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현 Jan 14. 2016

2015년의 책읽기 : 정운영 '시선'

-그 때 그사람

정운영 선집 "시선" 읽기를 마쳤다. 

벌써 오래전에 마음을 먹기는 하였으나 이러저러한 핑계로 책읽기가 좀 늘어졌다고나 할까...

기대했던대로 지금은 사라진 올드보이 스타일의 '지식인의 촌철살인'이 곳곳에서 번뜩인다. 신문의 칼럼이, 잡지의 기고문이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기-승-전-결을 가진 지성의 몸부림이 될 수 있었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정운영'이라는 이름이 주는 '품질인증'은 나에게 꽤 대단한 것이었다. 그의 말년의 행보에 대한 사람들의 주억거림에도 내가 쉽게 동의하지 못했던 것은 그의 글로부터 받은 깊은 인상과 함께 개인적으로 '정운영 선생' (내 기억에 그는 수업시간에 꼭 선생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던것 같다)에 대해 가진 개인적 호감과 연민때문일 것이다.  


정운영선생의 '공황론'은 내가 대학시절 유일하게 "A+"를 받았던 경제학 관련 과목임과 동시에 수업 빼먹기를 주특기로 했던 내가 조금 늦더라도 가능하면 참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거의 유일한 강좌였다^^. 그 당시 이미 1980년대 학번 선배들이 전하는 전설처럼 학생과 선생의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는 거친 토론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길다란 담배 (아마도 "장미"였던 듯)를 시종일관 피워대며 진행한 정운영선생의 강좌에는 1990년대 초반의 여느 강의실에서는 볼 수 없던 학생과 선생의 "진짜" 교감이 있었다. 그가 skill의 차원에서 훌륭한 강사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현실의 모순과 고통에 진심으로 감정이입하는 "울림"이 있는 강의였던것 같다.


가장 결정적으로 내게 남아있는 정운영 선생의 이미지는 "공황론" 시험을 마친 후 김수행 선생 강좌의 학생들과 같이 진행한 뒷풀이 장소에서의 모습이다. 

서울대입구역의 허름한 호프집에서 진행된 뒷풀이에는 두 선생님과 스무명 남짓한 학생들이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말씀이 극히 어눌한 김수행선생을 정운영선생이 시종 놀리고 힐난해가며 웃음을 나누던 뒷풀이는 그날따라 만취한 정운영선생의 인생 넋두리로 전개되고 있었다. 중간에 정선생이 나에게 "도대체 경영학과 학생이 왜 공황론을 듣느냐?"고 물어봤는데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예의 그렇듯이 정운영선생을 연모하는 몇몇 여학생들 (당시 정선생의 강의를 듣고 그를 연모하게 된 여학생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의 발랄한 요구로 굵직한 목소리로 가곡인지, 트로트인지를 부르던 정선생이 뒤풀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정말 오랜만에 부른다며 마지막 노래로 선택한 것은 "인터내셔날가"였다. 


자신의 젊은시절과 중년까지를 지배했던 '사상'의 고민을 남김없이 표출하는 그의 노래는 굉장히 둔중한 무게로 나에게 다가왔고 나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뭔가 정선생이 약간 흐느꼈던 듯한 인상으로 네게 남아있다. 노래가 끝난 후, 다시 김수행선생 놀리기와 다른 객적은 농담으로 마무리 된 자리였지만, 이 날의 기억은 그날이후 지금까지 꽤 오랜동안 나에게 잔영을 남기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내가 대학생활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생'과 '제자'로 마음을 나누었던 순간이 아닌가 싶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느끼지 못했던 추도의 마음을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은 후 그의 글들이 정리된 이 책 "시선"을 읽으면서 전하게 된다.

책 안의 글들이 씌여진 시기와 나의 나름 치열했던 20대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인생이 겹쳐져 글 하나하나의 배경이 오롯이 떠올려지는 뭉클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모든 글들이 좋지만, 나는 이 안의 글들 중 아마도 가장 마이너한 매체 (그의 고향의 지역신문인듯한 "온양 신문")에 기고한 글이 너무 마음에 다가와 마지막 부분을 옮겨본다.

하늘이 점지한 따뜻한 샘물 덕택에 고향이 돈을 버는 것은 정녕 고마운 일입니다. 다만 저는 그것이 고단한 몸만이 아니라 지친 마음도 함께 씻어주는 푸근한 샘물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참 외람된 말씀이나 돈이 앞서지 말고 사람이 앞서는 고장, 공장과 호텔 못지 않은 문화와 인심으로 가득찬 고장, 그것만이 온양이 길고 깊게 사랑받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슴에 남은 고향은 '옛날의 금잔디 동산'이니 이를 어쩌겠습니까? 형과 이웃에 복된 새해를 기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15년 책읽기 : Zero to On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