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말해준 그 자리, 정말 제 가게를 열어도 될까?

데이터라는 지도와, 사장이라는 나침반에 대하여

by 잇쭌

요즘 창업 상담을 하다 보면, 예비 사장님들이 두툼한 보고서 파일을 하나씩 꺼내놓으십니다. AI 기반 상권 분석 서비스가 출력해준 아주 근사한 자료들이죠. 그 안에는 제가 젊은 시절 발품 팔며 겨우 얻어내던 정보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방대한 데이터가 가지런히 담겨 있습니다. 유동인구 그래프, 경쟁사 밀집도, 예상 매출 시뮬레이션까지.


그 빼곡한 숫자들을 볼 때마다 저는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같아 기쁘면서도, 혹시 저 차가운 숫자들이 사장님의 가장 중요한 무기, ‘마음의 소리’를 잊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함께 찾아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AI가 그려주는 지도는 놀랍도록 훌륭합니다.


과거의 창업이 안개 낀 바다를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 떠나는 모험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인공위성이 실시간으로 전송해주는 GPS를 손에 쥔 셈이니까요. ‘어느 동네가 장사가 잘된다더라’ 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대신, ‘어느 골목, 어느 시간대에, 어떤 연령대의 고객이, 얼마를 쓰는지’를 족집게처럼 알려줍니다.


SNS 빅데이터를 분석해 앞으로 유행할 메뉴를 짚어주기도 하죠. 곧 ‘마라’라는 태풍이 지나가고 ‘로제’라는 따스한 바람이 불어올 거라고 속삭여주기도 합니다. 이 얼마나 든든한가요.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위험을 피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패라는 암초에 부딪힐 확률을 극적으로 낮춰주었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도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요. AI라는 유능한 항해사가 펼쳐 보인 지도 위에는, 결코 표시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지도에는 ‘동네의 공기’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데이터는 그 동네를 스쳐 가는 사람들의 숫자를 셀 수는 있지만, 그들이 어떤 표정으로 걷고 있는지, 그 골목에 어떤 향기가 흐르는지, 햇살이 건물과 건물 사이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는 알려주지 못합니다. 내 가게가 그 동네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을지는, 결국 사장님이 직접 그 길을 걸으며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영역입니다.


둘째, 지도에는 사장님의 ‘이야기’가 쓰여있지 않습니다.


AI는 ‘수익성이 높은 아이템’을 추천할 수는 있지만, 사장님이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음식을 만들 때 가장 가슴이 뛰는지, 손님들에게 어떤 기억을 선물하고 싶은지는 알지 못합니다. 가게의 ‘영혼’은 데이터가 아닌 사장님의 이야기로부터 비롯됩니다. 때로는 그 이야기가 모든 데이터를 뛰어넘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되기도 하죠.


셋째, 지도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길’이 없습니다.


AI의 모든 분석은 과거의 데이터, 즉 누군가 먼저 걸어간 길의 기록에 기반합니다. 그래서 ‘안전한 길’을 알려주는 데는 탁월하지만,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안내하지는 못합니다. 세상에 없던 혁신적인 가게들은 종종 데이터가 말하는 ‘정답’의 바깥에서 태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사장님들께 이렇게 말씀드리곤 합니다. AI가 건네준 지도를 믿으세요. 하지만 그 지도를 맹신하지는 마세요. 그 지도를 가장 중요한 참고자료로 삼되, 최종적인 방향은 사장님 마음속의 나침반을 보고 결정하세요.


AI가 ‘성공 확률 90%의 길’을 가리키고 있더라도, 당신의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그 길은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반대로 AI가 ‘위험 확률 70%의 길’이라고 경고하더라도, 당신의 모든 경험과 철학이 ‘여기라면 해볼 만하다’고 소리치고 있다면, 그 길에 새로운 기회가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좋은 결정은, 차가운 데이터와 뜨거운 가슴이 만나는 지점에서 태어납니다. AI는 당신에게 ‘돈을 버는 법’을 알려줄 수는 있어도, 당신이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까지 알려주지는 못하니까요.


AI가 알려준 정답이라는 그 자리에 서서,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그래서, 내 마음속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은 어디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까지 찾았을 때, 비로소 당신의 배는 가장 당신다운 항해를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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