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가게와 둥그런 자존심(1화)

by 잇쭌


2025년 10월 16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저녁 식사 시간이란 본디 하나의 교향곡이어야 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주문 전화는 경쾌한 피치카토, 분주한 주방의 외침은 격정적인 알레그로, 그리고 피자를 받아 든 손님의 만족스러운 탄성은 화려한 피날레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강만수(58)의 가게, ‘강만수의 둥그런 피자’는 지휘자를 잃은 오케스트라처럼, 음표 없는 악보처럼, 그저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가게 안을 채우는 것은 30년 된 오븐에서 새어 나오는 미지근한 열기가 아니었다. 윙, 하고 낮은 신음을 토해내는 낡은 업소용 냉장고의 비명, 그리고 벽에 걸린 괘종시계가 기계적으로 시간을 삼키는 소리뿐이었다. 똑, 딱, 똑, 딱. 그 소리는 마치 그의 자부심이 조금씩 마모되는 소리 같았다.


이곳은 그의 인생이 켜켜이 쌓인 지층이었다. 스물여덟, 이탈리아 장인의 콧수염을 흉내 내며 밀가루를 뒤집어쓰던 청년 강만수는 이제 희끗희끗한 머리의 사장이 되었다. 그의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매일 새벽 가장 좋은 밀가루를 체에 내려 천일염과 물, 약간의 이스트만으로 반죽을 했다. 화학 첨가물 따위는 그의 사전에 없었다. 72시간의 저온 숙성은 도우에 숨을 불어넣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토마토소스는 캔 제품을 쓰는 법 없이, 잘 익은 완숙 토마토를 으깨고 시칠리아산 오레가노와 직접 키운 바질을 넣어 뭉근하게 끓였다. 그의 피자는 장사를 위한 음식이 아니라, 그의 철학이 담긴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가게는 그 작품이 구워지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의 성전(聖殿)이었다.


“배달!”


성전의 고요를 깬 것은 신의 계시가 아닌, 태블릿PC에서 터져 나온 무미건조한 기계음이었다. 화들짝 놀란 강만수가 닳아빠진 고무 슬리퍼를 끌며 카운터로 향했다. ‘배달의민족’ 화면에 뜬 주문은 ‘페퍼로니 피자 M사이즈, 콜라 1.5리터 추가’. 그의 미간에 짧고 굵은 협곡이 파였다. 그의 예술혼이 담긴 ‘시그니처 포르치니 풍기’나 ‘프로슈토 에 루꼴라’가 아니었다. 미국식 공장 소시지나 다름없는 페퍼로니라니. 그래도 이게 어딘가. 한때는 이런 주문은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기고 자신은 요리(Cucina)에만 집중했더랬다.


그는 익숙하지만 어딘가 체념이 섞인 동작으로 도우를 펼치고 소스를 발랐다. 하지만 손놀림은 예전처럼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움이 없었다. 오늘 들어온 네 번째 주문. 이 피자 한 판의 판매가는 18,000원. 여기서 배달앱 중개 수수료와 배달 대행료, 광고비를 제하고 나면 13,000원 남짓. 여기에 원재료비와 포장재 비용을 빼면, 그의 30년 기술과 72시간의 기다림의 가치는 고작 몇천 원에 불과했다.


피자를 오븐에 밀어 넣은 강만수는 무심코 창밖을 내다봤다. 길 건너편, 얼마 전 그의 가게를 비웃기라도 하듯 들어선 ‘솔로 피자(SOLO PIZZA)’의 네온사인 불빛이 그의 눈을 찔렀다. 통유리창 너머로 젊은이들의 활기가 형광등 불빛처럼 넘실거렸다. 혼자 온 손님들이 손바닥만 한 사각 피자 한 조각에 투명한 플라스틱 잔에 담긴 맥주를 마시며 휴대폰 액정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그 광경은 음식 문화에 대한 테러 행위였다.


“근본 없는 것들…”


나눠 먹는 기쁨이라는 피자의 철학을 무참히 조각내고, 30년 장인의 손맛을 3분 만에 찍어내는 공장 음식으로 전락시켰다. 그는 혀를 찼다. 저런 얄팍한 유행이 얼마나 가겠는가. 맛의 본질은 결국 시간이 증명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의 굳건한 신념과 달리, 현실의 저울은 이미 저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의 성전은 텅 비어 있었고, 저들의 공장은 붐비고 있었다.


딸깍, 가게 문이 열렸다. 그의 유일한 혈육, 딸 혜진이었다.


“아빠, 식사는 하셨어요?” 혜진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물기가 어려 있었다.


“그럼. 든든하게 먹었지.”


그는 또 거짓말을 했다. 손님이 없으니 입맛도 없었다. 혜진은 아비의 마른 어깨와 텅 빈 홀을 번갈아 보며 깊은 한숨을 삼켰다. 그녀의 손에는 며칠째 쌓여가는 월세 독촉 고지서가 죄인처럼 들려 있었다.


“아빠, 이렇게는 안 돼요. 정말로. 뭔가 바꿔야 해요.”


“뭘 바꿔. 이 맛을, 이 방식을 30년 지켜왔어. 손님들은 알아. 진짜 맛이 뭔지 아는 사람들은 결국엔 돌아온다고.” 그의 목소리는 컸지만, 그 속에는 스스로를 향한 주문 같은 절박함이 묻어났다.


“언제요? 가게 문에 빨간 딱지 붙은 다음에요?”


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떨렸다. 강만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그의 인생 전부를 걸어온 장인의 신념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침묵에 혜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아버지가 평생을 바친 이 공간이, 이 자부심이 얼마나 위태로운 모래성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가 사람 좀 불렀어요.”


“사람? 누굴?”


그 순간이었다. 딸깍, 가게 문이 다시 열리며 한 여자가 들어섰다. 스물아홉쯤 되었을까. 군더더기 하나 없는 검은색 슬랙스에 다림질이 잘된 흰 셔츠. 손에는 아이패드 하나만 들려 있었다. 그녀는 흔한 목례나 인사도 없이, 가게 안을 천천히, 그러나 정밀하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 눈빛은 따뜻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마치 고장 난 기계의 결함을 찾아내는 엔지니어처럼, 혹은 수술 부위를 살피는 외과 의사처럼 차갑고 분석적이었다. 낡았지만 정갈한 메뉴판, 비효율적인 주방 동선, 손님 없는 테이블의 수, 카운터에 쌓인 먼지 한 줌까지.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보이지 않는 가격표가 매겨지고 감가상각이 계산되는 듯했다.


강만수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저 눈빛.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장인을 향한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효율과 결과만 따지는 듯한 저 서늘함이 불쾌했다.


마침내 가게를 한 바퀴 둘러본 여자가 그의 앞에 섰다. 그녀는 강만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이패드를 쥔 하얀 손가락이 유난히 도드라졌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유나라고 합니다.”


그것이 그녀의 첫인사였다. 그리고 곧바로, 그의 30년 둥그런 자부심을 예고 없이, 인정사정없이 산산조각 내는 선고가 이어졌다.


“사장님, 이 가게는 한 달 안에 망합니다.”




2화에서 계속......




Today's Management Insight: 예술가의 함정 (The Artisan's Trap)


훌륭한 '작품'이 훌륭한 '상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만수 사장처럼 자신의 제품(Product)에 대한 자부심이 강할수록, 시장의 냉정한 피드백을 외면하는 ‘시장맹(市場盲)’이 되기 쉽습니다. 고객은 사장님의 30년 철학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가치(Value)’를 삽니다. 나의 자부심이 혹시 시장의 변화를 거부하는 ‘관성’이 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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