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제국을 건설하는 과학적 출점 전략
강민준은 며칠간의 밤샘 작업 끝에 완성한 페르소나, ‘이수연’의 프로필을 자신 있게 펼쳐 보였다.
‘29세, 마케팅 대행사 대리. 잦은 야근과 상사의 압박에 시달리며, 퇴근 후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와 바삭한 치킨 한 조각을 유일한 낙으로 삼는 직장 여성.’
“찾았습니다. 제 브랜드의 고객을요. 그리고 그녀가 있을 땅도요.”
민준은 지도 위에 새로 표시한 지역을 가리켰다. 번잡한 대로변이 아닌, 오피스 빌딩들 뒤편으로 아기자기한 술집과 식당들이 늘어선 조용한 먹자골목이었다. ‘이수연’이 동료들과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이제 모든 퍼즐이 맞춰진 기분이었다. 위성 지도로 지형을 읽었고, 나침반으로 방향도 잡았다. 한정혁의 칭찬을 기대하며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하지만 한정혁은 지도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좋아. 이제 군대를 어디로 이끌어야 할지, 누구를 만나러 가야 할지도 알았군. 그럼 출정 전 마지막 질문에 답해보게. 자네 군대의 깃발에는 무엇이라 쓰여 있는가?”
“…깃발이요?”
“그래, 깃발. ‘써니치킨’은 날렵한 기마부대인가, 묵직한 중장갑 보병인가? 이 정체성을 정하는 게 ‘브랜드 포지셔닝’이고, 그 깃발을 어디에 꽂을지 정하는 게 ‘입지 전략’이야. 둘은 하나일세.”
민준은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한정혁은 스크린에 전혀 다른 두 개의 커피 브랜드를 띄웠다.
하나는 지하철 환승 통로에 자리한 초저가 커피 브랜드 ‘원샷커피’의 작은 테이크아웃 매장이었다.
“이들의 깃발엔 ‘속도와 가성비’라 쓰여 있지. 커피가 ‘음미’의 대상이 아니라 ‘수혈’인 사람들을 위한 곳이야. 이 깃발은 ‘오래 앉아 있을 생각 마라!’고 외치고 있네. 그래서 그들의 땅은 환승 통로, 버스 정류장 앞처럼 효율성이 극대화된 곳이어야만 해.”
다른 하나는 성수동의 조용한 골목 안,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프리미엄 디저트 카페 ‘공간 브루어스’였다.
“이들의 깃발엔 ‘경험과 휴식’이라 적혀 있네. 커피가 ‘연료’가 아닌 ‘선물’인 이들을 위한 곳이지. 이들에게 입지는 효율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야. 매장으로 향하는 길, 문을 열 때 퍼지는 원두 향, 모든 것이 ‘당신은 지금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깃발의 약속을 증명해야 하네.”
한정혁은 민준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자, 상상해보게. 저 ‘공간 브루어스’가 유동인구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강남역 지하상가에 문을 열었다면? ‘프리미엄 휴식’이라는 깃발은 소음 속에서 갈기갈기 찢겨나가겠지. 브랜드의 약속과 장소의 현실이 충돌하며, 브랜드도 죽고 장사도 망하는 최악의 비극이 시작되는 걸세.”
민준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그저 ‘사람 많은 곳’, ‘목 좋은 곳’만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 땅이 자신의 브랜드와 맞는 땅인지는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명심하게. 입지는 물리적으로 구현된 포지셔닝이야. 자네가 고른 땅은 그 어떤 광고보다도 강력하게, 자네 깃발의 약속을 고객에게 전달하네. 절대적으로 좋은 땅은 없어. 우리 브랜드의 깃발을 꽂았을 때, 가장 자랑스럽게 펄럭일 땅이 있을 뿐.”
민준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고뇌에 빠진 순간, 익숙한 시스템 알림이 떠올랐다.
[SYSTEM: 새로운 개념을 이해했습니다.]
[제국 건설자의 도구함 No.4]
- 획득한 도구: 브랜드의 깃발 (포지셔닝) (등급: F)
- 도구 설명: 우리가 누구이며, 왜 선택받아야 하는지 명확히 하여, 우리의 정체성에 걸맞은 땅(입지)을 식별하게 만드는 전략의 청사진.
- 상태: 깃발의 내용이 아직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한정혁이 마지막 과제를 내주었다.
“돌아가서 자네의 깃발에 새길 단 한 단어를 정해와. ‘가성비’인가? ‘프리미엄’인가? ‘재미’인가? ‘써니치킨’의 정체성을 담은 그 깃발을 들고 와. 그때 다시 자네가 고른 땅이 그 깃발을 꽂을 자격이 있는지 판단해주지.”
사무실을 나온 민준은 처음으로 자신의 가게 로고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치킨을 팔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정혁을 만난 이후 깨닫고 있었다.
자신이 팔아야 할 것은, 단순한 닭튀김이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