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다고요?”
강만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오븐의 열기 때문이 아니었다. 30년 세월을 통째로 부정당한 장인의 모멸감이었다. 그의 두 주먹이 자신도 모르게 꽉 쥐어졌다. 둥글고 단단한 도우 반죽처럼, 그의 자존심도 그렇게 뭉쳐 올랐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소?”
“통계적으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사장님.”
최유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감정 대신 팩트(Fact)만이 담겨 있었다. 마치 잘 벼린 의사의 메스처럼, 불필요한 위로 없이 문제의 핵심을 도려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통계? 숫자로 내 피자 맛을 안단 말이오? 내 피자는 예술이오! 당신 같은 젊은 사람이 뭘 안다고…!”
“아빠, 제발!”
혜진이 그의 팔을 붙잡으며 애원했다. 그 순간, 강만수는 딸의 눈에 고인 절망을 보았다. 자신을 향한 원망이 아닌, 아버지가 쌓아 올린 성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자식의 슬픔이었다. 그는 터져 나오려는 고함을 가까스로 삼켰다. 딸의 얼굴을 봐서, 딱 한 번만 들어주기로 했다.
“좋소. 어디 한번 말해보시오. 내 가게가 왜, 어떻게 망한다는 건지.”
그는 팔짱을 낀 채, 의심과 경멸이 뒤섞인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최유나는 기다렸다는 듯 아이패드를 켰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익숙한 동네 지도였다. 하지만 그 위에는 울긋불긋한 핀들이 징그럽게 박혀 있었다.
“여기가 사장님 가게입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지도의 중심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반경 2km 안에 있는 경쟁 업체를 표시해봤습니다. 빨간색은 도미노, 피자헛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 파란색은 피자스쿨, 빽보이 같은 저가 프랜차이즈. 그리고 노란색은… 사장님처럼 개인 브랜드입니다. 총 27개. 사장님은 지금 27명의 경쟁자와 싸우고 계신 겁니다.”
강만수는 입을 다물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전쟁 지도’는 생각보다 훨씬 잔혹했다.
“하지만, 사장님의 진짜 경쟁자는 이 지도에 없습니다.”
최유나는 화면을 넘겼다. 나타난 것은 대형마트 전단지 이미지였다. ‘유명 브랜드 HMR 피자, 2개 구매 시 1+1, 개당 7,900원!’
“바로 이겁니다. 사장님의 진짜 경쟁자.”
강만수는 코웃음을 쳤다. “허, 고작 냉동 피자? 그런 공장 음식하고 내 피자를 비교하는 거요?”
“네, 비교해야 합니다. 소비자는 그렇게 하니까요.” 최유나는 단호했다. “사장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사장님의 ‘프로슈토 에 루꼴라’ 피자 한 판 가격이 32,000원입니다. 이 7,900원짜리 냉동 피자보다 4배 이상 비쌉니다. 사장님은 소비자에게 당신의 피자가 냉동 피자보다 4배 이상 맛있거나, 4배 이상의 가치를 제공한다고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가치를 증명하라.’ 강만수는 마치 따귀를 맞은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맛은 당연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4배의 가치’라니. 그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예술가였지, 수학자가 아니었다.
최유나는 그의 혼란을 읽었다는 듯, 다음 엑스레이 사진을 들이밀었다. 이번에는 복잡한 숫자와 그래프가 가득한 엑셀 시트였다.
“사장님, 지난달 매출 장부 좀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왜…”
“아빠, 여기.” 혜진이 카운터 서랍에서 빛바랜 장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최유나는 장부를 빠르게 훑어보더니, 아이패드에 몇 가지 숫자를 입력했다. 화면에 새로운 숫자들이 떠올랐다.
“지난달 총매출, 약 1,200만 원. 나쁘지 않습니다. 그럼 이제 비용을 빼보겠습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할 때마다, 1,200만 원이라는 숫자는 사정없이 줄어들었다.
“먼저 원재료비, 약 480만 원. 식자재 원가율이 40% 정도로 나쁘지 않게 관리하고 계십니다. 다음은 월세 150만 원, 관리비 및 공과금 약 50만 원.”
숫자는 520만 원으로 줄었다.
“그리고… 배달 관련 비용입니다.”
최유나는 혜진이 건네준 배달앱 정산 내역을 입력했다. “총 배달 매출 800만 원 중, 중개 수수료, 결제 수수료, 광고비, 배달 대행료를 합한 금액이 약 240만 원. 매출의 30%가 플랫폼 비용으로 지출됐습니다.”
강만수의 눈이 커졌다.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240만 원’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는 그의 심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520만 원에서 240만 원을 빼자, 남은 금액은 280만 원.
“여기서 사장님 인건비와 딸인 혜진 씨 인건비를 가져가셔야죠. 최저임금으로만 계산해도… 결과는 마이너스입니다. 사장님은 지난 한 달간, 돈을 번 게 아니라 당신의 30년 기술과 시간을 공짜로 바치신 겁니다.”
가게 안에는 다시 괘종시계 소리만 울렸다. 똑, 딱, 똑, 딱. 아까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소리로 들렸다.
강만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자부심, 그의 예술, 그의 신념이 숫자로 된 망치에 맞아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사장님, 이건 사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최유나가 처음으로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피자 시장은 거대한 ‘퍼펙트 스톰’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사장님의 가게는 그 폭풍의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돛단배와 같습니다. 냉동 피자라는 보이지 않는 경쟁자의 습격, 배달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비용 구조의 등장, 그리고 1인 가구라는 소비 주체의 근본적 변화. 이 세 개의 거대한 파도가 동시에 덮치고 있는 겁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진단은 끝났습니다. 사장님의 피자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 작품을 담고 있는 가게는 이미 망가진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작품을 살리려면, 이 가게부터 부숴야 합니다.”
“나가!”
마침내 강만수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당신 같은 장사치에게 내 피자를, 내 인생을 모욕하게 둘 순 없어! 당장 나가!”
그의 분노는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평생을 믿어온 자신의 세계가 숫자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자의 절망적인 비명이었다.
최유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명함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조용히 가게를 나섰다. 혜진이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가게에 홀로 남은 강만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오븐에서 막 꺼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페퍼로니 피자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완벽한 황금빛 크러스트, 먹음직스럽게 녹아내린 치즈, 짭짤한 페퍼로니의 향기. 그것은 여전히 완벽한 그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의 귓가에는 최유나의 목소리가, 그녀가 보여준 무자비한 숫자들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7,900원.
-240만 원.
-마이너스.
그의 완벽하고 둥그런 피자 위로, 처음으로 의심이라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3화에서 계속......
Today's Management Insight: 숫자는 감정을 배신하지 않는다 (Data-Driven Diagnosis)
최유나 컨설턴트가 보여준 것은 ‘팩트’입니다. 많은 자영업자가 ‘열심히’ 일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냉동 피자라는 ‘보이지 않는 경쟁자’를 파악하고, 배달앱 수수료라는 ‘숨겨진 비용’을 직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입니다. 감(感)으로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로 진단해야 정확한 처방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