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에 한창 예쁠 때(그때 나 본 적 없잖아요. 증거를 내놔봐라 하지 말고 예쁘다 그럼 믿어주세요.) 소개팅을 나갔다. 대학원 다니면서 중소기업 다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29살인가 28살인가 그랬다. 대학원을 다니는 이유는 더 나은 회사로 옮기기 위해서라고 했다. 차 마시며 이야기하다 겉멋 없고 솔직한 모습이 좋았다. 그 사람도 한창 예쁜 20대 중반의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주차장 쪽으로 향하는 내게 그는 버스 정류장 쪽을 가리켰다. '아, 술 마시려고 차 안 가져왔구나'싶었다. 근처에도 식당이 많은데 버스 타고 가자는 것 보니 꽤 좋은 곳으로 데려갈 건가 보다 싶었다. 주말 버스 안에 사람은 많았고, 차는 너무 밀렸다. 어려서부터 버스 타면 멀미가 심했던 나는 그때부터 속이 안 좋았다. 흔들거리는 버스에서 잡을 곳은 마땅치 않았고, 버스 특유의 냄새 때문에 딱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우 참아내고 도착한 곳은 시장이었다. 시장 입구부터 돼지 삶는 냄새와 온갖 냄새가 진동했다. 멀미도 진정되지 않은 속이지만 또 참았다. 그 사람은 멸치 육수 냄새가 진한 국숫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국수 마니아였던 나는 그 사람과 소개팅 실패했다. 주선자가 계속 물어왔다. 뭐가 마음에 안 들었냐고 차가 없어서 그러냐고 했다.(차 없는 게 장점은 아니지만 단점도 아니었다. 20대는 차가 없어도 튼튼한 다리가 있으니까) 그러면서 차 없는 남자 싫어하는 속물이라고 소문내고 다녔다. 나는 주선자를 찾아가서 따지듯 변명했다.
"밥을 안 사주잖아. 밥을. 국수가 뭐야? 소개팅에서 국수라니? 나 밥순인 거 몰라? 아무리 내가 국수를 좋아해도 그렇지. 소개팅에서 국수는 좀 아니지 않아?"
주선자는 이유가 타당하다며 충분히 이해했다.
엄마는 결혼 전 내게 저주를 내렸다.
"머스마들 만나고 댕기다 결혼하자카몬 도망댕기면 나중에 그 죄를 어찌 받을래? 밥만 얻어묵고 댕기고 그라다가 니 난중에 그거 다 돌리 받는다잉"
엄마의 저주는 현재진행형.
남자 두 명, 십 대 한 명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 대령하고 설거지를 하고 잡숫고 싶은 걸 여쭤보고 다음 날 밥상을 준비한다. 밥 지겹다고 스파게티를 하라고 그분들이 요청사항을 말한다. 소시지를 넣고, 올리브를 넣고, 브로콜리를 빼랍신다. 그래도 밥을 먹어야 하지 않느냐는 밥순이의 말은 무시하며 밥은 지겹다고 한다. 양파를 듬뿍 넣어서 볶다가 소시지 넣고 버섯이랑 참치도 한 캔 따서 넣었다. 스파게티가 완성되고 보니 그때처럼 되는 건 아닐까 싶어 걱정이다. 밥도 안 해주는 엄마라고 소문이 나면 안 되는데 말이다. 변명할 주선자도 없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