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동거의 시작 (5화)

by 잇쭌


강만수의 항복 선언은 종전(終戰)이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지리하고 신경질적인 싸움, 바로 ‘재건(再建)’이라는 이름의 내전(內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다음 날부터 ‘강만수의 둥그런 피자’는 최유나라는 이름의 점령군 사령관과 강만수라는 이름의 패잔병 성주가 벌이는 어색한 동거의 현장이 되었다.


첫 번째 충돌은 가게의 ‘얼굴’을 허무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됐다. 최유나가 고용한 철거 인부들이 30년간 가게를 지켜온 낡은 간판을 떼어내던 날, 강만수는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주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드르륵- 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청춘이, 그의 자부심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장님, 내부 인테리어 시안입니다. A안과 B안 중에 골라주시죠.”


최유나는 그의 감상에 동참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가 내민 아이패드에는 요즘 유행하는 인더스트리얼 풍의 인테리어 시안이 담겨 있었다. 노출 콘크리트 벽, 검은색 레일 조명, 에디슨 전구.


“이게… 가게라고?” 강만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창고나 공장이지! 밥 먹는 곳은 따뜻해야 하는 법이오. 사람 온기가 느껴져야지!”


“온기는 사장님 피자로 충분합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이런 ‘힙한’ 공간을 소비하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립니다. 우리는 피자를 파는 게 아니라, ‘피자를 먹는 근사한 경험’을 파는 겁니다.”


“궤변!”


“데이터입니다, 사장님.”


결국 인테리어는 두 사람의 철학을 어중간하게 섞은, 노출 콘크리트 벽 앞에 뜬금없이 이탈리아 시골 풍경화가 걸린 기묘한 형태로 타협점을 찾았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메뉴 개발 과정에서 벌어졌다.


“치즈는 이걸로 하죠. 국산 1등급 모차렐라와 미국산을 7:3으로 블렌딩한 제품입니다. 풍미도 괜찮고, 무엇보다 원가율을 8%나 낮출 수 있습니다.”


최유나가 내민 샘플 치즈를 본 강만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말없이 주방 냉장고에서 하얀 물소 젖 치즈, ‘부팔라 모차렐라’ 덩어리를 꺼내왔다.


“내 피자에는 이것만 썼소. 이탈리아 캄파니아에서 건너온 진짜배기지. 이걸 써야 치즈가 우유처럼 녹아내리면서….”


“사장님, 그 치즈는 원가가 너무 높습니다. 조각 피자 한 조각에 7천 원을 받아서는 마진이 거의 남지 않아요.”


“그럼 가격을 올리면 될 것 아니오!”


“가격을 올리면 ‘가성비’라는 우리의 가장 큰 무기를 잃게 됩니다. 사장님,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 가격대에서 손님들 대부분은 국산 블렌딩 치즈와 캄파니아산 부팔라 치즈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통장 잔고는 그 차이를 아주 명확하게 구분할 겁니다.”


“모욕이오!” 강만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 혀를, 내 인생을 모욕하고 있어! 이 치즈는 내 피자의 심장이란 말이오! 당신은 지금 나더러 심장을 팔아서 가게 월세를 내라는 소리를 하는 거요!”


“네, 맞습니다.” 최유나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필요하다면 심장이라도 팔아서 살아남아야죠. 죽은 다음에는 심장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들의 싸움은 끝이 없었다. 최유나가 ‘요즘 트렌드’라며 추천한 민트 초코나 고구마무스 토핑을 보고 강만수는 “이건 피자에 대한 신성모독!”이라며 길길이 날뛰었고, 강만수가 고집하는 비싼 유기농 루꼴라를 보며 최유나는 “그 돈이면 차라리 리뷰 이벤트를 한 번 더 하는 게 낫다”고 반박했다. ‘감(感)’과 ‘데이터’의 충돌, ‘예술’과 ‘효율’의 싸움은 매일같이 가게 안에서 포성을 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메뉴 레시피를 두고 언쟁을 벌이다 지친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강만수는 울화통이 터져 자신도 모르게 반죽 기계를 돌렸다. 그는 아무 토핑도 올리지 않은 플레인 도우를 얇게 펴, 화덕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오븐에서 나온 것은 부풀어 오른 하얀 빵, 포카치아와 비슷한 모양의 결과물이었다. 구수한 밀가루 냄새가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빵을 찢어 최유나 앞에 던지듯 내밀었다. ‘이게 내 30년 기술의 근본이다’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최유나는 잠시 그를 쳐다보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빵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커졌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구름처럼 부드럽고 쫄깃했다. 값비싼 토핑이나 소스가 없어도, 그 자체로 완벽한 맛이었다. 좋은 밀가루의 순수한 단맛과 은은한 발효의 풍미, 그리고 적절한 소금 간이 입안에서 춤을 췄다. 그녀는 수많은 레스토랑을 컨설팅했지만, 이렇게 본질만으로 감동을 주는 ‘빵’은 처음이었다.


“……맛있네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진심이었다.


강만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굳게 닫혔던 그의 마음의 빗장이 아주 조금,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최유나는 깨달았다. 이 완고한 장인을 꺾을 방법은 그의 자존심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고 이용하는 것임을.


“사장님.” 그녀는 남은 빵 조각을 마저 입에 넣고 말했다. “이 도우가 사장님의 무기입니다. 이런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왜 우리가 불리한 전장에서 싸워야 합니까?”


그녀는 아이패드를 켰다. “사장님의 이 도우는 예술이 맞습니다. 하지만 예술 작품도 가장 잘 팔리는 갤러리에 걸어야 제값을 받는 법입니다. 지금 피자 시장에서 가장 큰 갤러리는 ‘가족 외식’이 아니라 ‘1인 고객’과 ‘주류 시장’입니다. 우리의 전략은 사장님의 예술을 포기하는 게 아닙니다. 가장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시장으로 옮겨가는 겁니다.”


그녀의 논리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그의 ‘예술’에 대한 명백한 존중이 담겨 있었다.


강만수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빵 조각과 최유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며칠 후, 가게에는 새로운 메뉴판이 걸렸다. 거기에는 ‘오늘의 장인 추천 슬라이스’라는 이름 아래, 강만수가 고집한 부팔라 모차렐라 치즈를 올린 조각 피자가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격은 다른 조각 피자보다 2천 원 비쌌다. 그리고 그 옆에는 최유나의 데이터가 추천한, 젊은 층이 선호하는 IPA와 페일 에일 수제 맥주 리스트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감’과 ‘데이터’의 어색한 동거. ‘예술’과 ‘효율’의 위태로운 타협.


새로운 가게, ‘강만수의 피맥집’의 정체성은 그렇게, 매일같이 싸우고 돌아서고 다시 마주 앉는 두 사람의 관계처럼 기묘한 모습으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6화에서 계속......



Today's Management Insight: 데이터 vs. 감 (Data vs. Intuition)


훌륭한 전략은 실행 단계에서 '감(Man-soo)'과 '데이터(Yu-na)'의 충돌로 무너지기 쉽습니다. 이 화의 핵심은 '데이터'가 '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감'이 가진 진짜 강점(최고의 도우 맛)을 '데이터'가 발견하고, 그것을 가장 잘 팔릴 시장(갤러리)에 연결하는 것입니다. 데이터는 비용 절감의 칼일 뿐만 아니라, 핵심 역량을 찾아내는 현미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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