는데.
그는 날 못 본 척했다.
그게 그렇게 상처로 남을 줄 몰랐다.
누군가 그냥 날 못 본체 한 것뿐인데.
이쯤에서 잊고 있던 그 오빠의 친구는
그냥 아무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잊고 지낼 순 없는지 달래고
밤이 새고 해가 뜨도록 달래줬다.
그 오빠 자취방에서 울고 있는 나를 본
친구들은 밥이라도 먹으라며
컵라면을 사 와 당시 유행이던
짜계치까지 야무지게 만들어 먹었다.
아무 말하지 않던 그 오빠도 지금
생각하면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봉사정신이 투철하다.
그렇게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오려던 찰나.
슬슬 그의 이름도 옅어졌을 때.
그의 친구가 날 다시 불렀다.
“니가 듣게 되면 여기에 있는 소주병 다 깰 거 같아서
사실 얘기 안 하려 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고
그런 이야기라면 누구나 다 어리석게도
듣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사실 그는 동거하는 여자가 있었고 입학 때부터
벌써 햇수로 4년을 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여자는 처음 사귈 땐 아니었는데 점점 생활비도
자신이 감당하지 않고 (말로는) 씻지도 않고
그의 삶을 해하고 있는 존재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아무리 잊혔다 한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울컥했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나한테 그랬구나.
문득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내가 널 안 좋아하는 게 아니야. 사정이 있어서 그래.
사정.
그 사정이 결국 누군가와 보낸 사 년의 세월이고, 나랑 잤구나.
그 이후 그는 자신의 본적이던
수원으로 돌아갔다고 했고.
경찰 행정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야기도 들리지 않고 있지만.
스무 살 그 언저리쯤 나에겐 큰 충격이자 사건이었다.
여담으로 연락도 되지 않는 그에게
그 당시 유행이던 일본 기념품을 사다 주었다.
물론 직접 전달하진 못 하고 그 친구를 통해서.
나중에 보니 그 물건은 친구라는
사람의 자취방 언저리에 예쁘게 앉아있었다.
내가 그 물건을 바라보니 그 기념품은 언니 왔어?
나 여기 있어라고 얌전히 체념한 채
얘기 중이었다. 다시 데려갈 수도,
이게 왜 여기에 있냐고 물어볼 수도 없어서.
못 본 척하고 돌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