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뛰어넘어

by 지니페이지

시험 기간임을 암시하는 것은 심야의 시작이다. 심야는 원칙적으로 내신시험 3주 전부터 시작된다. 심야라 함은 야자 3교시를 마치고 잠을 자는 것 대신 12시부터 원하는 시간까지 (최대 2시, 시험기간 당일은 자유롭게) 자습을 하다가 올라가 잠에 드는 것이다.

나는 1학년 때 심야를 가장 많이 했고, 지금 생각하면 가장 체력이 좋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매 시험마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걸 해내는 내가 자랑스러웠고, 대단했다. 시험기간에는 학교에서 잠을 잘 안잤던 것 같다. 사실 1학년 때는 학교에서 잠을 자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매번 친구들이 나에게 괜찮냐고, 안 피곤하냐고 물었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때는 쉬는시간 10분의 꿀잠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고, 그시간에 한문제라도 더 풀고 한문장이라도 더 읽고 외우는 게 좋다고 판단해서 잠이 와도 버텼다. 아메리카노를 집에서 챙겨와 먹기도 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자주 애용하지는 않았다.

심야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며 나 자신을 다독였고, 하루가 이렇게 끝나간다는 것을 체감했다. 겨울에는 복도가 너무 추워서 이렇게까지 살아야겠냐는 비관적인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따듯한 방에 얼른 올라가 잘 생각밖에 없었다. 특히나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여름밤이면 괜히 센치해진다. 창문 밖으로 내리는 비를 잠시 바라보고 있으면 감성에 젖게 되어 있다. 그 순간이 좋았다. 나의 룸메이트가 토독토독 떨어지는 비오는 날을 좋아했는데, 그런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녀가 생각났다. 잠깐이라도 쳐다보고 머무르다 가고 싶어 발길을 멈춰 세웠었다. 그러다 잠을 청하러 올라가곤 했다.

고1때는 심야를 했다면 고3때는 일찍 잤다. 고2때 11시만 되어도 피곤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냥 자리에서 뭐라도 하며 버텼다. 고3때는 버텨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고 느껴 그 시간에 자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고3때 사감선생님이 바뀌었다. 전에는 굉장히 빡빡했는데 바뀐 사감선생님은 전에 비하면 널널한 편이었다. 일찍 잔다고 혼내시지도 않았고, 학교에서 많이 공부할텐데 피곤하면 일찍 자고 고3들 컨디션 관리하라고 해주셨다. 일찍 자는 날은 잠에 드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했다. 어느 순간 잠을 자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하게 되었었는데, 잠이 부족하면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어떨 때는 내가 먼저 누울 때도, 나의 룸메가 자고 있을 때도 있었다. 서로를 위해 조심조심 문을 닫고 열었다.

고3이 되어서는 학교 일과 중에 자습이 많아서 기숙사에 들어와서 야자3교시를 할 때면 정말 자습 때문에 힘이 부쳤다. 빨리 오늘 할 일을 다 끝내고 쉬고 싶었다. 수능이 다가올수록 거의 다 자습이었고, 고교학점제인 만큼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듣다 보니 반만 옮겨다니며 공부하는 셈이었다. 귀찮기도 했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우리 반 수업이 많아서 한 학기는 편하게 지냈다.

6인실을 썼을 때 룸메들이 나를 6인실의 엄마라고 불렀다. 제일 먼저 준비하고 깨워야 할 친구가 있으면 꺠워주고, 평소 하는 행동도 챙겨주는 거나 그런 것들이 엄마 같다고 했다. 내가 심야를 하고 있던 어느날, 나에게 누군가 다가와 쪽지를 건넨다. 바로 내일 깨워달라는 말이 적혀져 있는 쪽지였다. 귀여웠다. 2학년, 3학년이 되어서도 나는 6시가 되면 칼기상했다. 룸메가 깨워달라고 하면 깨워주었고, 3학년 때는 나와 같은 반이었던 S가 6시 반에 내가 나갈 때 자기를 깨워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다른 방이었지만 같은 층에 근처였기에 아침에 씻고 준비를 다 끝낸 다음 S의 방에 가 문을 열고 이름을 부르는 것이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유독 S는 행복하게 일어났다. 보통 깨우면 잘 일어나지 않거나 잘 일어나는 친구더라도 말 없이 일어나기 일수인데, S는 웃으며 눈을 떴다. 나도 그게 너무 보기 좋고 기분 좋아져서 다른 방임에도 계속 깨워주었던 것 같다. 덕분에 웃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겨울 기숙사는 여러 번 말했듯이 정말 춥다. 그 와중에 아침, 아니 새벽 6시의 공기는 말할 바 없이 차다. 샤워실로 들어가기 전에 목욕바구니가 놓여져 있는 곳에서 옷을 벗고 들어가는데 항상 창문이 열려 있어서 춥다. 닫을려고 하다가 방충망을 여는 순간 여름에는 나방이며 각종 벌레들이 들어와 난리나 난 적이 있어 늘 조심스럽다. 겨울에는 벌레가 덜하기에 창문을 닫는 데 성공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추웠다. 샤워실에 들어가도 1등으로 들어가면 따뜻한 물이 바로 나오지 않아 추위에 오들오들 떨게 되었다. 한 샤워기만 틀면 안 되고 따뜻한 물이 빨리 나오게 하려면 여러 샤워기를 한번에 온수쪽으로 돌려 계속 틀어놓아야 했다.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내려오는 그 근처만 가도 한기가 느껴져서 정말 고통스럽기도 하다. 어떨 때는 사감선생님이 미리 따뜻한 물을 틀어두셔서 그 센스에 감동했었다. 따뜻한 물의 소중함이란, 엄청나다. 한번은 아침에 샤워를 하는데 따뜻한 물이 끊겼다. 샤워를 하던 중이라면 차가운 물로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별 일이 다 있었다.

시험기간에는 샤워를 하러 가며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씻으면서는 이렇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했다. 어떤 책에서는 아침에 샤워를 하며 근심걱정이 물에 씻겨내려가고 좋은 에너지만 남아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고 한 것 같다. 여름이면 아침 6시도 밝고 뭔가 에너제틱한 느낌인데, 겨울만 되면 그렇게 기운이 없다. 방에서 나가는 순간 수건으로 내 눈을 감싸야만 했다. 정말 눈부시기 때문이다. 극강의 밝음으로 느껴진다. 자연스레 인상을 찌푸리고 실눈을 뜨며 비몽사몽 샤워실로 향한다. 샤워를 다 하고 머리를 말리며 창문을 보면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출을 볼 수 있는 우리 방이었다. 방 위치가 좋은 것 같다. 달도 볼 수 있고, 하루를 일출과 함께 하다니, 아름다웠다. 괜히 에너지를 얻는다. 그때 나의 룸메는 시끄러워도 잘 잔다며 머리를 방에서 말려도 된다고 했다. 난 항상 자는 친구들이 있어서 화장실에서 머리를 말렸었는데, 처음으로 방에서 말려보니 너무 좋았다. 특히나 2학기였어서 추운데 옷을 껴입고 화장실에서 머리를 말리지 않아도 되니 아침을 좀 더 상쾌하게 맞이할 수 있었다.

시험기간이면 내가 씻으러 갈 때 올라오는 애들이 있다. 한국사 전날이 진짜 심한데 한국사 전날은 밤을 새는 후배들이 많았다. 우리때도 아침6시쯤에 올라와 40분 정도 자고 등교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나는 못할 짓이었다. 평소에도 12시가 넘어가서 공부를 하고 일어나는 날이면 앉아있을 때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2학년 때 과탐 치기 전날 과탐 부족한 유형들을 보충하느라 새벽 3시 정도까지 해본 게 최대였다. 1학년 한국사 치기 전날에도 심야를 하긴 했지만 뭔가 2시 전에는 자야 할 것 같아서 잤다. 그날은 각성했는지 잠이 오지 않았다.

시험 범위도 굉장히 많고, 영어 과목의 경우 한 번에 고3 수준의 영어 지문이 100개씩 들어갔다. 외고를 다니고 있는 줄 알았다. 다른 과목들도 어려웠지만 수학은 특히나 어렵기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그때는 과고를 다니고 있는 줄 알았다. 거의 그냥 시골에 있는 특목고였다. 시험마다 매번 요약노트를 만들고 문제도 많이 풀고 외우면서 시험대비를 했던 것 같다. 모르는 문제는 혼자 고민하기 보다는 친구들이나 선생님 도움을 받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2학년때는 시험기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 끝나기만 하면 좋겠다고 그랬다. 시험기간에는 시험기간이 끝나고 할 것들을 상상하며 버텼다. 그 주 주말에 먹을 맛있는 것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2학년 2학기때는 시험기간에 몸이 춥고 덜덜 떨렸다. 방송실에 가서 체온계로 재보니 열이 꽤 났다. 그 당시 아무런 약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친구가 약을 가지고 있어서 타이레놀 하나를 먹고 냉동실에 있던 아이스팩으로 열을 내리며 잠시 쉬었다. 그 시기는 굉장히 힘들었다. 연필을 잡고 싶은데 힘이 없어서 잡을 수 없었다. 알고보니 그게 빈혈 증상이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온몸이 축축 쳐졌고, 손씻고 세수할 힘도 없었고, 믿기 힘들겠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힘들었다. 샤프를 쥘 힘도 없으니까 문제도 못 풀었다. 인강을 들으면서 머리로 개념 정리를 했다. 해결법도 모르겠었고, 단순히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시험 기간에는 일찍 마치기 때문에 마지막 날이면 기숙사생들도 집에 일찍 갈 수 있었다. 너무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만족스럽거나 후회가 남지 않는 시험이라면 편히 잤었고,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은 경우에는 방에서 눈물을 흘렸었다. 이 학교에 왜 와서 나는 이러고 있는걸까, 라는 생각과 함께 서러움을 느꼈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밥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했는데 왜 이 모양일까. 허무함이 들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면 그런 시간도 내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빛났던 시기로 볼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슬펐다.

중학교에 갔을 때도 있었다. 중학교에 가니 되게 복도도 넓고 이렇게 넓은 곳에서 생활을 했었지, 하며 추억에 잠겼다. 한번은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학교 때 친구와 함께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날이 중학교 축제 날이었는데, 학교 근처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몇 잔 사서 갔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될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었는데, 가서 축제도 잠깐 구경하고 오랜만에 뵈는 선생님들께 인사도 드리고 이야기 나누며 힘을 얻고 응원을 많이 받았다.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난 나머지 지치기도 했지만 에너지를 듬뿍 받은 덕분에 꼭 수능에서 올 1등급을 받자고 친구와 함께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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