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감각의 기록
나는 범중씨와 함께 작업을 하며 거창하게 ‘중증 자폐인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묻기보다, 그때그때의 장면에서 질문을 던지고, 관찰하며, 생각을 정리해 간다. 내가 범중씨와 함께 한다는 것을 답을 얻기보다 함께 머무르며 우리의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다.
범중씨는 자신이 원하는 색을 고르고 칠하는 행위를 즐거워하고 의지가 강하다. 내가 다른 색을 권할 때는 손으로 막는다거나 슬며시 나를 밀치기도 한다. 젠틀한 범중씨가 평소와는 달리 자신의 결정을 확고히 지키는 장면이다. 이러한 행위는 타인의 개입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색을 쓰고 싶다’, ‘이렇게 칠하고 싶다’라는 감각에 충실할 뿐이다. 범중씨에게 미술 작업은 바로 이 지점, 자신의 감각과 세계가 만나는 순간의 연속이다. 이때 내가 해야 할 일은 거창한 지도나 해석이 아니다. 그저 함께 머물며 그가 있는 그대로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것이다.
범중씨는 손의 힘이 약해 붓질이 쉽지 않다. 그래서 붓이나 스펀지, 다른 도구로 눌러 찍듯이 또는 롤러를 밀며 작업한다. 비장애인의 관점에서는 이런 표현 방식은 성인의 작업에서 수준 미달이거나 다소 낯설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안에는 범중씨만의 독특한 감각과 리듬이 있다. 그리고 범중씨는 ‘어떻게 그릴까?’를 고민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표현한다.
범중씨는 존재 그 자체가 표현이 되는 예술, 예술의 가장 근원적인 본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것을 ‘예외적’이거나 ‘특별한’, ‘장애’로만 구분하려는 우리의 시선이 문제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