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이 음식에서 비누 맛이 나요"

어느 날 손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

by 잇쭌

프롤로그


여기, 정성을 다해 끓여낸 쌀국수 한 그릇이 있습니다. 한 손님은 그 위에 고수를 수북이 쌓아 올리고는 "바로 이 향긋함 때문에 여기 와요"라며 환하게 웃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다른 테이블의 손님은 조심스럽게 직원을 부릅니다. "저기... 혹시 음식에 비누가 들어갔나요?"


만약 당신이 이 가게의 사장님이라면, 어떤 기분이 드실까요? 아마 당혹스러움을 넘어 약간의 억울함마저 느끼실지 모릅니다. 똑같은 주방에서, 똑같은 레시피로 만든 음식인데 한쪽에서는 극찬이, 다른 한쪽에서는 상상도 못 한 불평이 터져 나왔으니까요. 우리는 보통 이런 상황을 ‘취향 차이’라는 네 글자로 정리하곤 합니다. ‘입맛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오늘 저는 이 ‘다름’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만약 이 차이가 단순히 ‘취향’의 영역을 넘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손에 쥐게 된 ‘유전자 지도’에 새겨져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누군가에게는 황홀한 미식의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벌칙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우리 몸속의 작은 설계도 차이 때문이라면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고객의 ‘입맛’이 아니라 ‘유전자’를 상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정말 같은 냄새를 맡고 있을까?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도, 사실은 저마다 전혀 다른 향기의 세계를 경험합니다. 그 비밀은 바로 우리 코 속에 숨어있는 약 400여 종류의 ‘후각 수용체(Olfactory Receptor)’에 있습니다.


후각 수용체는 공기 중의 냄새 분자(열쇠)를 인식하는 ‘자물쇠’와 같습니다. 어떤 열쇠가 어떤 자물쇠에 꽂히느냐에 따라 그 조합 정보가 뇌로 전달되고, 우리는 비로소 “아, 이것은 상큼한 레몬 향이구나” 하고 인식하게 되죠.


문제는 이 자물쇠의 설계도, 즉 유전자가 사람마다 꽤 많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무려 30%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하니, 제 코에 있는 자물쇠 중 상당수가 당신의 코에는 없거나 전혀 다른 모양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고수 논쟁’으로 돌아와 볼까요? 과학자들은 고수의 독특한 향을 감지하는 ‘OR6A2’라는 유전자를 발견했습니다. 이 유전자에 특정 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고수에서 비누나 화장품 냄새를 느끼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들의 의지나 편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순수한 생물학적 반응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자꾸 먹다 보면 익숙해져요”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빨간색을 볼 수 없는 친구에게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려는 노력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우리 가게는 ‘고수 맛집’이 아니라, 그저 ‘비누 맛집’일 뿐이니까요.


누군가에겐 천상의 맛, 누군가에겐 지옥의 향


이 유전자가 연출하는 희비극은 비단 고수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트러플(송로버섯)의 오묘한 향은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풍미를 선사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퀴퀴한 가스 냄새’일 뿐입니다. 이 역시 ‘안드로스테논’이라는 성분을 감지하는 ‘OR7D4’ 유전자의 차이 때문이죠.


흥미롭게도 이 유전자에 따라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뉩니다. 그 향을 전혀 맡지 못하는 사람, 땀 냄새처럼 역하게 느끼는 사람, 그리고 바닐라 향처럼 달콤하게 느끼는 사람. 똑같은 트러플 파스타 한 접시가 전혀 다른 운명을 맞는 순간입니다. 이 안드로스테논은 수퇘지 고기에서도 발견되는데, 일부 사람들이 유독 돼지고기 누린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잡내를 잡기 위해 했던 수많은 노력이, 사실은 특정 유전자를 가진 손님들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였던 셈입니다.


이쯤 되면 ‘절대미각’이나 ‘미식가의 혀’라는 것이 어쩌면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그저 운 좋게 받은 ‘유전적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평균의 함정’을 넘어, ‘다름’을 존중하는 가게로


“어차피 사람마다 다르다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허무함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코를 100% 만족시키는 음식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맛집’이라는 막연한 목표에서 벗어나, 우리 가게만의 색깔을 사랑해 줄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 길 말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경고’가 아닌 다정한 ‘안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메뉴판에 단순히 ‘고수 들어감’이라고 적기보다, “특유의 향으로 사랑받는 고수입니다. 혹시 향에 예민하시다면 주문 시 꼭 말씀해주세요”라는 문구 하나를 덧붙이는 것만으로도 가게의 인상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고객의 유전적 다름까지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모두에게 사랑받기’를 포기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우리 가게가 진한 육향이나 꼬릿한 치즈처럼 호불호가 강한 메뉴를 다룬다면, 차라리 “이 강렬함을 사랑하는 당신을 위한 공간입니다”라는 자신감 있는 메시지를 던져보는 건 어떨까요? 모두를 잡으려다 모두를 놓치는 ‘평균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에게 대체 불가능한 ‘인생 맛집’이 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손님의 불평은 때로 우리를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됩니다. “음식에서 비누 맛이 난다”는 말에 상처받거나 당황하는 대신, “아, 이분은 나와 다른 후각의 세계를 가지고 있구나”라고 이해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결국 음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객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존중하며,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 그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수만 가지 유전자의 차이를 뛰어넘어 모든 손님을 감동시키는 최고의 레시피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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