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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짱 Jan 02. 2020

힐링타임

 - 여행은 나를 변화시킨다-

1. 처음의 시작은 어려워.     


내가 처음 비행기를 혼자 탔던 때를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도 아찔하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무렵, 내 나이 또래에게 어학연수의 붐이 분 적이 있다. 친구들마다 어학연수를 다녀왔네 마네 하던 때라 우리 집 사정도 마찬가지였다(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심한 치맛바람은 아니시다). 처음에는 사촌오빠와 함께 갈 계획이었지만, 오빠에게 급한 사정이 생겨 나 혼자 그 먼 길을 가게 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옆에 있는 오클랜드를 향해서. 어학연수를 연계해주던 학원으로부터 이미 그 곳의 기숙사에서 묵으며, 공항에 도착하면 기숙사에서 마중을 나와 있을 거라는 정보만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물론 가족들과 여행을 가면서 비행기를 타본 적이 꽤 있긴 했지만, 혼자 비행기를 타고 10시간을 넘게 비행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이트를 찾아서 비행기에 탑승, 미국 공항에 도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비행 중 입국카드도 스튜어디스 언니의 도움을 약간(?!) 받아 잘 작성했다고 생각했다. 바글바글 사람이 가득한 미국공항에 나 혼자 있었지만,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지라 무섭지는 않았다. 두근두근하며, 이제 입국만 하면  된다하는 생각으로 여권과 입국카드를 내밀었다. 그런데 내 입국카드를 보던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언가 영어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뭐지. 왜 그러지. 뭐가 잘못됐나. 찰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집중해서 들어보니 내가 입국카드에 묵을 곳의 주소를 쓰지 않았다고 마저 그 칸을 채우라는 것이었다. 아뿔사. 문제는 묵을 기숙사의 주소를 적어놓은 종이를 캐리어에 넣고 짐을 붙였다는 것이다. 여기를 통과해야 짐을 찾는 곳이 나오는데, 현재 그 주소를 알 방법이 없던 것이다. 어떡하지. 주소를 빨리 적어달라며 직원은 나를 보채고 있었다. 순간 잔머리를 굴려 미국 친구 집에 놀러왔는데, 밖에서 나를 픽업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빨리 나가야 된다며 호소하기 시작했다. 어려보이는 여자 애가(대학교 1학년 때였으니 어려 보였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렇게 얘기를 하니 불쌍해 보였는지, 위험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러면 그 분 이름을 쓰고 가라며 나에게 새로운 미션을 주는 것이 아닌가.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거나 생각나는 미국 이름을 써 줘도 되었을 텐데, 당황해서인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순간 떠오른 이름. ‘린다김’. 그 때 당시 한국뉴스 중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던 로비스트 린다김의 이름밖에 떠오르지를 않았다. 당당하게 린다김을 쓰고 다행히 나는 미국 땅을 밟을 수가 있었다. 물론 911테러가 일어나기 훨씬 전이었고, 지금처럼 입국이 강화되기 전이었기에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 때 알았다. 어떤 상황에 있어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생각한다면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정말 옛 속담은 하나 틀린 게 없는 것 같다. 아무튼 무사히 미국 땅에 들어선 나는 캘리포니아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얘기도 하면서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다 올 수 있었다. 결국 나의 첫 혼자 비행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아찔한 경험도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다양한 경험치를 주고, 순발력을 키워주는 셈이 되니 말이다.            


2. 알로하, 하와이여!!!     


고등학교 때, 남들은 입시다 뭐다 한참 공부하고 있을 시기에 나도 나름(?!) 열심히 입시공부를 하고 있었다. 고2 때였는지, 고3때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여름방학이 되었을 무렵, 갑자기 온 외가 쪽 가족들과 하와이로 휴가를 가게 되었다. 나는 공부를 핑계로 빠질 수도 있었지만, 우리 부모님은 좋은 기회라 생각했는지 온 식구들이 다 가신다며 같이 가자고 하셨다. 그래서 어느 더운 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큰 외삼촌네 식구, 세 이모들의 식구, 우리식구(물론 외사촌들도 모두 포함하여) 다함께 저 멀리 하와이로 떠났다. 미국 땅에 간 거는 앞서 말한 사건의 중심지 캘리포니아 옆 오클랜드를 빼고는 두 번째였다. 말로만 듣던 하와이의 와이키키비치를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참 스트레스 받던 입시공부 생각도 뒷전으로 미뤘다. 많은 인원이 갔기에 개인으로 여행을 하지는 못했고, 식구가 다 함께 투어를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지금 생각해보면 단체투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가이드가 한 분 계셨으니까) 공항에 도착하니 영화에서나 보던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알로하’라는 인사를 받았다. 만나거니 헤어질 때 하는 하와이어 인사인 ‘알로하’는 하와이에 있는 동안 정말 수없이 사용했던 것 같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휴양지로 선택받는 하와이는 미국 하와이주 가운데 가장 큰 섬이다. 또한 많은 신혼부부들이 로맨틱한 신혼여행으로 꼽는 곳이기도 하다. 와이키키 비치 근처에는 호텔을 비롯한 정말 많은 숙소들이 있는데, 그 중 한 호텔에서 묵으며 하와이를 즐겼다. 나에게 가장 신선했던 장면은 근처에 해변이 있어서인지 비키니나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현지인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침부터 바닷물을 몸에서 주르륵 흘리며 길을 건너다니고,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신발도 신지 않고 바닷물에서 막 나와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익숙할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참 신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 나도 그들처럼 다니게 되었다는 것에 그들과 동화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와이키키 해변은 생각했던 만큼 물이 깨끗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가본지 오래 되었으니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해변 자체가 굉장히 아름다웠다. 저 멀리 물거품을 잔뜩 문 파도가 치고, 따사로운 햇볕에 바다에 들어가면 시원해서 최고의 휴양지다웠다. 점심때가 되어 배가 고파진 우리들은 근처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사오기로 했다. 바다에서 나오자마자 슬리퍼를 찍찍 끌며 조금 걸어 매장에 도착. 뜨거운 햇볕에 그 사이 수영복은 70% 이상 마른 느낌이었다. 어찌어찌 주문을 해야겠기에 메뉴를 보고 시키던 중 음료를 골라야하는데 사이즈가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가보다 하고 일단 주문을 완료하고 음식을 받았다. 근데 음료 사이즈가 진짜 엄청나게 커서 좀 놀랐다. 우리나라에서 따지자면 거의 벤티사이즈. 이 사이즈밖에 없는 것에 잠깐 그렇구나 하며 새삼 미국임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마셔본 적 없는 거대한 사이즈의 콜라를 들고 가며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역시나 한 손에 그 큰 콜라를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 많은 콜라는 결국 조금 남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같았으면 태닝을 했을 테지만, 그 때만해도 어려서인지 태닝을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피부 타지 말라고 엄마가 준 선블럭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따사로운 햇볕과 사람들의 웅성거림, 살짝 불어오는 바닷바람, 바다냄새를 느끼며 깔아놓은 수건에 누웠다. 신기했던 건 많은 외국인들이 그 상태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책이 눈에 들어오는지 의문이 살짝 들기는 했지만, 그 모습이 꽤나 괜찮아 보였다. 나도 책이나 가지고 올 걸 하며 나름 그 시간을 나도 즐겼다. 최선을 다해서 그 시간을 즐기는 그들을 보며, 나도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싶었던 것 같다. 저녁에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야외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아름다운 하와이를 눈에 담으려고 애썼다. 저녁이 되자 바다는 깜깜해져서 좀 무서웠지만, 나름 그 매력이 있었다. 파도치는 소리와 함께 그 저녁을 마무리하기에 딱 좋았다.       


3. 자유로움, 여유를 부러워하다.     


한참 휴가시즌이 2012년 6월말, 친구와 여행계획을 세우던 중, 유럽을 가보자하는 의견에 합의(?!)를 보고 바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항공기 사이트를 뒤지다가 런던 인, 파리 아웃 가격이 조금 저렴하기에 바로 예매 스타트. 이렇게 나의 첫 유럽여행은 시작되었다. 여행 책도 사서 갈 곳을 미리 정하고, 날짜별로 대충 계획을 세웠다. 지금도 나는 여행 전에 여행 사이트나 블로그 보다는 여행 책을 선호한다. 물론 현지에서 가지고 다니기도 힘들고, 책이라서 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체력안배를 위해 필요한 부분만 찢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책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요즘에는 현지에 가면 길은 구글맵으로 찾아도 가기 전 사전지식이나 교통수단 같은 것은 책을 보는 것이 아직까지는 더 편한 것 같다.

드디어 D-day. 나름 처음 가는 유럽여행에 들떠서 이것저것 필요할 짐들을 싸느라(일주일 넘는 스케줄은 처음이었다)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출발 시간 전까지 공항라운지에도 밥도 먹고 면세점 구경도 하며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항공기가 늦게 출발한다는 문자가 오기 시작하더니 결국 거의 4시간을 공항에서 대기 후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출발하기도 전에 지치긴 했지만, 첫 유럽여행을 망칠 수 없기에 최대한 즐거운 마음으로 가야지 했다. 비행 중 추웠던 탓인지, 오랜 대기로 힘들어서였는지 비행 중 급체를 해 화장실을 갔다 오기도 했지만, 무사히 도착은 했다. 원래 무서움을 많이 타기에 저녁 쯤 도착하는 항공편을 예매했었는데, 비행기가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거의 밤이 되어서야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가니 바람이 엄청 불고, 날이 굉장히 쌀쌀했다. 급하게 캐리어에서 가죽 재킷을 꺼내 껴입고 숙소를 향했다. 밤인데다가 초행길이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몇 번 길을 묻고, 엄청 헤매고 나서야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나마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에 바로 짐을 푸고, 시차고 뭐고 침대에 대자로 뻗었다. 그렇게 런던에서의 나의 첫날은 썩 좋지만은 못한 기억이었다.

다음날 시차 때문인지 일찍 눈을 뜬 우리는 숙소 앞 근처에 큰 공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산책하기로 했다. 날은 언제 그렇게 추웠냐는 듯 아침부터 해가 쨍쨍이었고, 공원은 크긴 했지만 뭔지 모르는 아늑함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와 산책시키고, 조깅을 하고, 걸으며 아침공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 후 런던에 있는 동안 이 공원은 우리의 최애장소가 되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 공원을 왠지 모르게 그리워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집 앞에도 이런 공원이 있다면 매일같이 산책할 수 있을 텐데 하며 말이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이런 자연친확적 공원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나는 여행을 가면 그곳에 동화되고, 현지인들처럼 생활해보고 싶은 로망이 항상 있다. 여행객의 뻣뻣한 모습이 아니라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활과 문화에 스며들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여행을 가든 현지 시장이나 서점에 꼭 들러 현지인들의 생활을 엿보고 싶어 한다.

며칠을 런던에 있은 후, TGV를 타고 파리로 넘어갔다. TGV를 타는 역은 영화 ‘해리포터’역으로도 유명한 킹크로스역이었다. 9와4분의3 플랫폼(역 밖에 위치해있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도 찍도 있었지만, 중세시대 느낌이 물씬 나는 역 건물과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바빴다. 우리처럼 여행 온 동양 사람들, 혼자 커다란 배낭을 메고 분주히 다니는 배낭여행객들, 현지인들, 다른 유럽에서 온 많은 유러피언들, 중동 사람들 등 정말 다양한 인종이 함께 있는 모습이 나를 사로잡았다. 간단히 역에서 식사를 하고, 파리로 향했다. TGV는 3~4시간 정도 걸렸다. 중간 중간 커브 길도 있고 했지만, 엄청난 속도로 가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받을 수 있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서 짐을 풀고 이제부터 우리는 파리지앵이라며 파리의 이곳저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처음 파리 지하철을 탔다. 생각보다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파리를 비롯한 유럽은 지하철 내에 화장실이 있는 곳이 많지 않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유료 화장실을 이용해야한다는 것을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 좋지 못한(?!) 냄새가 나는 역에(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 얘기는 들었다)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제일 처음 간 곳은 말로만 듣던 에펠탑. 높은 에펠탑과 그 앞의 넓은 광장, 풀밭은 너무 아름다웠다. 에펠탑이 공사 중이어서 위에 올라가보지는 못했지만, 저녁때가 되니 에펠탑에 반짝반짝 불이 들어왔다. 지금도 가끔 동영상을 보며 그 때를 추억할 때가 있다. 그만큼 그 시간적, 공간적 상황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힐링되었던 것은 에펠탑 앞 광장, 풀밭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과 그들의 자유로움, 여유였다. 솔직히 좋은 상황, 편안한 마음으로 갔던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 자유로움과 여유를 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큰 힐링이었다. 나에게도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걱정 따위 날려버려’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벤치에 앉아 정말 아무한테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또 기억에 남는 곳은 파리하며 빠지지 않는 루브르 박물관(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몽마르뜨 언덕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영국의 대영박물관, 바티간시티의 바티간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이다. 그 앞에 서면 누구든 정말 거대하고 장엄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특히 정문에 있는 유리 피라미드는 박물관의 상징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도 원래 미술 쪽에 과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친구가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예매를 했었다. 사람들이 줄을 정말 길게 서 있어 대기하며 기다렸다. 미리 예매해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드디어 순서가 되어 소지품 검사를 한 후, 박물관에 들어갔다. 밖에서 본 것만큼 르부르는 넓고 크고 거대하고 장엄했다. 제일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해 밀로의 ‘비너스’, 앵그르, 다비드, 들라크루아, 렘브란트, 루벤스, 반 다이크 등 많은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모나리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 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보고 있었고, 작품 앞을 유리로 크게 막아놓아 가까이에서는 못보고, 멀리서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복도에도 수많은 조각품들이 있었다. 막 박차오를 것 같은 말과 금방이라도 싸울 것 같은 전사의 동상 등 감상할 작품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미술 작품에 빠져들게 된 때가. 그 후 나는 어디를 여행 가든 최소한 한군데라도 그곳을 상징하는 미술관이나 전시관을 꼭 가보려고 한다. 그 나라의 작품을 보면 그 나라의 문화도 이해하기가 쉬워지는 법이니까. 어찌나 넓은지 보다가 지친 우리는 많은 작품들을 뒤로하고 루브르 박물관을 나왔다. 반도 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나중에 후기를 보니 루브르 박물관은 하루에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며칠에 나눠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아쉬웠지만 다른 일정들도 있었기에 한 번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몽마르뜨 언덕은 솔직히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고, 사크레쾨르 대성당 근처에 위치한 예술가들의 거리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소매치기와 야바이꾼이 많아 위험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조심스러웠다. 예상대로 많은 거리의 화가들이 초상화도 그려주고, 자기 작품도 팔고 있었다. 게 중에는 유니크하고 예쁜 작품들도 많았다. 난 멋진 콧수염을 가지신 한 멋진 거리화가에게 내 초상화를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나를 그려주기 시작했다. 물론 돈을 받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것이었지만, 아주 진지하게 그려주었다. 잠시 후 초상화를 건네받았다. 나를 완벽하게 닮았다기보다는 나보다는 코가 조금 높은 내 느낌을 가진 여자가 그림에는 있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 경험을 언제 또 해보겠나 싶어서 고맙게 초상화를 받고 근처에 맛있게 식사할 만한 현지 레스토랑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 화가 분은 친절히도 추천한 레스토랑 앞까지 우리를 데려다주고 ‘salut(안녕)’ 시크하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났다. 추천받은 레스토랑은 크지는 않았지만, 정말 아늑하고 예쁜 가게였다. 관광객도 없고, 현지인들이 올 것 같은 동네 가게 같은 느낌이었다. 자리를 잡고 보니 뷰가 예술이었다. 몽마르뜨 언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맛있는 음식이 함께하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Merci, monsieur!!!

근처에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향했다. 가고 오는 중에 길에서 약간의 강매(?!)로 팔찌나 기념품들을 파는 사람들이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대성당 옆에서 하는 버스킹을 구경하느라  정신없었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이었는데, 너무 편안하게 자신만의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어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어느새 나는 그 바이올린 소리에 흥얼거리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파리지앵들의 자유로움, 예술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랑의 도시답게 여기저기 아름다운 커플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센느강을 지날 때면 아름다운 사랑의 속삭임을 하는 많은 커플들로 파리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 How Romantic!!     

밝은 빛이 있으면 어두움도 있는 법. 파리에 있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여기저기 구경을 한 후 숙소로 돌아가고 있는 길이었다. 파리의 지하철은 타고 내릴 때 우리나라처럼 표를 기계에 넣고 빼고 한다. 하지만 그 외에 밖으로 나가는 출입구 앞에서 불심검문을 할 때가 있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고 말 그대로 무작위로 표를 검사하는 것이다. 숙소로 가기 위해 출구로 나가는 데 마침 불심검문을 하고 있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서 당당히 표를 내밀었는데, 순간 검사하시는 분 표정이 안 좋아지더니 이 표는 어린이용이라며 벌금을 내고 나가라고 하는 것이다. 아침에 그 전철역 기계에서 표를 샀었는데, 불어를 1도 몰랐던 우리가 표를 잘못 샀던 모양이었다. 짧은 영어로 우리는 관광객이며, 어린이용 표인지 몰랐다고 계속 사정을 애기했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벌금을 내고 나가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뭐 별수 있는가. 우리는 1인당 적지 않은 벌금을 내고 그 곳을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새옹지마라 했던가. 이 일은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다. 조금은 좋지 못한 기분으로 다음 날 역 기계에서 전철 표를 사고 있었다. 차례를 기다려 표를 사려고 하는 찰나 우리 뒤에 서 있던 훈남 학생이(우리가 보기에 나이가 많지 않은 학생 같았다) 자기 카드로 표를 대신 사줄 테니 표 값을 달라는 것이었다. 어제의 기억도 있고, 표를 또 잘못 살까봐 무서워 누군가 대신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케이를 했다. 이내 자기 카드로 표를 사더니 우리에게 내밀며 돈을 달라고 해서 주려고 하는데, 친구가 표를 보더니 갸웃거렸다. 표가 어제 우리가 잘못 샀던 어린이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친구가 이거 어린이용 아니냐며 묻자 그 학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제스처를 하더니 자기 갈 길을 가버렸다. 다행히 우리가 돈을 주기 전에 말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어안이 벙벙해서 우리도 다시 표를 사고 우리 길을 갔다. 나중에 들어보니 가끔 관광객들에게 카드로 어린이용 표를 사주고, 표 값을 받아 약간(?!)의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우리는 전 날 있었던 해프닝 때문에 잘못된 표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 학생이 일부러 그랬던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다행히 그 이상의 찝찝했던 추억은 더는 없었다.

여기저기 파리를 구경하고 다니던 중, 어느 조용한 공원 같은 곳을 들어가게 되었다. 사이즈가 크지는 않았지만, 커다란 분수대와 그 옆에 비치용 누울 수 있는 의자들이 있는 것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계획했던 곳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며 의자에 누워 광합성을 하고 있는 것이 너무 자유로워 보였다. 우리도 얼른 자리를 잡고 의자에 누워 살짝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따스한 햇볕과 함께 짧은 순간이었지만 현지인에 동화된 것 같았다.     


4. 이렇게 가까워도 되는 거야??     


거리상으로 아주 가까운 나라. 비행시간이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나라, 일본. 지금은 완전히 한국으로 들어와 살고 계시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꽤 오랫동안 사셨고, 지금도 막내이모네가 살고 계셔 일본은 나에게 조금은 익숙한 나라이다. 친척이 있는 만큼 어렸을 때부터 자주 가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나는 (거리상의 이유가 제일 크지만) 가끔 일본으로 여행을 가고, 매번은 아니지만 갔을 때 이모네도 만나곤 한다. 이모네도 일본의 큰 명절이 있거나 여유가 될 때 한국으로 오신다. 그 때마다 우리의 가족상봉(?!)이 이루어진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본에 사셨기 때문에 놀러 가면 할아버지 집에서 묵곤 했다. 조그만 부엌과 작지만 아늑했던 다다미방에서 우리 세 식구가 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근처 빵집에서 사온 아주 두껍게 잘라놓은 식빵을 토스트기에 구워 다 같이 맛있게 아침을 먹곤 했다. 지금도 일본에 가면 두껍게 잘라놓은 식빵을 빵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걸 보면 예전에 먹던 그 식빵의 부드러운 촉감이 생각난다.

일본의 도시들 몇 군데를 가 보았지만, 대도시이든 그렇지 않든 거리가 아주 깨끗하다. 우리나라도 많은 관광객들로부터 깨끗하다고 얘기를 듣지만, 일본에 가면 길에 쓰레기나 침 같은 것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예전에 단체로 사과로 유명한 아오모리를 간 적이 있다. 현지 가정에서 머문 적이 있는데, 그들의 철저한 분리수거와 재활용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유팩을 깨끗이 헹군 후 가위로 잘라 쫙 펴서 햇볕에 말려 분리수거에 내놓는 것이 아닌가. 그 후로 나도 철저하게 분리수거를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중이다. 화장실을 가보니 변기 위에 작은 세면대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변기에 내리는 물 절약을 위해 손을 닦을 수 있는 세면대가 달려있다고 했다. 일본의 모든 화장실이 그렇지는 않지만 처음 그것을 봤을 때 조금 놀라웠다. 일본만의 감성,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도시 중에는 도쿄와 오사카를 많이 가본 편이다. 도쿄나 오사카, 두 도시 모두 정신없는 대도시여서 현지인도 많고, 관광객도 많다. 다만 내 느낌에 오사카 쪽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좀 더 활발한 것 같다. 부모님과 함께 도쿄에 갔을 때, 디즈니랜드 시(sea)가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이모네와 함께 갔었다. 일본답게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잘 해놓아서 오래 있어도 질리지가 않았다(물론 그 때는 어렸을 때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와 사촌동생들은 여느 다른 아이들처럼 캐릭터 모양의 팝콘 통을 목에 걸고 돌아다녔다.

어느 설날 때, 길고 긴 명절을 대비해 미리 오사카 여행을 계획했다. 인파로 붐비는 공항을 뚫고 오사카에 도착해 이것저것 구경을 시작했다. 그러다 목도 마르고 다리도 아파 어느 쇼핑몰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주문 후 음료를 픽업하려고 하는데, 픽업대에서 일하고 있던  여자 분이 너무나 반갑게 한국말로 한국분이냐며 묻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하니 자기는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인데, 명절 때라 한국 사람을 보니 너무 반갑고 남은 여행도 즐겁게 하라며 음료를 건네주었다. 순간 마음이 좀 짠했다. 타국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니 뭔지 모르게 뭉클했다. 가끔 외국에서 일하며 사는 모습을 꿈꾸는 나이기에 그 삶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조금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 분에게 조금 더 따듯한 미소로 답해주지 못한 게 지금도 후회가 된다. 미나상, 감바레~!!!

맛있게 음료도 마시고 휴식도 취한 후 다시 여기저기 구경하기 시작했다. 어느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가방이 있어 사려고 하는데, 점원이 한국에서 왔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는  한국 친구가 있고, 지금 한국어도 배우고 있다며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다. 일어를 잘은 못했기에 영어로 대화를 이어서 했다. 별다른 대화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현지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문화를 느끼는 것이 여행의 묘미구나 했다. 덕분에 그날은 아주 뿌듯한 마음을 가득안고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미식가들이 좋아하는 나라답게 일본에서는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신선한 스시, 다양한 직역 특산품들, 입에서 살살 녹는 햄버거 스테이크, 맛있는 일본카레,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라멘, 다양한 종류의 파르페, 아주 달달한 슈크림 등등. 하지만 이 중에서 나는 일본식 도시락을 가장 좋아한다. 굳이 식당에서 비싼 돈을 주지 않아도 마트나 푸드 코너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오니기리나 도시락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격도 식당에 비하면 저렴하고, 내 입맛에도 맞아 여행 중 즐겨 먹는다. 오니기리 또는 유뷰초밥과 다양한 반찬이 있는 도시락, 혹은 맛있는 팥밥과 반찬들을 사들고 편안한 숙소로 와 맛있게 먹어주면 그 날의 피로도 싹 풀리는 느낌이다. 양도 적지 않아 먹으면 배도 꽤 부르다. 그래서 일본여행 중 몇 끼는 도시락 먹는 것을 좋아한다.


평소에도 시끄럽고 복작복작 한 것보다는 조용한 것을 좋아해서 가끔은 대도시보다 유동인구가 적은 조용한 동네를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도쿄보다도 가까운,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놀러가는 후쿠오카를 간 적이 있다. 일본 규슈 후쿠오카현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온천과 돈코츠라멘이 아주 유명하다. 시내와 공항이 가까운 편이며, 시내도 버스로 쉽게 둘러볼 수 있어 짧은 기간으로도 충분한 여행이 가능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 같다.

후쿠오카에서 버스나 기차로 2시간 정도 가면 온천으로 유명한 유후인에 도착한다. 그래서 후쿠오카 여행 시 유후인을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나도 후쿠오카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바로 버스를 타고 유후인으로 향해 하루를 묵고 다시 후쿠오카로 돌아와 며칠 더 묵는 여정이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버스로 2시간여 달린 후 도착한 그 곳은 내가 원하던 조용한 동네였다. 유후다케 산이 웅장하게 유후인을 감싸고 있고, 살짝 낀 안개까지 더해 뭔지 모를 신비함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료칸을 미리 숙소로 잡아두었기에 바로 짐을 풀고 마을 산책을 나섰다. 예스러운 유후인 역부터 근처 동네를 산책하니 금방 저녁시간이 되었다. 꼬르륵 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식당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일찍 닫는 상점들이 많아 다른 것을 구경하는 사이 식당들이 문을 닫은 것이다. 한참을 걸어 겨우 슈퍼를 찾아 다행히 허기는 달랠 수 있었다. 료칸에는 프라이빗 온천과 일반 대중온천 두 종류가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프라이빗 온천을 해보고 싶어 신청을 하고 안내해준 곳으로 가보니 한 명이나 두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자그마한 곳이었다. 탕도 작고 공간이 협소하긴 했지만, 조용하게 따뜻한 온천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조금은 추운 다다미방에서 그 날 하루를 돌아보며 마무리하기에 료칸은 너무나 충분했다. 잠이 오지 않아 잠깐 나가서 산책을 했다. 밤인데다 가로등도 없어 살짝 무섭기는 했지만, 상쾌한 밤공기와 하늘의 수많은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있으니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뭔지 모를 막연함과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한순간 녹아 없어졌다. 나는 이 맛에 여행을 즐기는 것 같다.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긴린코 호수와 마르크 샤갈 박물관이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산책 겸 가보았다. 잔잔하면서도 햇빛에 반짝거리는 호수는 너무 아름다웠고, 바로 옆 박물관에서 마르크 샤갈 작품들을 보니 더 좋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후쿠오카로 돌아오니 좀 피곤하긴 했지만, 힘을 내 후쿠오카를 둘러보았다. 숙소에서 시내까지 걸어가며 천천히 구경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서점과 카페가 결합된 공간들이 많지만, 일본에는 예전부터 라이프스타일형 서점 ‘츠타야’를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다.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말라 시내에 있는 ‘츠타야’에 들어갔다. 가지각색의 책들(잡지만 해도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다양하다)과 생활용품들을 구경하고, 음료와 함께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후쿠오카에 있는 동안 ‘츠타야’만 두 번 이상 들렀던 것 같다. 내 최애장소였다고나 할까.     

2019년 구정에는 정말 급하게 일본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시간이 될지 몰라 망설이다가 그야말로 1~2주 전에 비행기와 호텔 예약을 했다. 설이라 그런지 도쿄나 오사카, 후쿠오카 등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이 가는 곳은 이미 예약이 끝난 데다 복잡한 도시 말고 조용한 동네로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최종 목적지를 나고야로 정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고야. 일본 중에서도 처음 가보는 도시였다. 특히 이번 여행은 힐링이 목표였기 때문에 화려한 곳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나고야 공항은 자그마했지만 아늑하니 우리를 반겨주었다. 또 숙소로 가는 길은 대도시와 달리 한산해서 벌써 마음이 편안해졌다. 큰 도시는 아니기에 며칠 동안 천천히 둘러보면 되겠다 싶었다. 이 작고 조용한 도시에 머물면서 제일 좋았던 곳은 메이조 공원이었다. 덩치가 큰 일본 까마귀가 여기저기에 있어 들어가다가 조금 멈칫하긴 했지만 말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까마귀를 행운의 동물로 여겨서 공원 같은 곳에 가면 일반적으로 까마귀가 많다. 겨울의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울창한 나무와 길게 자리 잡은 공원을 걷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아기 엄마들, 산책을 나와서 신난 강아지들, 카페에 들어가 잠시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주 평화로웠다. 공원을 걷다 피곤해져서 이들과 마찬가지로 카페에 들어가 잠시 목을 축인 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역 쪽으로 걷다보니 공원 맞은편 쪽으로 대학 같은 건물이 보였다. 일본 대학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대학생들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2월이라 방학이어서 그런지, 건물에서 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몇 개의 대학건물과 학생식당을 밖에서 구경할 수는 있었다. 캠퍼스 안에는 대학교수 같은 사람들만 몇몇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이 조용했던 건물도 학생들로 가득 차겠구나 하며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나의 돌아올 수 없는 대학시절을 떠올리며.


5. 묘한 매력을 보여주다.     


나는 여렸을 때부터 성룡, 이연걸이 나오는 영화를 참 좋아했다. 특히 ‘폴리스스토리’나 ‘황비홍’ 같은 무술영화에 열광했다. 그래서인지 처음 홍콩을 갔을 때, 영화에 나오던 소호나 뒷골목을 보고 꽤 신기해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홍콩도 스스럼없이 가게 되는 것 같다.

홍콩에 가게 되면 즐겨 찾는 곳이 있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위치한 재래시장 ‘스탠리 마켓’이다. 규모는 작지만 서울의 남대문 시장과 느낌이 비슷하다. 여기까지 가는데 이층버스로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일단 도착하면 구경거리가 꽤 있다. 노점마다 물건이 비슷하고 제품의 질도 조금 떨어져서 산적은 없지만, 활기찬 시장의 분위기와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된다. 단, 날씨가 푹푹 찌는 너무 더운 여름만 아니면. 복작복작한 시장을 빠져나오면 스탠리 베이가 보인다. 탁 트인 바다풍경과 시장과는 다른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산책하기에도 그만이다. 또 근처에 식당과 카페도 있어 쉬어가기에도 좋다.

한 번은 스탠리 마켓을 향해 이층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멀리까지 풍경을 보고 싶어 이층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가는 길에 워낙 큰 나무들이 많아서 버스가 나뭇가지들을 탁탁 치면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쿵 탁 하며 크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나뭇가지가 부딪치는 소리인가 했는데, 오 이런 옆에서 날아오던 새가 이층 창문에 부딪혔던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너무 깜짝 놀랐다. 그 후에 새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죽지 않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디즈니랜드는 유명한 테마파크다. 홍콩 디즈니랜드는 특히 각 테마 별로 여러 가지 애니메이션 관들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중 스파이더맨 관에 들어갔는데, 자그마한 배 좌석에 앉아 화면을 보며 스파이더맨의 움직임을 체험하는 것이었다. 그냥 화면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스파이더맨 움직임에 따라 좌석이 함께 움직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영하관에서 4D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평소 차멀미도 잘 하지 않는 나인데, 스파이더맨의 활발한 움직임에(건물 사이를 뛰어넘고, 건물에서 땅으로 땅에서 건물로 뛰었다ㅠㅠ) 너무 멀미가 났다. 그래서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그래도 저녁때  구경한 퍼레이드로 힘들었던 것이 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홍콩은 오래전부터 관광객이 많은 나라여서인지 친절한 현지인들이 많은 것 같다. 한 번은 홍콩에서 유명한 딤섬 가게에(많은 블로거들이 추천한 맛집) 가고 싶어 인터넷에서 찾은 주소만 들고 무모하게 찾아가려고 한 적이 있다. 날은 푹푹 찌고, 길은 모르겠고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어떻게든 찾아가고 만다하는 일념 하나로 길을 걷고 있었다. 지금은 외국에 나가면 구글맵으로 어디든 쉽게 찾아 갈 수 있지만, 그 때만해도 사용하는 게 어려웠다. 아무튼 지칠 대로 지친 나와 친구는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기로 했다.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어느 아주머니에게 용기를 내어 물었다. 우리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함께 걸으며 결국 목적지 근처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셨다. Thanks, Madam!!! 겨우겨우 찾아간 맛집 딤섬은 고생했던 기억을 잊을 수 있을 만큼 맛있었다.

홍콩의 제니스쿠키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물용으로도 많이 사오는 홍콩 쿠키이다. 가게가 몇 군데 없을뿐더러 영업도 길게 하지 않아 부지런을 떨어야 맛볼 수 있다. 친구와 홍콩을 갔을 때, 지인의 부탁도 있고 부모님께도 맛보이고 싶어 꼭 사와야지 했다. 숙소 근처를 지나가는데 많은 가게에서 곰 모양 통에 담긴 쿠키를 팔고 있었다. 심지어 가격도 저렴하게. 곰 모양 하나만 보고 마음 급하게 산 내 잘못이었다. 서울에 온 뒤 당당하게 엄마한테 보여주니 엄마 왈. “이거 제니스쿠키 아닌 거 같은데. 곰 모양이 달라. 잘못 사왔나 보다. 뭐 이것도 맛 괜찮겠지.” 어쩐지 싸고 여기저기서 막 파는 게 이상하다 했다. 흑. 맛은 나쁘지 않아 다 먹긴 했지만, 내가 짝퉁을 사오다니 나한테 실망했었다. 미리 정보를 좀 알아갈 걸 하고 말이다. 그 후 부모님이 홍콩에 여행을 다녀오면서 오리지널 제니스쿠키를 사다주셨다. 역시 잘 못 사왔던 쿠키랑 맛이 달랐다. 훨씬 부드럽고 입 안 가득 버터향이 맴돌았다. 다음에는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확실히 알아보고 가리라 또 생각했다.     

홍콩은 물가가 조금 비싼 편이다. 그래서 호텔도 아주 싼 편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의 호텔을 숙소로 하는 것을 추천한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바로 가는 다양한 셔틀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몇 군데 호텔들을 들르기는 하지만,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힘들게 찾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체력을 아낄 수 있다. 그리고 홍콩의 호텔에는 수영장이 있는 곳이 많다. 워낙 물을 좋아해서 홍콩에 가면 수영장을 최소 한 번 이상은 꼭 이용하는 편이다. 시설도 나쁘지 않아 태닝 겸 휴식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햇볕이 아주 좋고, 특별한 계획이 없는 날, 느긋한 식사를 하고 새파란 하늘을 보며 누워있으면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다. 피부가 하얘 태워도 빨개지기만 하지 잘 타지 않는 나이지만, 이런 때는 태닝을 해줘야한다. 비치 의자에 누워 살짝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행의 피로도 풀린다. 그러다가 너무 더워지면 수영장으로 폴짝. 시원한 물에 몸을 식히며 우아하게 수영을 즐긴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홍콩 여행의 패턴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또 홍콩은 쇼핑의 천국으로 유명하다. 물론 물가가 비싼 만큼 항상 물건이 싼 것은 아니다. 6~9월, 12~2월 이렇게 1년에 두 번 세일기간이 있다. 이때는 세일 율이 아주 높아 원하는 상품을 아주 싸게 살 수 있다. 그래서 이 기간에 맞춰 홍콩을 가신다면 여러 개의 쇼핑몰들을 돌아보며 세일 제품을 쇼핑하는 것을 추천 드린다. 친구랑 처음으로 둘이서 홍콩을 갔을 때 이 사실을 모르고 갔었는데, 마침 세일기간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저것 싸게 쇼핑할 수가 있었다.         

6. 여행은 역시 짜릿하다.     

런던, 파리에 이은 나의 두 번째 유럽여행의 종착지는 이탈리아였다. 오랜 커피숍 운영을 접고 떠난 이탈리아. 밀라노로 들어갔다 피렌체로 옮겨 머문 후, 다시 밀라노로 와 며칠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가고 싶었던 두오모, 미술관, 유로스타 등등 필요한 예매를 미리 하고, 준비를 단단히 해 출발했다. 너무 오랜만에 가는 유럽이라 장거리 비행이 사실 힘들기는 했다.(자그마치 12시간에 육박하는 비행시간ㅠㅠ) 과연 이탈리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두근거림을 가지고 밤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장거리 여행을 갈 때, 우리나라 국적기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요즘에는 저가비행기도 많이 있지만, 먼 거리를 가는 경우 혹시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되도록 국적기를 타려고 한다. 상대적으로 국적기가 좀 더 비싸기는 하지만, 마일리지 적립이라는 큰 이점이 있기에 그것으로 만족한다. 또 시즌별로 국적기 항공사마다 프로모션이나 세일을 하는 경우가 있어 싸게 표를 구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저가항공이랑 가격차이도 별로 나지 않아 국적기를 이용하는 것이 이득일 때도 있다. 이탈리아에 갈 때도 국적기를 탔는데, 진행되는 신용카드 프로모션이 있어 싸게 표를 예매했다. 참고로 성수기 때 다른 나라 국적기가 더 싸게 나오는 경우도 있어 이런 때는 마일리지를 포기하고 외국 국적기를 이용 할 때도 있다. 비행기 표라는 것이 워낙 날마다, 주마다, 시즌마다 가격이 달라 여기저기 사이트로 발품을(직접 발로 뛰는 발품은 아니지만) 팔다 보면 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것도 이래저래 바쁜 일이다. 특히 이탈리아같이 관광객이 많은 나라 같은 경우, 관광지를 구경하고자 한다면 한국에서 미리 예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현지보다 싸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매를 하고 갔어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매하는 시간만이라도 줄이는 것이 현명한 것 같다. 물론 해외 사이트에서 예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릴 수도 있지만. 그나마 한국에서 미리 예매를 했기에 구경하고 싶었던 곳을 다 구경할 수 있었다.


오랜 비행 끝에 도착한 밀라노. 중앙역까지는 공항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버스 안에서 기사분이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연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탈리아어가 나오고 있었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신나게 남녀 디제이가 말하고 있는 라디오를 듣고 있자니 그제서야 이탈리아에 도착한 실감이 났다. 중앙역에 내려 숙소를 찾자니 날도 어둡고, 어디가 어디인지 몰라(도착한 날이라 현지 유심 칩을 못 사 인터넷을 못하고 있었다) 택시를 탔다. 주소를 보여주니 세상에 5분도 안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중앙역 근처 숙소였는데 길을 몰라서 걸어갈 수 있는 길을 택시를 탔던 것이다. 뭐 별 수 있나. 데려다 주신 것만 해도 감사했다. 숙소는 생각보다 아늑하고 깨끗하고 좋았다. 조식도 먹을 수 있는 자그마한 식당도 있어 일단 안심이 되었다. 그 날은 짐을 풀고 앞으로의 일정을 위해 푹 쉬었다. Bene chiedere, Italia~!

다음날, 여유롭게 조식을 먹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현지 유심 칩을 사는 일이었다. 알아보니 로밍비보다 현지 유심칩을 사서 끼는 것이 훨씬 저렴했다. 한 번 사면 있을 동안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기가여서 그게 더 낫다는 판단 하에 말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유심 칩을 살 수 있는 중앙역으로 향했다. 먼저 인터넷을 해결하고 중앙역에서 기차로 피렌체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가게에는 벌써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줄을 서 있는 동안 계속해서 사람들이 들어왔다.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둘 뿐이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참을 기다리고 겨우 유심 칩을 사서 인터넷을 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느긋한 유럽 사람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잘 기다리는 것 같다. 그래, 여행에서 급할 거 뭐 있나. 인터넷을 사용하게 된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기차는 미리 예매를 해왔기에 플랫폼에서  우리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이탈리아여서 가방을 최대한 몸 가까이 두고 계속 신경을 썼다. 해외에서 돈이나 캐리어라도 없어지면 어쩌지 생각하기도 싫다. 다행히 여태껏 해외에서 뭘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가 탈 기차가 들어오고, 우리는 캐리어를 최대한 곁에 두기 위해 짐을 위에 올리기로 했다. 너무 높아서 우리끼리 들어올리기에는 무리가 있어 근처 자리에 있던 건장한 서양 아저씨께 부탁을 해 올려주셨다. Grazie, zio. 복 받으실 거예요.

기차에서 나눠준 과자와 물을 먹고 마시는 동안, 피렌체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야말로 푸르렀다. 하늘도 파랗고, 군데군데 보이는 나뭇잎의 초록색도 괜히 마음을 설레게 했다. 달려가는 기차소리만 어렴풋이 들릴 뿐 그 시간은 너무 평화로웠다.                  


피렌체는 관광지답게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여기저기 즐거워 보이는 관광객들, bello를 외치며 그들을 맞이하는 현지인들, 가끔 다니는 경찰들까지 서로 한데 섞여 사는 느낌이 들었다. 항상 관광객들을 상대하며 이제는 이골이 났을 지도 모르지만. 일단 피렌체는 작은 도시라 웬만한 곳은 다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구글맵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어서 너무 편했다. 교통비도 들지 않아서 더욱 더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일단 두오모부터 구경하기 시작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피렌체에서도 두오모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두오모(Duomo)는 이탈이아어로 ‘대성당’ 자체를 의미하는데, 이탈리아에는 지역마다 두오모(대성당)가 있다. 그 중에서도 피렌체와 밀라노의 두오모가 유명한데, 두 군데 다 갈 예정이었다. 숙소에서 조금 걸으니 바로 두오모가 보였다. 둥근 지붕이 있는 고딕식 첨탑이 일단 눈에 띄었다. 장미색, 흰색, 녹색의 3색 대리석으로 꾸며진 외관은 화려했고, 그 안은 더 화려했다. 나중에 들으니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단다. 어쨌든 두오모를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섰다. 앞에서 직원분이 땀을 흘리며 열심히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우리는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표를 예매해놔서 일단 내부를 보고 두오모 꼭대기까지 올라가보기로 했다. 내부는 장엄하면서도 화려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으로 인해 웅장했고, 천장은 아름다우면서도 신화에나 나올법한 화려한 그림들로 가득했다. 돔으로 되어있는 만큼 위로 높아서 꼭대기까지 가는 것이 만만치는 않았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몇 층이나 올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엄청 많은 계단을 헉헉대며 거의 기다시피해서 올라간 그 곳은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피렌체의 푸르다 못해 새파란 하늘, 그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빨간 벽돌들을 보고 있으니 너무 억울했다. 조금 더 일찍 와보지 못한 것이. 충분히 내 눈과 마음에 저장해야겠다며 연신 핸드폰 카메라를 찍어댔다. 동영상까지 정신없이 찍고 나니 다시 내려갈 길이 조금 막막하긴 했다. 열심히 내려와 내부의 웅장함에 다시 한 번 놀라고 두오모를 나섰다.

이탈리아는 예부터 가죽 산지로 유명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피렌체하면 가죽시장을 빼놓을 수가 없다. 두모오에서 나와 천천히 걷다보니 어느새 가죽시장이 보였다. 가죽 질 좋기로 유명한 곳이기에 이곳저곳 둘러보다 마음에 쏙 든 가죽 도장지갑을 발견했다. 안에는 거울도 달려있었다. 아기자기 한 게 예뻐서 얼른 구입하고, 또 다른 곳을 기웃기웃했다. 친구는 가죽시장에서 유명한 장갑 가게에 들어간 베이직한 컬러인 블랙과 그린 색 장갑을 구매했다. 가격은 적당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메디치가가 아주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중부지방 피렌체공화국의 평범한 중산층가문이었으나 은행업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면서 가문이 유명해졌다. 이 가문은 교황청과 거래로 막대한 부를 쌓아갔다. 이를 기반으로 정계에도 진출해 활약한다. 귀족에게 유리한 세금제도를 철폐하고 평민에게 이익이 되도록 혁신함으로써 상당한 돈을 공화국에 기부해 귀족과 평민 양쪽 모두의 지지를 받았다. 문예부흥사업에도 많은 자금을 기부하며 나중에 피렌체에 르네상스가 열리기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지금도 피렌체에는 메디치가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한 예로, 우리도 둘러본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은 메디치 가문의 개인저택으로 아직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 입장료만 내면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그야말로 메디치가 화려함의 극치를 볼 수 있다. 몇 층에 걸쳐있는 수많은 개인 방들, 각 방마다 있는 메디치가 사람들의 초상화, 연회장, 화려한 테이블이 있는 다이닝룸, 당대 작가들의 작품들 등등 상상을 초월할 만큼 대저택이었다. 그들이 사용했던 침대와 가구들도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부유하게 사는 가문도 있었구나 싶었다. 그들의 부와 세력이 어마어마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만큼. 특히 앞에도 언급했듯이 각 방마다 메디치가 사람들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할아버지부터 꼬마 아이에 이르기까지 그들 가문의 문장만큼 소중하게 여겼음을 짐작케 했다.    

피렌체에서 또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바로 우피치미술관이다. 고대 그리스의 미술 작품에서 렘브란트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소장하고 있지만, 르네상스 회화의 걸작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어 지금까지도 손꼽히는 미술관 중 하나이다. 그 주변은 베키오 다리와 이어지는 까닭에 더욱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저 멀리 보이는 예스러운 건물들과 유유히 흐르는 강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다. 또 예쁜 사진 스팟도 많아 인생 샷을 남기고 싶은 분이라면 꼭 가보길 권한다.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사진을 연속으로 찍었을 정도였으니. 우피치 미술관은 워낙 관람객이 많아 몇 십 명 단위로 입장을 허용하기 때문에 일찍 가는 편을 추천한다. 우리도 일찍 갔음에도 불구하고 줄을 서서 입장했다.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체력의 한계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의 향연>, 다빈치의 <수태고지>, 미켈란젤로의 <성가족>,<다비드>, 라파엘로의 <어린 요한과 함께 있는 예수와 성모>, 카라바조의 <바쿠스> 등등 보고 싶었던 작품들을 감상하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다비드>는 당대 최고의 조각가이자 미술가였던 미켈란젤로의 재능이 충분히 발현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사람이 서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조각상이라면 말 다한 것 아닌가. 미술작품을 평소에도 좋아하는지라 이 작품들을 다 볼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가까운데 살면서 매일같이 이 작품들을 보러 올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상상도 잠깐 했다. 그만큼 이 작품들은 나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르네상스 회화들이 많아 작품들의 주제가 비슷비슷하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하지만 그 단점을 충분히 커버할 만큼 작품들은 그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특히 우리가 갔을 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특별전을 하고 있어서 알고 있는 작품 외에 다양한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워낙 다빈치의 팬이어서 기념 숍에서도 다빈치에 관한 책이 있어 얼른 집어 들었다. 원서였지만, 언젠가는 읽어보겠지 하며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나중에 숙소로 돌아와서 읽어봤는데, 다빈치의 초기작품 부터 유명한 작품들과 다빈치에 관한 텍스트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기에 지금도 내 방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언젠가는 다 읽게 되겠지.

다음으로 우리가 간 곳은 미켈란젤로 광장이었다. 붉은 지붕으로 가득한 피렌체가 한눈에 보이는 광장은 니콜로 다리 건너 아르노강 오른쪽에 위치해있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서 찾아가는 데 애를 먹긴 했다. 역에서 나와 구글맵 만을 바라보며 길을 찾았다. 등산정도는 아니었지만, 꽤 높고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가니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너무 덥고 지쳐 근처에서 물을 사가지고 목을 축이며 광장에 다다랐다.(참고로 이탈리아는 에스프레소와 물 값이 거의 비슷하다. 1~3유로 정도) 그제서야 광장의 탁 트인 넓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날은 더웠지만, 바람도 살살 불어왔다. 뭔지 모를 뿌듯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일단 그 찰나를 너무 간직하고 싶어 사진과 동영상을 정신없이 찍어댔다. 그 순간을 하나라도 놓치기 싫었다. 그리고 잠시 벤치에 앉아 따사로운 햇볕과 바람, 눈앞에 펼쳐져있는 풍경을 만끽했다. 친구와 함께 있었지만, 각자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우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친구는 책을 읽고, 나는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며 잠시나마 각자의 휴식을 취했다. 참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광장 중앙에는 미켈란젤로 탄생 4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다비드> 복제품이 있었다. 이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음 일정을 위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이탈리아는 피자와 파스타의 본고장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가게를 가든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피자는 그렇게 기름지지도, 헤비하지도 않고 딱 적당했다. 가격도 착했다. 나는 원래 도우가 얇은 피자를 선호하는데, 도우가 너무 두껍지도 않고 쫄깃해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나만 입맛에 맞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같이 갔던 친구도 엄청 잘 먹었다). 파스타는 면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다양했다. 한국에서 먹어보지 못한 종류도 많았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기 에는 조금 겁이 나 익숙한 파스타면을 위주로 먹었다. 소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토마토 베이스를 비롯해 다양한 페이스트를 경험해볼 수 있었다. 거기에 약간은 달달한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이 더해지니 이탈리아의 분위기와 함께 더 맛있게 느껴졌다. 싱그러운 공기와 멋지게 턱시도를 차렵 입은 직원 분들의 우아한 몸짓이 한데 어우러져 멋을 더해갔다.

특히 전직 바리스타였던 나를 끌었던 것은 원조 격인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였다. 에스프레소는 곱게 갈아 압축한 원두가루에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통과시켜 뽑아낸 아주 진한 이탈리안식 커피를 뜻한다. 카페를 운영하며 수도 없이 내렸던 에스프레소의 원조 맛이 너무 궁금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스프레소를 주문해서 마신다. 갓 뽑은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한 입에 쭉 들이키는 손님들이 많다. 우리나라처럼 무언가를 섞은 베리에이션 음료 메뉴도 있긴 하지만 그 메뉴들은 대부분 관광객들의 차지다. 그 맛이 너무 궁금했다. 게다가 가격도 엄청 저렴했다. 비싸도 2유로 정도면 정말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이탈리아였다. 원래 에스프레소는 설탕을 넣어 섞어 마셔야 하는 음료이기에 나도 도전해봤다. 한국에서도 커피 맛을 잡기위해 마셔봤지만, 이곳의 에스프레소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처음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를 마셔본다는 설레임을 느끼며 내 입에 머금는 순간 그 맛은 놀라웠다. 쓰디 쓴 에스프레소와 설탕의 조합은 여행의 피로를 싹 가시게 해주었고, 크리미 하면서도 부드러운 그 맛은 평생 잊어버리지 못할 맛이었다. 한 번 에스프레소에 입맛을 들이자 어디를 가든 나는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물론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이긴 했지만. 깊은 풍미와 텁텁하지 않은 끝 맛이 특히 나를 매료시켰다. 덕분에 실컷 에스프레소 맛을 즐기고 올 수 있었다. 예쁜 비알레띠 모카포트, 데미타세 잔(에스프레소 잔)과 함께 말이다.

피렌체에 있는 동안 우리가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숙소 근처 광장 중앙에 있는 유명세를 탄 카페였다.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앞쪽에 탈 수 있는 예쁜 회전목마도 있는 뷰가 좋은 곳이었다. 항상 손님들로 북적이고, 야외 테이블도 있어 많은 비둘기 친구들이 찾아오는 우리의 아지트였다. 야외에 앉아있을 때는 신경을 바짝 쓰고 있어야했다. 그래야 내 맛있는 음료와 디저트가 비둘기의 밥이 되지 않으니까. 그곳의 판나 코타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Panna cotta’는 이탈리아에서 오래전부터 먹어 온 디저트로 생크림에 우유, 설탕, 향료 등을 넣어 젤라틴으로 굳힌 과자를 말한다. 많이 달지도 않으면서도 폭신폭신한, 입에서 사르르 녹는 그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맛난 디저트를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딱히 할 일이 없어도 심심하지 않았다. 사람 구경하는 게 이리 재미있을 줄이야. 거기에서 일하는 홀 직원은 항상 에너지가 넘쳐나는 듯 했다. 피렌체의 온화한 날씨와 이탈리아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때문인지 항상 싱글벙글 콧노래를 부르며 홀을 돌아다녔다. 덕분에 카페에 가면 기분이 좋아졌다. 몇 번 봐서인지, 어느 날은 우리에게 조크도 날려주었다. 지금도 그 분은 카페에서 열심히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을까. Chao~      

그렇게 정신없이 며칠을 피렌체에서 보낸 후, 다시 밀라노로 출발했다. 올 때처럼 기차를 타고, 캐리어를 옆에 분에게 부탁해서 위에 올렸다. 밀라노는 어떤 도시일까. 피렌체와는 어떻게 다를까 머릿속으로 상상하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있었다. 중앙역에서 터덜터덜 나오자 말라노는 따사로운 햇볕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확실히 관광지인 피렌체와는 다르게 건물들이 많은 차가운 도시의 느낌이었다. 역 앞에는 몇몇 사람들이 스케이드 보드를 타며 한낮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체크인을 먼저 한 후, 전철로 몇 정거장만 가면 되는 두오모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표를 사려고 기계에 줄을 서있는데, 가만히 보니 머리를 길게 기른 몇몇 여인들이 기계 옆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순서가 다가왔고 표를 사려고 하는데, 우리에게도 무언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아마 표를 대신 사준다는 얘기인 듯 했다. 우리는 단번에 “NOP!”이라 대답하고, 기계에서 표를 샀다. 상황을 보아하니 그들은 집시여인들이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집시들을 조심해야한다고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마주치니 조금 당황스럽고 무섭기도 했다. 기계마다 몇몇의 집시여인들이 있어서인지 조금 있자 경찰들이 와서 그들에게 뭐라 얘기하고 돌아갔다. 아마 하지 말라고 경고를 했을 테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그들은 슬금슬금 어디에선가 또 나타났다. 그 후로는 집시들을 보지 못했지만, 더 조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가방 줄을 더욱 꽉 잡고 다니기 시작했다. 여행 중에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전철은 괜찮았다. 조금 어둡고 오래된 듯 했지만, 이 또한 여행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 아닌가. 몇 정거장을 가서 두오모 쪽으로 출구를 빠져나가자마자 수많은 비둘기들과 큰 분수가 있는 광장이 보였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 등 꽤 북적였다. 조금 걸어가자 뾰족한 소첨탑의 밀라노대성당이 보였다. 밀라노 두오모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고딕양식의 교회로 19세기 나폴레옹 왕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135개의 첨탑, 성모마리아와 성 암브르조의 일화를 기록한 청동문 등으로 이루어져있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약간은 흐려진 밀라노의 날씨와 살짝 색이 바랜 대성당은 묘하게도 잘 어울렸다.

오랜 세월 당당하게 건재하고 있는 두오모는 장엄했고, 넓은 자연은 나를 잠시나마 겸손하게 만들었다. 그곳을 시작으로 근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아이들에게 몸보다 더 큰 비누풍선을 만들어주는 사람, 행사를 하는지 다소 복잡했던 광장, 두오모 성당 바로 옆에 있는 라 리나센테(la Rinascente) 백화점 등등 여러 기억이 떠오른다. 백화점은 생각보다 컸고, 다양한 제품들이 있었다. 친구는 그릇에 관심이 많아서 평소 사고 싶어 했던 이탈리아 브랜드의 접시 두 개를 싸게 구매했다. 나는 자연스레 커피제품으로 눈을 돌렸다. 역시나 비알레띠 제품을 판매 중이었다(에스프레소를 사랑하는 나라답다). 우리나라에서 본 적 없는 블랙 드리퍼가 눈에 띄었다. 플라스틱이여서 가격도 착했고, 꽤나 실용적으로 보였다. 실제로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 드리퍼로 엄청나게 커피를 내려마셨다. 역시 나는 실용적인 게 좋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우리나라처럼 리빙 용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난 자석에 이끌리듯 목욕가운 파는 매장에 들어갔다. 마침 집에 가운이 하나밖에 없어 필요하던 참이었다. 일단 다양한 컬러와 사이즈(나는 체구가 작아 작은 사이즈를 사야한다)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매장 직원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가 훈남 정도를 넘어 엄청나게 핸섬하고 친절했다. 결국 그의 매력(?!)에 넘어가 올리브색 목욕가운을 사고 말았다. 그 가운은 아직도 열심히 사용 중이다. 한 가지 놀랐던 점은 이 백화점에 ‘무인양품’이 들어와 있단 것이었다. 자그마한 매장이었지만, 눈에 익은 물건들이 많았다. 가격도 우리나라에서 파는 가격과 비슷했다. 물론 ‘무인양품’이 일본 브랜드이기는 하지만 이 유럽에 있는 백화점에 저 멀리 동양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런던, 파리  에서도 못 봤던 브랜드가 이탈리아 백화점에 있으니 좀 부럽기도, 놀랍기도 했다.  

친구는 그 날 저녁 유명한 ‘라 스칼라’에서 오페라를 본다며 한국에서 예매를 했었다. 나는 관심은 있었지만, 아무래도 체력을 위해 쉬기로  했기에 적당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그 김에 밖에서나마 살짝 ‘라 스칼라’를 볼 수 있었다. 유명한 오페라하우스답게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고, 건물은 멋스러웠다.  

돌아오는 길은 혼자라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숙소에는 무사히 도착했다. 일단 씻고 TV를 켰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적당한 채널을 틀어놓고 밀려있던 개인적 연락을 했다. 부모님께도 전화 드리고, 친구와도 카톡으로 연락하고, 인터넷 뉴스도 보면서. 난 여행하면서 이 시간을 정말 사랑한다. 피로도 풀고 그리웠던 이들과 연락도 하는 이 시간은 항상 즐겁다.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12시가 넘어 친구는 우버 택시를 타고 무사히 돌아왔다. 내심 친구가 걱정되었기에 다행이었다. 오페라는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이렇게 밀라노를 즐기고 있었다. 시차적응도 완벽하게 끝나 더없이 좋았다.     

다음날이 되고 본격적으로 밀라노의 여기저기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일단 브레라 미술관부터 가보기로 했다. 우피치 미술관에 버금가는 회화의 보고인 브레라 미술관은 주로 북부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걸작을 소장하고 있다. 팔라초 브레라 2층에 있으며, 1층은 미술 학교인 브레라 아카데미가 사용하고 있다. 천점이 넘는 소장품 중에서도 조반니 벨리니의 <피에타>, 틴토레토의 <성 마르코 주검의 발견>, 라파엘로의 <성모 마리아의 결혼>,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 등이 특히 유명하다.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들어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는 밀라노 낭만주의 화가 하예즈의 대표작 <키스>도 놓치지 말아야한다. 이렇게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게 아마 많은 관광객들을 이탈리아로 끌어들이는 이유일 것이다.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작품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아쉬운 게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러 영화에서도 소재가 되는 만큼 직접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현재 <최후의 만찬>은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몇 달 전부터 미리 표를 예약해야 했는데, 그것을 몰랐던 우리가 느긋하게 표를 알아볼 때는 이미 매진이었다. 그래서 아쉽게 볼 수가 없었다. 너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다. 다음에 올 때는 이것을 리스트 맨 위에 두리라 다짐하는 수밖에.

밀라노에 있는 동안 사실 여기저기를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일정도 짧았고, 중앙역에서의 집시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많이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안전을 우선시?!하는 우리가 겁이 좀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무섭고 위험한 거를 싫어하는 만큼 안전하게 다니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어쨌든 내가 겪어 본 이탈리아는 본인만 조심한다면 다니기 편한 나라였다.

그리고 밀라노는 역시 패션을 사랑하는 도시였다. 세계4대 패션 위크 중 하나인 밀라노 패션 위크가 열리는 도시답게 여기저기에서 패피들이 보였다. 특히 남성복에 특화되어 있는 만큼 멋진 수트를 차려입은 남자들이 많았다. 베스트까지 멀끔하게 차려입은 그들은 바로 런웨이에 서 워킹을 해도 될 정도로 훌륭했다. 여유롭게 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우리는 넋을 놓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주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수트를 차려입은 몇몇이 카페 밖에서 두런두런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완벽했던 그들은 수트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굉장한 눈호강을 한 셈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상당기간 후유증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멋진 그대들이여, Bravo!!!     


7. 역시 더웠다, 태국      


어느 새 또 다가온 휴가시즌. 이번에는 어디를 가볼까 하고 고민하던 중, 태국 방콕이 눈에 띄었다. 얼마 전에 다녀온 친구의 추천도 있었거니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나라여서 도전해보고 싶었다. 비행이 서울에서 늦은 오후에 출발하여 방콕에 새벽 도착, 방콕에서 밤에 출발하여 서울에 이른 아침에 도착하는 여정이어서 걱정이 좀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 함께하기로 한 친구는 도착하는 날 바로 출근해야 했기에(나는 하루 여유가 있어 그나마 괜찮았다) 최대한 피곤하지 않게 방콕을 즐기기로 했다.

생각보다 긴 비행(6시간) 후, 자정이 다 되어서야 방콕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기위해 순서 표를 뽑고 기사님을 기다렸다. 방콕 공항에서 택시를 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순서 표만 뽑아놓고 기다리면 순서대로 택시를 탈 수 있다. 게다가 워낙 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비행편이 많아 주위에 사람들도 꽤 있어 많이 위험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습관인 것 같다. 기사님께 주소를 얘기하거나 종이에 적어 보여주면(영어보다는 태국어로 적어주는 게 더 편하다) 편하게 숙소까지 갈 수 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려면 하이웨이(고속도로)로 가는 것이 빠르지만 통행료를 손님이 직접 내야하기 때문에 차가 막히지 않는 새벽에는 굳이 하이웨이로 갈 필요가 없다. 우리도 새벽에 탔기에 일반 도로로 가달라고 했고, 금방 숙소에 도착했다. 오는 날 공항까지는 시간 상 하이웨이를 이용했다. 시간절약을 원한다면 조금이라도 빠른 하이웨이로 가달라고 해보시길. 도착한 날은 새벽에 도착한 탓인지 바로 골아 떨어졌다.

다음날 맛있는 조식을 먹고 시내로 나섰다. 다행히 우리가 묵은 호텔은 역 바로 근처였다. 그래서 어디로든 움직이기가 편했다. 여행을 가면 습관적으로 숙소를 여기저기로 다니기 편한 시내 쪽으로 잡는다. 그래야 시간절약을 할 수 있고, 지치면 빨리 숙소로 돌아올 수도 있다. 체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나는 구경이나 관광을 하다가 쉽게 지치는 편이다. 특히 스트레이트로 몇 시간씩 걸으면 금방 지친다. 그럴 때에는 근처 카페에 가서 쉬거나 숙소가 가까우면 숙소로 돌아와 짐을 놓고 잠시 쉬었다 다시 나가는 편이다. 그렇게 체력보충을 해줘야 덜 힘들다.

방콕 내에서의 교통수단은 크게 버스, BTS, MRT, 택시, 툭툭이 등이 있다. 특히 버스는 잘 알아보고 타야한다. 에어컨이 있는 버스와 없는 버스로 나뉘기 때문이다. 물론 에어컨이 없는 버스는 가격이 더 싸지만 습한 방콕에서 타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싶다. BTS는 지상철, MRT는 우리가 흔히 아는 지하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하철이나 지상철 모두 노선이 복잡하지는 않아 다니기가 쉬웠다. 그리고 역마다 가드들이 많아 생각보다 치안이 괜찮았다. 택시는 한 번 탔었는데, 다행히 바가지를 당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기사분이 영어를 잘 못했다. 게다가 발음과 억양이 우리와 달라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었다. 그래서 전날 갔던 곳을 다시 가기도 했다.(기사분이 가려던 목적지를 못 찾아 근처 갔던 곳을 또 가주었다. 기사 분께는 영어 말고 태국어 주소를 보여주는 걸로) 그리고 카 트래픽이 너무 심해 택시요금도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그래서 나와 친구도 태국에 있는 동안 거의 BTS, MRT를 이용했다.

역까지 가는 길에 큰 쇼핑몰도 있고, 화려한 사원도 있어 구경거리가 충분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매력에 우리는 어느새 태국에 빠져들었다. 날씨가 엄청 덥긴 했지만(나는 겨울태생이라서 그런지 더위를 진짜 많이 탄다). 그래도 실내는 에어컨이 시원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물가가 싼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몰에 있는 큰 마켓에 갔는데, 망고를 비롯한 열대과일과 식재료의 가격이 엄청 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과일들과 다양한 향신료들이 눈길을 끌었다.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재래시장이나 마켓을 가보는 것을 꼭 추천한다. 시장을 가보면 현지인들의 삶과 먹거리 등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다. 특히 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식재료나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은 흔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먹지는 않더라도 구경은 꼭 하게 된다. 현지에서의 삶을 잠시나마 느껴보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특권이자 묘미이니까. 밖은 습하고 더워서 쉽게 지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실내에 있었다. 그런데 구경하던 몰 앞에 아기자기한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안에 있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당장 구경하러 나갔다. 으. 습하고 요리하는 불 때문에 더 더웠지만, 신기한 먹거리가 너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도 없는 빅 사이즈 생선구이, 노란 망고밥, 다양한 종류의 꼬치, 도전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름 모를 반찬들 등등. 많은 관광객과 현지인들 사이에 껴서 재래시장을 누볐다. 친구는 가족과 지인선물로 가죽 팔찌도 샀다. 고심하며 같이 골라줬었는데,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겠지 싶다.

다음날은 친구가 서울에서부터 노래를 불렀던 바디케어제품을 보러 갔다. 이제는 숙소에서 역까지 가는 길이 익숙해졌다. 걷기에 딱 좋은 거리라 수다 떨며 가니 금방 도착. 느긋하게 표를 사고 바디케어제품 브랜드가 모여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 초록창 블로그를 찾아보니 브랜드를 모아놓은 곳이 있어서 아, 여기다 싶었다. 친구도 너무 좋아하며 출발했던 터라 아주 기대가 되었다. 큰 몰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바디 케어 브랜드가 한데 모여 있었다. 아주 하이레벨 고급브랜드부터 우리가 아는 브랜드까지 다양했다. 몰론 가격은 우리나라의 반 가격 정도로 훨씬 저렴했다. 우리는 이 브랜드 저 브랜드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다. 향도 맡아보고, 설명도 들으며 한참을 구경했다. 다들 친절하고 설명도 어찌나 잘해주는지. 마음에 든 브랜드에서 우리는 바디오일, 바디로션, 방향제 등등 다양한 제품들을 사며 아주 뿌듯해했다. 다리가 아파진 우리는 같은 층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목을 축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커피 한잔도 못 마셨네 등의 일상적인 수다를 떨며.

한참 쉬고 난 후, 다른 곳으로 가기위해 쇼핑몰을 나설 때였다. 출구가 어디였는지 두리번거리다가 어떤 아주머니와 부딪혔다. 친구가 조심하라고 알려주기도 전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부딪힌 부위가 너무 아팠다. 그래도 무의식중에 몇 번을 미안하다고 말하며 사과의 뜻을 계속 전했다. 나와 부딪히신 분은 자기 가방을 가슴 쪽에 꼭 품은 채 무시무시하게 나를 향해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좋은 뜻이 아님은 분명했다. 약간 비정상적인 그녀와 행동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다행히 곁에 있던 가드가 바로 우리에게 달려왔다.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드들은 그녀에게 가방을 보여 달라 요구하며 검문을 했다. 딱히 특이사항은 없었는지 조금 후 그녀를 보내주었다. 나는 얼른 몸을 살펴(부딪힌 곳인 너무 아파서) 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바로 가방과 지갑을 확인했다. 다행히 여권을 비롯한 소지품들은 그대로 있었다. 휴 안도의 한숨을 쉬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친구와의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괜찮다며 친구를 안심시켰다.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어서 화장품 코너의 직원에게(예쁜 트렌스젠더 직원이었다. 태국은 트렌스젠더가 굉장히 많은 나라로 이들은 하나의 성으로 인정받는다) 나가는 길을 물었다. 그분은 약간의 동정 섞인 제스처와 눈빛을 보내며 길을 알려주었다. 아까부터 상황을 봐왔는지 ‘하필이면 그런 사람이랑 부딪힐게 뭐람. 조심해서 다녀.’라고 말하듯이. 호사다마라 해야 되나. 너무 좋았던 여행에 옥에 티라고나 할까.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태국은 먹거리의 천국이다. 우리나라에도 먹거리가 많지만, 다른 나라의 새로운 먹거리를 보면 멈출 수가 없는 법이다. 입이 짧은 나지만, 가기 전부터 꼭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이 있었다. 바로 뿌팟퐁커리. 커리에 꽃게, 계란, 야채를 함께 볶은 것으로 코코넛크림을 넣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태국 대표 요리이다. 평소에 갑각류를 좋아하던 터라 꼭 맛보고 싶었다. 그래서 태국에 가기 전에 맛집을 미리 찾아놓았다. 한번은 좋은 식당에서 먹어보는 것이 또 여행의 즐거움 아닌가. 큰 몰에 위치한 분위기 좋은 식당에 들어갔다. 미리 알아본 곳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식당에 손님이 많았지만, 서비스는 굉장히 훌륭했다. 뿌팟퐁커리와 팟타이(쌀국수 요리)를 시켰다. 고수 같은 향신료를 전혀 못 먹는 우리는 주문하면서 고수를 빼달라고 주문했다.(고수를 빼달라고 하면 빼고 음식이 나온다) 따끈한 음식들이 나오고 어느새 우리는 흡입하기 시작했다. “맛있다”를 연신 외치며 신나게, 배부르게 먹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태국은 동남아답게 열대과일들이 굉장히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과일들도 많다. 특히 망고는 가격도 저렴하고, 노랗게 잘 익어 달고 맛있다. 망고를 메인으로 디저트를 하는 유명한 가게가 있어 습한 무더위를 뚫고 가보기로 했다. 몇 군데 지점이 있었는데, 그 중 한 군데를 가보니 테이크아웃만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쳤던 우리는 시원한 곳에서 편하게 먹고 싶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근처에 큰 2호점이 있다고 해서 겨우 찾아갔다. 구글맵과 현지인 몇 분에게 물어물어 힘들게 가서인지 망고의 시원함과 달달함이 더 맛있었다. 어려운 레시피의 디저트는 아닌 것 같았지만, 망고와 소스가 묘하게 잘 어우러지는 맛이었다.

태국은 코코넛도 유명하다. 사실 평소에 약간 느끼한 맛이 나서 코코넛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데 장을 볼 겸 찾은 몰 슈퍼마켓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났다. 향을 쫓아가보니 주인공은 코코넛빵이었다. 갓 구운 고소한 냄새가 안사고 배길 수가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하나씩 사들고 크게 베어 물었다. 속은 너무 촉촉하고 부들부들했고, 씹을 때 마다 느껴지는 코코넛의 식감은 예술이었다. 마켓에는 코코넛으로 만든 다양한 제품들도 디피 되어 있었다. 코코넛은 보습효과가 뛰어나서인지 립 밤, 바디크림, 풋 크림 등의 제품들로 나와 있었다. 가격도 괜찮았다. 여행선물로 주기 좋을 것 같아 내 거 포함 몇 개 사고 말았다. 사용해보니 촉촉하니 좋았다. 친구는 선물로 말린 망고도 샀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었다면 분명 샀을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싸다는 핑계로.       

아무튼 방콕은 나에게 새로운 여행의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날씨가 후덕지근하고 많이 더웠던 것 빼고는(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더위를 엄청 탄다) 내 선입견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주어진 삶을 매일같이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다만 아쉬웠던 건 스케줄 상 마사지를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것이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여서인지 나는 마사지 같은 거에 관심이 아예 없었다. 내 친구는 평소에 마사지를 좋아하는데, 친구도 마사지를 꼭 받아야 한다는 뉘앙스가 없어서 있는 내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랬더니 어영부영 떠날 날이 되어버렸다. 아 세상에. 방콕까지 가서 마사지를 안 받아보다니. 후회막심이다. 태국에 또 간다면 시원한 마사지를 꼭 받고 오리라.      


8. 새로움은 언제나 짜릿해.      


또 무더운 여름과 휴가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어느 곳을 가볼까 하다가 싱가포르가 눈에 들어왔다. 싱가포르는 다른 동남아지역보다 음식이나 숙소 값이 좀 비싸다. 하지만 오랫동안 세계적인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인 그 나라가 궁금했다. 또 랜드마크인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수영장을 가보고 싶었다. 이번에는 그런 심플한 이유들로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수용장은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어 하루만 묵기로 하고, 나머지는 다른 호텔을 예약했다(가격이 너무 비싸기도 했다). 어느새 디데이는 다가왔고, 출발했다.     

휴가시즌이어서인지 공항과 비행기에 사람은 많았지만, 무사히 도착했다. 공항을 나서니 습함과 더움이 한 번에 몰려왔다. 역시 동남아다. 셔틀을 타고 일단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향했다. 와. 방도 많고 규모가 엄청 큰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진짜 많았다. 특히 프런트는 무슨 시장같이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유명세를 타고 있고만.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다. 사람이 많아서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대충 근처 몰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바로 수영장으로 올라갔다. 아. 여기구나. 꼭대기 층에 위치한 수영장 역시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두움에 킨 반짝이는 조명, 신나게 흘러나오는 음악, 화려한 칵테일로 가득한 바, 한껏 멋 부린 선남선녀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싱가포르의 높은 건물들이 그대로 내다보이는 수영장은 그 자체로 신비했다. 또 나란히 줄서있는 비치의자는 야외수영장의 멋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자리를 잡느라 빈 의자를 찾는데 애를 먹었지만, 충분히 훌륭했다. 얼른 수영장에 들어가 그 시간을 즐겼다. 사람이 많아 제대로 된 수영은 할 수 없었다. 그냥 그 풍경과 광경,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살짝 피곤한 첫날을 보내고, 다음날 체크아웃 후 다른 호텔로 옮겼다.

위치만 가깝다면 해외에서 원하는 호텔을 몇 군데 나누어 묵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가끔 프로모션을 하는 호텔에 묵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하루나 이틀밖에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그 후에는 다른 호텔에 묵는다. 며칠 내내 한 곳에서만 묵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꼭 프로모션이나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간 김에 묵어보고 싶었던 숙소 몇 군데에 나누어 묵어보는 것 또한 추천한다. 이렇듯 여행은 언제나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만들어준다. 다른 호텔로 옮긴 우리는 새로운 기분으로 여행을 다시 시작했다. 거리의 느낌은 홍콩과 비슷했지만, 싱가포르만의 아우라가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높은 빌딩들은 대도시의 모습을 확연히 보여줬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규칙들은 엄격하게 지켜진다. 싱가포르는 법 집행이 엄격한 나라로 특히 유명하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상관없이 길거리에서 담배공초나 쓰레기를 버리다가 적발되면 엄청난 벌금을 내야한다. 호텔 근처에 흐르는 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어 상쾌하게 산책을 했다. 몇몇 사람들이 이른 시간(점심 전)부터 음악을 들으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흡연하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하지만 쓰레기통 근처에서 피어서이지 바닥에 굴러다니는 담배공초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순간 부러웠다. 길에서 피는 흡연자들이 그냥 길에다 공초를 버리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모습이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비흡연자인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그날 저녁에는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머라이언 파크를 가보기로 했다. 멀지는 않은 거리여서 산책 겸 걸어갔다.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날은 무지하게 습하고 더웠다. 보기에는 가까워보였는데, 생각보다 가는 길이 멀었다. 한참을 걸었다 싶었는데. 눈에만 머라이언상이 보일 뿐 반 정도를 더 가야했다. 후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한참을 걸은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머라이언은 상반신은 사자,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양을 한 가상의 동물로 싱가포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역시나 구경을 온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북적북적한 사람들과 머라이언 동상 입에서 내뿜는 시원한 물줄기를 보고 있자니 싱가포르에 온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밝게 빛나고 있는 조명들이 한껏 기분을 업시켜주었다. 밤의 공기를 실컷 마시며 유유히 그 시간을 즐겼던 것 같다. 뭐 하나 나쁠 것 없이 즐거운 시간은 흘러갔다.     

싱가포르 날씨는 있는 내내 맑으면서도 습하고 더웠다. 그나마 저녁에는 낮의 열기가 조금 식어 다닐만했다. 그래서 유명하다는 나이트 사파리를 가보기로 했다. 야행성 동물을 관람할 수 있는 세계 최초 야간동물원으로 트램을 타거나 산책로를 따라 도보로 구경할 수 있다. 가기 전부터 계획했던 일정이기도 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해서 일단 버스터미널을 향했다. 표를 끊고 버스가 올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아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조금 출출하다 생각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주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둘러보니 근처의 카야 토스트 가게에서 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먹어본 적이 있던 터라 군침부터 돌았다. 얼른 사서 한 입 베어 물었다. 고소하면서도 짙은 향이 입 속을 맴돌았다. 바삭바삭한 토스트와는 완전 찰떡궁합이었다. 사이즈도 아주 크지 않고 적당해 허기를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원래도 카야 잼을 좋아했지만, 다시 한 번 그 맛에 반한 나는 다음날 바로 슈퍼에서 잼을 사왔다. 덕분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맛을 즐길 수 있었다. Yummy!!! 싱가포르에 가시는 분들은 꼭 맛보시길. 한 번 중독되면 헤어 나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맛있는 카야 토스트를 해치우고 나니 어느새 버스는 쭉 뻗은 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차 없는 어둑한 거리를 달리니 뭔가 드라이브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앞자리에 앉은 동양 부부와(커플인지 부부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몇 마디를 나눴다. 두 분 모두 굉장히 들떠있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생판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고 친구가 되는 게 또 여행의 묘미 아닌가. 차도 막히지 않아 사파리에는 금방 도착했다. 유명한 관광지답게 입장하려고 대기하는 줄이 꽤 길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도 생각보다 금방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우리는 트램을 타고 둘러보기로 했다. 나이트 사파리는 각기 다른 테마로 조성된 8개 구역을 다니면서 구경하는데, 일단 트램이라서 편했다. 생각보다 넓어서 트램 타는 것을 조심스레 추천해본다. 밤이라 그런지 그렇게 덥지도 않아 생각보다 쾌적했다. 또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언어가 들리는 것도 나름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트램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정도였다. 온 김에 동물구경이나 실컷 하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목을 빼고 구경했다. 정말 보고 싶었던 호랑이 같은 맹수는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원래 잘 안 보이는지, 그날따라 안보인건지는 모르겠음). 그렇지만 왈라비나 박쥐같은 신기한 동물은 구경할 수 있었다. 한 시간정도 트램을 타는 일정이어서 생각보다 꽤 길었다. 밤공기는 나름 선선해져서 어느새 여유도 생겼다. 나이트 사파리가 끝난 후, 우리는 근처 벤치에 앉아 쉬었다. 이 여유로움에 감사하며.     

처음에는 덥고 습해 힘들기도 했지만(여러 번 언급했지만, 난 더위에 진짜 약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선함이었다. 이렇듯 여행은 늘 짜릿함을 선사해준다. 처음 간 낯선 곳에서 이것저것 헤매다 점차 익숙해지는 것도 큰 경험이라 생각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기에 남 신경 쓸 필요 없는 타지로의 일탈(잠깐이지만)은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것만으로도 큰 자산이 될 테니까.     


9.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을 키우자.     


여행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눈을 키워준다. 이것은 내가 항상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평소에는 해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고, 새로운 현지 문화와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다보면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아주 긍정적인 에너지. 또 그들의 시선에서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런 것으로 재충전을 하는 나이기에 여건이 되는 한 여행은 계속할 것이다. 세상은 넓고 인류는 넘쳐나니 말이다. 그들을 다 만날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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