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말의 함정

왜 '우리다움'이 강한 조직일수록 혁신에 실패할까?

by 잇쭌


레스토랑 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수많은 '사장님'들의 꿈과 좌절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입니다. 그분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족처럼 지내요."


"우리 가게는 '우리만의 방식'이 확고하죠."


이런 말을 들을 때, 저는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마음을 감춰야 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고요? 그 '확고한 방식'과 '가족 같은 문화'가, 실은 조직의 숨통을 B고 있는 '독(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조직을 하나로 묶는 가장 강력한 힘이, 조직을 파괴하는 가장 치명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니 말입니다.


오늘은 생명과학의 가장 경이로운 시스템인 '면역(Immunity)'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레스토랑이라는 조직의 문화를 들여다볼까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당신의 강력한 조직 문화는 외부의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백신'이 아니라, 내부의 건강한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일 수 있습니다.




1. '우리다움'이라는 이름의 면역 시스템



우리 몸은 어떻게 수십 조 개의 세포가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나'라는 하나의 개체로 움직일까요? 바로 '면역 시스템' 덕분입니다. 면역계의 핵심 기능은 '피아(彼我) 식별'입니다. "이건 '내 편(Self)'인가, '적인가(Non-self)'?"


모든 세포는 표면에 MHC라는 일종의 '이름표'를 달고 다닙니다. 면역세포는 이 이름표를 끊임없이 검사하죠. 내 몸의 이름표(Self)를 가진 세포는 통과시키고, 이름표가 다르거나(박테리아, 바이러스) 망가진(암세포) 녀석은 즉시 공격해 제거합니다. 이 정교한 시스템 덕분에 우리는 질병 속에서 생존합니다.


레스토랑도 똑같습니다. 레스토랑의 '조직 문화'와 '핵심 가치'가 바로 이 MHC(이름표)입니다.


"우리는 고객에게 이런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는 음식을 만들 때 이 원칙을 지킨다."


"우리는 동료를 이렇게 대한다."


이것이 바로 그 레스토랑의 'Self', 즉 '우리다움'입니다.


스타벅스(Starbucks)가 좋은 예입니다. 그들의 이름표는 '커피'가 아니라 '제3의 공간(The Third Place)'과 '파트너(직원) 존중'입니다. 전 세계 어느 매장을 가도 이 'Self'가 느껴지죠. 이 강력한 면역 시스템(문화)이 '스타벅스다움'을 훼손하려는 외부의 '바이러스'(예: 저품질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막아냅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습니다.




2. 비극의 시작: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조직



그런데, 이 고마운 면역 시스템이 고장 날 때가 있습니다.


면역세포가 너무 과민해져서, 내 몸의 건강한 세포(Self)나 혹은 무해한 외부 물질(꽃가루 등)을 '적'으로 오인해 공격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류머티즘 관절염,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이나 '알레르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레스토랑의 비극은 정확히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조직의 문화(면역계)가 너무 강력해지고 경직되면, '과거의 성공 방식(Self)'과 조금이라도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Non-self)'를 '바이러스'나 '이물질'로 간주하고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건 '우리 스타일'이 아닌데?"


"우리는 원래 그렇게 안 해왔어."


이 말은, 우리 조직이 '자가면역질환'에 걸렸다는 명백한 증상입니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례는 코닥(Kodak)입니다. 1975년 코닥의 엔지니어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했습니다. 이것은 코닥의 생존을 위한 '백신'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닥을 지배하던 강력한 '필름 문화(면역 시스템)'는 이 디지털 카메라를 "필름을 위협하는 끔찍한 바이러스(Non-self)"로 봤습니다.


코닥의 경영진(면역세포)은 이 위대한 혁신을 스스로 공격하고 묻어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파산'입니다. 자신의 면역 시스템이 자신을 죽인 것이죠.


외식업계라고 다를까요? 블록버스터(Blockbuster)의 '연체료 기반 오프라인 매장'이라는 강력한 문화(MHC)는, '구독제 온라인 스트리밍'이라는 넷플릭스(Netflix)의 아이디어를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공격했습니다.




3. "가족 같은 회사"가 혁신가를 쫓아내는 이유



이 자가면역질환은 한국의 외식 현장에서 더 교묘하고 비극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증상 1: '원조 맛집'의 알레르기 반응


한 가지 메뉴로 '대박'을 친 맛집을 생각해 보시죠. (한때 유행했던 '대왕 카스텔라'나 '흑당 버블티'를 떠올려도 좋습니다.) 그들의 문화(면역계)는 오직 "우리는 '대왕 카스텔라' 원조야"라는 'Self'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이때, 시장(환경)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소금빵'이나 '약과 쿠키'라는 새로운 트렌드(무해한 외부 물질)가 등장합니다. 감각 있는 직원이 "우리도 저거 한 번 시도해 보죠?"라고 제안합니다.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사장님(면역계)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쓸데없는 소리 마! 우리는 '카스텔라'에 집중해야 해!"라며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기회(변이)를 이물질로 취급해 쫓아낸 것입니다. 그 결과, 트렌드(환경)가 바뀌자마자 '원조'라는 이름표만 붙들고 장렬히 전사합니다.



증상 2: '가족 같은' 문화의 치명적인 배타성


"우리는 가족 같다"는 말처럼 위험한 말이 또 있을까요. 이 문화의 이면에는 "가족의 질서(위계)를 어지럽히지 말라"는 암묵적인 경고가 숨어있습니다.


어느 날,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은 유능한 셰프(새로운 유전자)가 이 '가족 같은' 식당에 합류했다고 칩시다. 그는 비효율적인 주방 동선, 구식 재고 관리(오래된 Self)를 보고 합리적인 개선안(새로운 Non-self)을 제시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기존 '가족'들(터줏대감 면역세포)은 이 셰프를 '조직 문화를 해치는 이물질'로 간주합니다. "네가 뭘 안다고 우리 방식을 바꿔?"라며 '면역 거부 반응'을 일으킵니다. 결국 혁신을 꿈꾸던 셰프는 조직에서 튕겨져 나가고, 그 '가족'은 비효율적인 과거의 방식(질병)과 함께 안락하게 침몰합니다.




4. 어떻게 해야 할까요?: '면역 관용'을 기르는 법



그렇다면 조직 문화(면역계)가 아예 없는 게 좋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건 '에이즈(AIDS)' 상태입니다. 면역력이 0이 되어 온갖 잡다한 바이러스(기준 없는 서비스, 엉망인 위생)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즉시 사망합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건강한 면역계', 즉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입니다.


'면역 관용'이란, 나의 면역계가 '진짜 적(살모넬라균)'과 '무해하거나 이로운 것(꽃가루, 유산균, 새로운 아이디어)'을 구분해내는 '지성'입니다. 진짜 적은 섬멸하되, 이로운 것들은 '아군'으로 받아들이는 유연함입니다.


컨설턴트로서 저는 레스토랑에 이 '면역 관용' 시스템을 설계하라고 조언합니다.



1. '백신(Vaccine)'을 정기적으로 주사하세요.


'면역 관용'은 훈련으로 생깁니다. 조직에게 '작고 통제된 실패(변화)'를 정기적으로 경험시켜야 합니다.


'오늘의 스페셜', '시즌 팝업 메뉴'가 바로 이 '백신'입니다. 이는 메뉴 개발인 동시에, 조직 문화를 훈련시키는 행위입니다.


직원들에게 "우리 가게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주입하는 것입니다. 이 훈련을 통해 조직은 '변화' 자체를 '적'이 아니라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2. '우리다움'을 다시 정의하세요: "무엇"이 아닌 "왜"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조직의 '이름표(MHC)'를 '특정 메뉴(What)'로 정의하는 순간, 그 조직은 경직됩니다.


"우리는 '돼지국밥' 집이다." (X)


대신, 조직의 'Self'를 '가치'와 '방향성(How/Why)'으로 재정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최고의 식재료로 고객을 행복하게 하는' 집이다." (O)


이렇게 'Self'를 재정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돼지국밥'에 집착하던 면역계는, 이제 '최고의 식재료'와 '고객 행복'이라는 더 상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합니다. 만약 고객들이 돼지국밥 대신 '수육'이나 '새로운 국밥'을 원한다면? 그 '변화'는 더 이상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오히려 '고객 행복(Self)'이라는 핵심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건강한 세포'로 환영받습니다.


배달의민족이 "우리는 '배달 앱' 회사다"라고 정의했다면, 'B마트'나 '웹툰(만화경)' 같은 혁신은 '바이러스'로 취급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문 앞으로 배달되는 일상의 행복(Self)"으로 정의했기에, 그 '자가면역질환'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강력한 조직 문화는 양날의 검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브랜드를 지키는 성벽이지만, 동시에 당신을 가두는 감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레스토랑의 재무제표나 메뉴판을 보기 전에, 그 조직의 '면역 시스템'부터 진단합니다.


"당신의 조직은 진짜 '적(불친절, 비위생, 경쟁사)'과 싸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의 미래가 될 '새로운 아이디어'와 싸우고 있습니까?"


지금 당장 당신의 조직을 돌아보십시오.


젊은 직원이 "이건 어떨까요?"라며 '미친' 아이디어를 가져왔을 때, 당신의 조직(면역계)은 그를 '백신'으로 환영합니까, 아니면 '바이러스'로 취급해 백혈구를 출동시킵니까?


그 반응에 당신 조직의 생존이 달려있습니다.







레스토랑의 경영과 마케팅을 연구하고 희망을 스토리텔링합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ikjunj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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