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인은 49년도에 남해에서 태어났다. 아들 다섯 중에 하나뿐인 딸이라 그 시절에도 아버지의 예쁨을 받았다. 고등교육도 받고 대학도 보내주겠다는 걸 공부하기 싫다고 도망갔단다. 공부는 진짜 싫었기에 딸 둘을 키우면서도 공부하란 소리를 안 했다
.
.
.
.
49년 생 여인이 낳은 딸은 훗날 작가가 되었다. 어려서는 동네 애들 다 패고 다니고 공부 못하고 시커멓고 말라서 볼품없어 늘 자기 딸이 아닌 척 멀리 떨어져 걸었던 딸이라고 했다. 작가가 되었다니 키우면서 한 번도 안 한 칭찬을 했다. 너는 역시 나를 닮아 똑똑하고 잘난 아이라며 치켜세웠다
.
.
.
.
딸은 49년생 여인의 안부를 묻다 점심이나 먹고 마트 가자고 했다. 12살 딸과 방학 내내 같이 다니며 시중을 들다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는 매일 혼자 먹을 텐데, 엄마도 먹고 싶은 거 있을 텐데 싶어서 시간을 내서 밥을 먹자고 했다. 여인은 안 그래도 피자 먹고 싶었는데 혼자 시켜 먹기엔 많았다며 고르곤졸라 피자, 명란크림파스타 먹자고 했다. 대학가 레스토랑에 여인이 들어가자 단 번에 손님 평균 연령이 높아졌다
.
.
.
.
메뉴 고르며 설레하고, 입에 맞다며 좋아했다. 12살 우리 딸이 그랬듯 맛있는 거 나랑 같이 먹어서 좋다 했다. 다 먹고 커피 사준다며 카페로 가더니 마카롱 4개를 골랐다. 우리 손주들 갔다 주라며 본인 카드로 결제했음을 꼭 알려달라고 했다. 우리는 마트로 갔고 필요 없다, 필요 없다던 홑겹 바람막이 잠바 18만 원짜리 샀다. 필요 없다고 한 건 내가 고른 6만 원짜리 잠바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잠바가 딱 몸에 감긴다며 18만 원짜리 잠바는 입고 가고 싶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
.
.
.
점심 먹고, 옷 사주고, 장 봐주니 몇 십만 원을 금방 썼다. 돈 많이 써서 어쩌냐며 걱정하면서도 잠바 만지며 비싼 옷이 역시 좋다며 웃었다. 여인을 집 앞에 내려주고 오면서 나는 울었다. 겨우 몇 십만 원을 썼는데 잠깐 몇 시간을 같이 있어줬는데 저렇게 좋아하며 아이처럼 기뻐하는 게 미안했다. 친구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이 사준 잠바 입고 꽃 보러 가자고 하길래 더 비싼 거 사줄 걸 후회했다. 여인이 내 옆에서 건강하게 지낼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내가 낳은 아이만 귀하고 소중해서 나를 낳은 여인을 모른 척하고 사는 나는 여인의 나이가 되면 어떤 마음으로 살게 될까?
.
.
.
.
집으로 돌아와 내가 낳은 아이들을 맞이하며 활짝 웃었다. 딸이 되어버린 49년생 여인에 대한 마음은 잊고 아이들 씻기고 웃으며 안아주며 하나라도 더 해주지 못해 동동거렸다. 지금쯤 나의 49년생 딸은 혼자서 저녁을 먹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고 우리 식구의 저녁을 차리고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