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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뷰어P Jun 23. 2023

예준이의 그림이 너무 좋아서 1부

나는 예준이 그림이 왜 좋을까?

‘청소년 예술가 예준이’를 처음 만난 것은 2019년이었다. 동그란 안경을 쓴 예준이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그 모습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대담한 색채, 역동적이고 매력적이며 흥미로운 그림, 세상에 대한 독특한 시각. 예준이의 그림은 훑고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머물러 몸을 기울여 가까이 다가가게 만든다. 


양예준, <나의 눈동자와 코, 입(자화상)>, 2023, 캔버스에 색연필, 아크릴


처음에는 색연필과 오일파스텔로 만들어 낸 독특한 색감이 감동으로 다가왔고, 예준이가 그린 그림을 보면 볼수록 예준이는 ‘뭘 그리는 거지? 뭘 그리고 싶은 거지?’ 그림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궁금하니 어쩌겠나, 예준이를 옆에서 계속 들여다보고 물어볼 수밖에!! 예준이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이번에는 ‘왜 이렇게 열심히 그리지? 저렇게까지 성실하게 꾸준하게 치열하게 그린다고? 3시간 동안 고개도 들지 않고, 쉬지 않고 말이야!’라는 놀라움을 느끼게 되었고, 언제나 ‘행복’한 예준이를 보며 예준이에게 ‘그림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질문까지 이어졌다.     

 

14살이 된 예준이는 인습적이거나 모방적인 것에 머물기보다 여전히 자신의 창작 행위 자체를 집중하고 즐기고 있다. 나는 예술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예준이의 예술 세계와 성장 이야기를 나누고 기록하고 싶었다. 특히 타자(주로 전문가로 불리는 성인)에게 평가받거나 설명되는 언어가 아닌 청소년 예술가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그렇게 예준이와의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꾀나 진지하였던 예준이와의 인터뷰      

예준이와의 인터뷰는 예준이의 그림을 함께 감상하면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대화로 진행되었다. 예준이는 자신의 그림을 볼 때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설명하기도 하였다. 인터뷰 내내 꾀나 솔직한 예준이의 이야기에 웃음이 나기도 하였다.      


# 예준이에게 그림은 ‘일상성’     


“거실에서 밥상에서 그림을 그려”     

예준이는 시간이 날 때면 주로 거실에 있는 밥상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는 것도 아니고, 화려하고 멋진 작업실이 있지도 않다. 집이라는 일상의 공간은 아마도 그 어디보다 안전하고 편안하며 방해 요소가 없는 환경으로 오히려 예준이는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있으며 창작 과정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준이에게 예술은 거대하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삶이 곧 예술이기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 언제라도 밥상을 작업대가 된다. 어찌 보면 성인 예술가가 아닌 청소년 예술가야말로 예술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한정된 장소, 한정된 시간, 한정된 재료가 아닌, 그리고 공간과 시간을 분리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예술은 삶의 기반 위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타일러 아저씨 눈이 반짝거려. 타일러 아저씨를 그리고 싶었어”

“사슴벌레를 키웠어”

(좌) 양예준, <타일러 러쉬>, 2021, 종이에 색연필, 오일파스텔 / (우) 양예준, <무지개 사슴벌레와 곤충 친구들>, 2021, 종이에 색연필, 오일파스텔


예준이는 주로 예준이의 일상의 경험을 포착하여 그림을 그린다. 예준이는 타일러 아저씨가 영어로 동화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TV 모니터에서 본 반짝거리는 타일러 아저씨의 눈을 예준이가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 데로 속눈썹을 강조하여 그렸고 그 눈을 보며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였다. 인터뷰 당일 예준이는 곤충 대백과사전을 가지고 왔다. 나에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곤충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예준이는 평소 사슴벌레를 좋아해서 집에서 기르고 있으며 곤충에 대한 책을 자주 보곤 한다. 가운데 커다랗게 그린 사슴벌레가 외롭지 않게 곤충 친구를 그렸는데 예준이가 그린 사슴벌레와 곤충 친구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곤충의 색이 아니다. 곤충이 곤충답게 그려진 것이 아니라 행위가 일어나는 일상이라는 시공간 안에서 반응하고 감응하는 것이다.      


예준이의 그림의 소재는 참 솔직하다. 그리고 소소하다. 또한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감상자는 예준이의 그림을 보며 그가 요즘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며 창작자의 일상으로 초대된다. 예준이게 미술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의도’를 담아 표현하는 것이라기보다 ‘일상적 행위’ 그 자체이다. 


예준이에게 그림은 생동과 즐거움     


예준이와의 인터뷰 중 예준이가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는 ‘재밌다’였다. 

‘미술이 재미있다는 것‘     


“재미있고 행복한 마음이 들어”

“그리는 게 재미있어요”

“오래오래 그려야 (완성)되는 거야, 재밌어”     


예준이에게 예술은 재료를 완전하게 숙달하여 기술적으로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높게 평가받는 것, 남들보다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예준이는 남들이 내 그림을 좋아할지 걱정하지 않는다. 위계화, 서열화되어 미술에 특정한 가치와 기준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 오직 예준이가 표현하고 싶은 데로, 있는 그대로, 날 것의 생동이다. 이는 그 자체에만 머물기만 한다는 의미, 즉 고정화시켜 버리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것을 넘어 상상하고 시도하기를 두려워하고 주저하지 않는 예준이처럼 미술은 인간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거침없이 그림을 그리는 예준이의 진지한 재미와 열정으로 탄생한 그림은 어른들에게 ‘누구의 미술이 진정한 미술로 간주되고, 그것을 누가 정의하는지, 미술의 선별 가치 부여는 무엇인지, 어떤 관점이 내재되고, 주입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 봐!’라고 외치는 것 같다. 미술은 특별한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의 것이라고 말이다. 미술을 좋아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예술을 하는 당사자에게 있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더 이상 기능적으로 해내야 하는 미술, 더 잘하게 만드는 미술이 아닌,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가 잘하는 것을  그리고 있는 예준이를 통해 Pablo Picasso의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다. 문제(관건)는 어린이가 성장해서도 어떻게 그 예술성을 지키는가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예준이는 어른이 된 우리에게 “생각해 봐, 예술은 맞아, 이런 거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예준이에게 그림은 스스로의 성장                                                    


“색이 마음에 들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야.”

“완성돼 가니까 멋지다!”


(좌) 양예준, <아빠 그리고 나>, 2022, 종이에 마커, 색연필, 오일파스텔/ (우) 양예준, <우리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오랑우탄>, 2022, 종이에 색연필, 오일파스텔

예준이는 평소 색연필과 오일파스텔로 작업을 한다. 최근에는 수채화, 아크릴 물감 작업도 하고 있다. 색연필을 쓰는 경우 겹겹이 칠하고 칠하면서 예준이만의 색을 만들어 내는데 보통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하루가 걸리기도 하지만 보통 일주일에서 길게는 석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예준이는 제일 좋아하고 안정감을 갖는 색연필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있는 색 그대로를 쓰기보다 자기만의 색을 만들어 내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그러니 당연히 시간도 오래 걸린다. 누군가는 특정 매체와 반복된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이것이야말로 예준이만의 표현 욕구와 방식으로 자신에게 머물며 자신을 잃지 않는 정체성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예준이는 예술가로서 스스로 성장 만들어 가고 있다.   

       

예준이에게 그림은 주체적인 자기의 표현이자 소통 창구  

   

“토끼의 부드러운 털을 표현하기 위해서 털끝을 둥글게 그렸어.”

“(전시를 하면 작품에 대한) 이야기 많이 해주고 싶어.”

(좌) 양예준, <하늘을 나는 무지개 토끼>, 2022, 종이에 색연필, 오일파스텔/ (우) K-ART 동시대 미술 특별전


예준이의 전시에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때 예준이와 나는 ‘토끼’ 작품 앞에 서서 왜 토끼의 털을 이렇게 그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끼의 부드러운 털을 표현하기 위해 털끝을 둥글게 그렸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하던 그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예준이의 그림을 함께 보며 진행하였던 인터뷰에서도 그는 자신의 그림을 보며 웃음 지으며 작품 과정 중 생생하게 경험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누구보다 자기 작품에 대한 애착을 가지는 예준이의 마음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예준이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객관적이고 단편적 만남이 아닌 다층적이고 상호적인 만남이 가능해진다. 평소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예준이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그에게 그림은 주체적인 자기표현의 결과물이자 소통 창구이다.     


나는 왜 예준이 그림이 좋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래서 나는 예준이의 그림이 참 좋았구나!’ 이야기의 1부를 마무리한다. 2부는 예준이 어머님그리고 예준이의 창작 과정을 함께 하였던 사람들과의 대화로 이어진다  

   


p.s.

이것은 내가 의식하지 않기도 혹은 의식하기도 한 것이다. 예준이는 수많은 대회에서 수상하였으며, 청소년 예술가로 많은 전시에 참여하고 있으며(초청 작가로도!), 발달장애 예술가이기도 하다.


※ 양예준 청소년 창작자의 그림과 사진, 인터뷰 내용은 창작자 본인과 보호자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그래서 제 마음을 그리는 화가가 꿈인 양예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프롤로그 : 나는 ‘인터뷰어 P’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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