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도가 상하이 대신 베이징 여행을 떠난 이유 ①

1989년 중국 국가미술관《중국/아방가르드 전시》흔적을 좇기

by 김진혁

올해 상반기에는 중국 현대미술사를 탐구할 기회가 있었다. 중국현대미술이 교차하는 망망대해에 좌표 하나를 찍는다면, 그것은 1989년 2월 베이징에 위치한 중국 국가미술관(National Art Museum of China)에서 열린《중국/아방가르드 전시 China/Avant-Garde Exhibition》일 것이다. 이 전시는 중국 현대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간주된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중국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cultural-revolution-children.jpg 문화대혁명 관련 이미지-마오쩌둥 이미지와 홍위병들 (https://allthatsinteresting.com/cultural-revolution#5)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과 함께 중국 문화를 처참하게 파괴했던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렸다.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서구 문화는 물론 중국 전통 문화까지 배척한, 사실상 ‘문화 살해’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뒤를 이은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했고,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 속에서 이전까지 금지되었던 서구의 모더니즘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중국 안으로 들어왔다. 그 결과《중국/아방가르드 전시》는 새로운 표현의 산물들로 가득할 수 있었다.


전시를 기획한 가오밍루(Gao Minglu, 1949-)는 동시대 국제 미술사에 영향력 있는 미술사학자로, 해당 전시를 통해 중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고자 했다. 가오밍루의 주도 아래, 개혁개방 이후 활발해진 예술가들의 최신 작업들이 중국 전역에서 모였다. 그렇게 집결한 300여 점의 작품은 수묵화와 같은 전통 매체뿐 아니라 유화,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로 구성되었다. 그중 샤오 루(Xiao Lu, 1962-)의 권총 퍼포먼스는 2024년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전시에서도 소개된 적 있다. 작품의 공식 제목은 <대화 Dialogue>로, 양쪽에 하나씩 두 개의 전화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 다른 한쪽에는 남성으로 보이는 인물이 실제 사람 크기만큼 충분히 큰 이미지로 출력되어 붙어있다. 가운데 놓인 전화기는 소통의 도구처럼 보이지만, 분리된 전화 부스 안의 남녀는 오히려 소통이 아닌 불통의 관계를 암시한다. 개막 당일 샤오 루는 이 설치물, 즉 전화 부스를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당시 이러한 행위는 정치적 불만의 표출이라기보다는 인간관계 속에서 느낀 개인적 분노와 억압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퍼포먼스 직후 샤오 루는 구금되었고, 전시는 한동안 임시 중단되기도 했다.


스크린샷 2025-10-05 205747.png 샤오루의 권총 퍼포먼스 (M+, Hong Kong, © Wen Pulin)


전시가 종료된 지 몇 달 후, ‘천안문 사태’로 불리는 중국 당국의 무력 진압으로 인해 자율성을 추구하던 중국 현대미술은 다시 길을 잃게 되었다. 이 가운데 일부 작가들은 해외로 이주해 급진적인 작업을 이어갔고, 이후 국제적 명성을 얻은 현대미술가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황융핑(Huang Yong Ping, 1954–2019), 쉬빙(Xu Bing, 1955-)을 들 수 있다.


스크린샷 2025-10-05 210442.png 쉬빙, <Book from the Sky> (구글 아트앤컬처, Hongkong Museum of Art)


한편 중국에 남아 작업의 방향을 모색한 이들도 있었는데, 미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리셴팅(Li Xianting, 1949–)은 이러한 흐름을 ‘정치 팝(Political Pop)’과 ‘냉소적 리얼리즘(Cynical Realism)’이라는 비평적 용어를 도입하고 확산시켰다.《중국/아방가르드 전시》에 참여한 왕광이(Wang Guangyi, 1957–)가 전자로 설명되어 왔다면, 199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위에민쥔(Yue Minjun, 1962–)은 후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스크린샷 2025-10-05 210938.png 왕광이, <Mao Zedong: Red Grid No. 2> (M+ Sigg Collection, Hong Kong, © Wang Guangyi)


이와 같이 흥미로운 미술사를 품은 중국 국가미술관이 무척 궁금해졌다.
실제로 방문한 베이징의 중국국가미술관은 1963년에 정식 개관했으며, 지금도 오래된 외관과 내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국내 사례와 비교하자면 국립현대미술관(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에 가깝겠지만, 중국 국가미술관(National Art Museum of China)은 주로 중국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을 전시한다.


KakaoTalk_20251005_212211502.jpg 베이징에 위치한 중국 국가미술관 (직접 촬영)


‘대국(大國)’이란 중국의 이미지와는 달리, 미술관 외관과 주변 조경이 그리 거대한 규모는 아니었다. 대신 자금성의 기와처럼 외관은 황(金)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중국에서 황색은 황제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색이었음을 고려하면, 국가 주도의 미술관에 그러한 상징성을 부여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외관의 기둥은 조금 더 현대적이었는데, 하얗고 힘 있어 보이는 직사각형 기둥들이 오차 없이 세워져 있어 나름의 우직함이 느껴졌다. 1989년 전시 당시 미술관 외관 앞에 세워진 ‘유턴 금지’ 표지판은, 당대 예술가들이 아방가르드의 길로 나아갔고 더는 되돌아갈 수 없음을 선언하는 표식처럼 다가왔다.

지금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그 공간을 바라보며, 한때 놓여 있었던 유턴 표지판들을 떠올리자 다소 허전하게 느껴지던 미술관 앞 풍경이 그제야 아방가르드하게 다가왔다.


2844_nationalgallery.jpg 중국국가미술관 앞 '유턴 금지' (https://fathom.lib.uchicago.edu/1/777777122473/)
스크린샷 2025-10-05 211829.png 중국국가미술관 앞 '유턴 금지' (M+, Hong Kong, © Wen Pulin)


정문으로 들어섰을 때, 외관보다 오히려 내관이 더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바닥에는 온통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고, 문과 벽은 나무의 본래 색채가 잘 드러나는 갈색과 상아색 계열로 마감되어 있었다. 이는 흔히 미술관을 떠올릴 때 상상되는 화이트 큐브, 차갑고 중립적인 색채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오래된 호텔을 떠올리게 하는 투박하면서도 아늑한 감각이 공간 전체를 감돌았다.

누군가는 예상치 못한 모습에 낯설거나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곱씹을수록 미니멀하지 않은 이 내부 인테리어는 오히려 마음에 남는다. 어쩌면 내가 오래된 호텔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전형적인 현대미술관이 새로운 사건을 창출해 낼 것 같은 공간이라면, 이 미술관은 오히려 숨겨진 사건이 드러날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KakaoTalk_20251005_212211502_01.jpg 중국 국가미술관 내부 (직접 촬영)


마침 볼 수 있었던 전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먹의 찬란함과 문화적 맥락: 간쑤 실크로드 미술 보물전》, 다른 하나는 공교롭게도《수묵별미 한중 근현대 회화》라는 제목의 한중 수묵 교류전이었다.

먼저 전시 포스터를 살펴보자면, 이 역시 간결하고 이지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포스터에는 무려 N가지 색이 들어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세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색을 품고 있었다. 붉은색은 그라데이션 되어 단일한 붉은색이라 할 수 없었고, 청록색이 보였으며, 황금색은 스펙트럼처럼 펼쳐져 그 안에 수십 가지 색이 공존했다. 이렇게 화려한 포스터는 요즘 미술관에서 처음 보는 듯했다.


KakaoTalk_20251005_212211502_02.jpg 먹의 찬란함과 문화적 맥락 전시 (직접 촬영)


이에 비해《수묵별미 한중 근현대 회화》전시 포스터는 비교적 단순했다. 검정과 붉은색으로 적힌 간단한 한자 글씨뿐이었다. 사실 이 전시는 이미 한국에서 한 차례 선보인 적이 있었고, 한중 교류전인 만큼 베이징에서 한 번 더 개최된 것이었다. 전시 서문에는 양측 미술관 관장의 인사말이 중국어와 한국어로 병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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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전시를 통해, 중국 현대미술사를 공부할 때 스쳐 지나갔던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미술사학도에게 책에서만 보던, 그러니까 디지털 이미지로만 접하던 작품을 실제로 마주하는 일은 관심 있던 연예인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흥분되는 순간이다. 정말 좋아하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 ‘최애’를 만난 듯 심장이 뛰기도 한다. 말로만 듣던 쉬베이홍(Xu Beihong, 1895-1953)의 말 그림을 실제로 보았을 때도 그랬다. 먹의 농담만으로 그려낸 말의 모습은 선명하고 우아했으며, 먹이 지나가지 않은 여백은 수묵에만 존재하는 고유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여백은 비워져 있어도 충만한 느낌을 주었다. 그 옆에는 김기창(1913-2001)의 말 그림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쉬베이홍의 말 그림이 난초처럼 단정한 느낌이라면, 김기창의 말들은 버드나무처럼 크고 활동적이었다. 말의 눈은 희번덕거렸고, 훨씬 더 표현적이었다.


KakaoTalk_20251005_212211502_04.jpg 쉬베이홍의 말 그림, 1942년 (직접 촬영)
KakaoTalk_20251005_212211502_05.jpg 김창의 말 그림, 1955년 (직접 촬영)

이 전시는 한국과 중국의 수묵을 연대기적으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난 뒤 떠오른 문장은 이렇다.

중국의 수묵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전통을 강조하는 반면,
한국의 수묵은 현대에 이를수록 그 형식이 더욱 실험적이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수묵화는 ‘수묵’이라는 재료만 남고, 그 형식은 완전히 추상이나 설치로 확장되기도 했다. 동시대에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이진주 작가의 작품도 전시의 마지막 동선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먹을 사용하면서도 다른 채색 재료를 활용하여, 유화처럼 선명하고 구체적 표현이 두드러지는 작업이었다. (참고로 많은 관람객들이 순서를 기다려가며 이진주 작가의 작품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런 점에서 중국 제도권 내 미술이 기존의 양식을 지향하며 크게 실험적이지 않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추측은 다시《중국/아방가르드 전시》의 결말을 떠올리게 했고, 다음과 같은 나름의 합리적인 해석으로 이어졌다.


KakaoTalk_20251005_212211502_06.jpg 이진주 작가의 작품 (직접 촬영)


89년 중국 아방가르드 전시는 어떻게 막을 내렸나? 몇 번의 임시 폐쇄 끝에 예정대로 막을 내린 전시는 제도권 안에 아방가르드 예술을 끌어들인 사건이었다. 이제 중국 예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 담론 아래 더 총체적이고 다채로운 것들을 보여줄 차례였다.


그러나 그해 6월, 천안문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의 마지막 민주화 운동이라고 평가되는 천안문 시위는 국가의 단호한 폭력으로 제압되었다. 중국 정부는 약 2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외신들은 그 수가 최소 수천 명 이상일 것으로 예측했다.


이 사건 이후, 중국 내부의 아방가르드 예술은 철저한 감시 아래 놓였다. 이로 인해 앞서 언급했듯이 아방가르드 전시에 참여했던 일부 작가들은 미국과 유럽 등지로 넘어가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며, 본 전시를 기획한 가오밍루 역시 미국으로 떠나 지금까지도 중국 현대미술사를 서술하고 있다.


KakaoTalk_20251005_213235057.jpg 전시장 모습 (직접 촬영)


이런 전개를 고려했을 때, 여전히 중국 국립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미술 교육과 국가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은 전통을 계승하는 경향을 띨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반면, 해외로 건너간 중국 현대미술가들의 작업은 국제적 담론 속에서 급진적인 동시대성을 구현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현장에서 마주한 중국 내부의 동시대 미술과, 뉴스나 국제무대, 미술 시장에서 접한 중국 현대 미술은 같은 동시대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며 그 차이가 매우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무조건 나쁜가? 그런 평가를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중국 동시대 미술이 지닌 또 하나의 고유한 특징이라 정리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중국만의 예외적 현상은 아니다. 현대성은 본질적으로 비동시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어느 사회에서든 다양한 시간성이 공존한다. 2025년을 함께 살아가고 있어도 어떤 집단은 여전히 과거의 생활양식을 따르고, 또 다른 집단은 가장 최신의 방식을 따른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간극충돌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의미야말로 현대 사회가 지닌 비동시성의 가치일 것이다. 중국 국가미술관에서의 경험은 이러한 보편적 조건이 극대화된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중국 국가미술관에서의 관람은 전통적이고 제도화된 전시 맥락 속에서 마치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타임 슬립의 경험이었다. 바로 그러한 과거적 장면과 국제무대에서의 동시대적 실험 사이의 간극이 현대성이 본래적으로 내포하는 비동시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따라서 이 경험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현대성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게 하는, 역설적으로 미래 지향적인 예술 경험이었다.






김진혁(큐레이터, 시각문화 탐구자)
동시대 미술 안팎에서 기획하고 연구하며 글을 쓰고 있다. 대중에게 미술의 본질을 전하고자 강연도 한다. 특히 동시대 미술 안에서 식이와 신체, 생태를 다루는 방식과 비물질 매체의 물질화, 비서구 미술사 방법론에 관심을 둔다. 웹진이자 플랫폼 실험으로써 큐레이터의사생활(@magazine.curator)를 운영하며 전반적인 예술 생태계를 관찰하는 데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다. 저서에는『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