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딸 아이가 겨울 방학을 한지 벌써 몇주가 지났다. (몇주가 지났지만, 아직 한달이 더 남았다.. 길고 긴 방학이여...) 이제 곧 5학년이 되는 초딩딸은, 매일 매일 심하게 늦잠을 자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깨워도 깨워도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왜 이렇게 잠을 많이 자지... 키가 크려고 그러나... 긍정 회로를 돌리며, 그저 지켜보고 있는 요즘이었다.
늦잠자는 딸의 일상을 아는 남편은, 1월이 가기 전에, 카드사 혜택과 통신사 혜택을 이용해 오전에 영화를 보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럴까.. .영화를 검색해보니, 오래 전부터 개봉하면 봐야지.. 하고 기다리던 그 영화가 딱 1월 31일 개봉이었다!
"와! 딱 내일 <웡카> 개봉이네!!"
초딩딸의 최애 영화 중에 하나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다. 일찌감치 '로알드 달'의 원작 소설을 읽은 건 물론이고, 영화로도 같은 '로알드 달' 원작인 <마틸다>와 쌍벽으로 아마 10번도 넘게 본 영화일 것이다. 아이에게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인 영화, 그러니까 '웡카'가 초콜릿 공장을 세우기 이전의 이야기가 영화로 나온거라고 얘기해주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도 나오는데? 엄청 무서운 치과의사 아빠가 초콜릿 못먹게 하고 엄청 혼내잖아~"
그렇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도 '웡카'의 이전 삶에 대한 서사가 나오는데, 영화 예고편도 미리 보지 않은 나와 딸은 그 비슷한 이야기가 펼쳐지겠거니... 그저 짐작만 했다.
알고 본 정보라고는,
1. 로알드 달 원작
2.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
3. '웡카' 역을 무려 '티모시 살라메'가 맡았다는 점이었다. (예매할 때 포스터 보고 심쿵~)
내 기억 속 '티모시 살라메'는 <작은 아씨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청.정.무.해.한 미소년, 말랑말랑 두근두근 마음 설레게 만드는 로맨스 배우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조니 뎁'이 연기한 '웡카'는, 내유외강 츤데레, 자기주장 강한 괴짜 느낌이었는데... 과연 '티모시 살라메'의 '웡카'는 어떤 느낌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웡카>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완전히 다른 출발선에 있었다.
<웡카>의 '웡카'는 가난하지만 사랑을 듬뿍듬뿍 주는 엄마와 단둘이 살며 초콜릿으로 추억을 쌓았다. 초콜릿을 입에도 못대게 했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엄격한 치과의사 아빠와는 달리, '웡카'의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초콜릿을 손수 정성껏 만들어 주신다.
<웡카>의 '웡카'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웡카'보다는 '찰리'와 닮아있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웡카의 엄마와 찰리의 엄마의 느낌도 닮아 있다.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그 눈빛과 마음이 말이다.
(웡카의 엄마 역할은, 또 세상 무해한 선한 이미지의 '샐리 호킨스'가 맡았다. '샐리 호킨스'는 <내사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서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연기했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배우다. <패딩턴>에서도 세상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찾아 보니, <웡카>의 감독은 <패딩턴>을 연출했던 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웡카>는 <찰리의 초콜릿 공장>보다는, <패딩턴>의 갬성을 담고 있는 느낌이다.)
어쨌든, 자라온 환경이 정반대인 '웡카'이니, 당연히 완전히 다른 '웡카'로 자랐다. 가난하지만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웡카'는 사람을 잘 믿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고, 자신의 꿈을 이뤄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있다. 그런 그가 악랄한 사기꾼 숙박업자, 이익을 위해 물불안가리는 초콜릿 사업가들, 부패한 공무원, 타락한 성직자들을 상대로 순수하고 무해한 모험을 펼치는 것이다.
꿈의 초콜릿 도시로 향하는 배를 탄 '웡카'가 초콜릿으로 꿈을 펼칠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뮤지컬 영화인지도 모른 채 관람하러 들어갔는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울려퍼지는 '티모시 살라메'의 희망찬 오프닝 노래에 이미 이 영화가 10000000% 마음에 들었다. 첫노래를 부르면서 펼쳐지는 장면들에서 '웡카'의 캐릭터는 다 드러난다. 희망에 차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와서 구두를 닦고 비용을 청구하는 어린이에게 선뜻 돈을 지불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에 남은 돈을 다 내밀며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고 하고, 마지막 남아있는 동전 하나를 하수구에 떨어트려, 그 추운 날 잘 곳도 없는데, 조금도 절망하지 않고 낙천적이다. 그런 그가 나쁜 남자에게 호구(?) 잡혀서 한 숙소에 가게 되고, 거기서 하룻밤 묵으며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된다.
그리고 그 악의 구렁텅이 같은 숙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사기를 당해 갇혀있는 동료들을 만나게 되고, 함께 역경을 헤쳐나간다. 그중 '누들'이라는 소녀는 '웡카'의 모험에 큰 조력자가 되어주고, '웡카'는 고아인 '누들'의 절친이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딸의 표정을 흘끔흘끔 살폈다. 보는 내내 행복한 표정이었던 딸의 리뷰를 들어보았다.
(feat. 지극히 초딩스러움 주의!)
딸: 재밌어~~~
찰리의 초콜릿 공장보다 재밌었어~~
맘: 진짜? 어떤 점에서?
딸: 위기와 모험이 더 많은 거 같아~
맘: 너 영화에서 위기 나오면 무섭다고 영화관 뛰쳐나가던 애였는데...
딸: 내가 그랬었나? 어떤 영화 어떤 장면에서 그랬지?
맘: (기억이 가물가물....) 주인공이 뭐 잘못하거나, 혼날일 있거나, 악당한테 당하거나...
딸: 그래서 그게 어느 영화 어떤 장면인데?
맘: .... (기억이 안난다.)
딸: 그런데 누가봐도 수상한 숙소에서!!! 작은글씨 읽어보라는 말을 들었으면 의심을 해야지...왜 싸인을 해? (주인공이 위험에 처한 게 매우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
맘: 웡카가 순수하고 사람 잘 믿는 캐릭터잖아~
딸: 그리고 초콜렛 가게에서 손님들이 환불 요청했잖아, 누가 환불해줘? 웡카가 해줘야돼? 아님 나중에 독약탄 사람들이 밝혀졌으니 그 사람들이 해줘야돼?
맘: (아놔, 너 T야?....) 아니, 초콜릿 먹고 하늘을 날고, 이상하게 변하고, 풍선 들고 하늘을 날고... 따지고 들자면 말도 안되는 설정들이 많은데,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려?
딸: 아니.. 진짜 환불은 해줘야할거아냐~~
맘: (확신의 T구나!!) 가장 재밌었던 장면은 뭐야?
딸: 누들이랑 초콜릿에 빠져 죽을 뻔했을 때... (블라블라...) (스포가 될 것 같아 생략)
맘: 맞아, 그 장면 긴장되고 재밌었지...
딸: 근데 맨 마지막 장면은 좀 disgusting했어
맘: 응? 그런 장면이 있었어? 완전 해피엔딩인데 어디가? 왜?
딸: 아니 왜 뽀뽀를 해~~
맘: (황당) 그게 왜 disgusting이야~~ 아름답게 해피엔딩인데!! 웡카의 초콜릿이 사랑을 이뤄줬잖아~
딸: 영화 속에서는 사랑하지만, 진짜 사랑하는 사이도 아닐텐데...... (아놔, 배우들 걱정해주는거?)
맘: 찰리의 초콜릿 공장보다 재미있었으면, 이제 네가 본 영화 중에서 top1이야?
딸: top5안에는 들어~~~
맘: 1위는 뭔데?
딸: 마틸다...!
워낙 마틸다 덕후라.... 아직 마틸다를 이기는 영화는 없는 걸로...
그치만, 이 영화 근래 본 영화 중에 진짜 손에 꼽힐 정도로 가슴벅차고 만족스러웠다.
장면장면에 꽤 많은 공을 들였다는 티가 난다. 한 장면도 빠짐 없이 예쁘고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상상력 자극하는 화려한 초콜릿 상점과, 기린, 풍선, 플라밍고, 우산, 등등... 각종 오브제들도 눈호강을 제대로 시켜준다.
덧,
이와중에 '움파룸파'의 얼굴을 보고 또 한번 빵 터졌는데...! '움파룸파' 역을 무려 '휴 그랜트'가 했다.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 그여자 작사 그남자 작곡,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그 로맨스 장인 '휴 그랜트' 말이다! 처음 움파룸파의 몸을 하고 나타난 '휴 그랜트'를 보고, '어떡해 어떡해 안 어울려~~~' 라고 생각했지만... 세상 코믹하고 진지하게 움파룸파를 너무 잘 연기해주셨다.
그 시절 우리의 로맨스 명배우 '휴 그랜트'를 모르는 초딩들은, 이제 '휴 그랜트=움파룸파'라고 생각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