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종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쇼트트랙이라고 말한다. 쇼트트랙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매 시즌마다 피튀기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보는데, 심장을 졸이고 본다. 월드컵보다도 더 어려운 대한민국 국대 선발전이다. 그 과정으로 국가대표가 선발되면 월드컵 시즌을 기다렸다가 해외에서 하는 월드컵을 생중계로 봤다. 몇 년째 보다 보니 외국 선수들도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보였고, 내적 친밀감이 많이 생겼다. 한국 선수들도 당연히 응원하지만 경기를 오래도록 보고 있으면 내 마음에 드는 최애 외국 선수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네덜란드의 잔드라 벨제부르 선수를 너무 좋아하는데, 그 선수를 실제로 보고싶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잘 탄다고 할만한 현역 최민정 선수도 직접 보고 싶은 쇼트트랙 직관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매년 월드컵 일정이 나오면 개최국을 보는데, 우리나라 서울에서 4차 월드컵이 개최되는 해가 있었다. 내가 고1, 고2였을 때 모두 4차 월드컵이 목동 아이스링크장에서 개최되었는데, 쇼트트랙 광팬인 나로서는 참을 수 없었다. 일정을 기다렸다가 당장 티켓을 예매하고 직관을 가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백화점 지하상가에 들려 맛있는 것도 먹고 아이스링크장으로 향했다. 되게 추운 겨울이라 바람도 많이 불고 추웠다. 그래도 너무 설레었다. 2시쯤 도착해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되게 잘 보였다. 낯이 익은 선수들도 많이 보이고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선수들이 내 눈앞에 나타나 그들의 준비과정부터 레이스 세레머니까지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 믿어지지 않았다. 사진도 많이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핸드폰 저장공간이 없어 사진을 많이 삭제해야 했는데, 이때 찍은 사진과 영상만은 삭제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직관을 갔을 때는 어디서 너무 예쁜 사람이 지나갔는데 생각해보니 이유빈 선수였다. 바로 달려가서 인사드리고 함께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았다. 마침 그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노트와 볼펜을 들고 갔었는데 영광의 사인을 얻었다.
잔드라 벨제부르 선수와는 직접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꼭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대신 인스타 스토리를 태그해서 올렸었는데,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그러다가 계정에 올라온 사진을 너무 그리고 싶어서 따라 그리고 보냈더니 이모티콘을 디엠으로 보내주셨다. 생일축하를 메시지를 보냈던 날도 있었고, 벨제부르가 영어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런 연락들이 일상속 행복으로 자리잡아 힘든 상황을 또 잘 극복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수능을 앞둔 어느날,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민선 선수와 연락이 닿아 수능 응원도 받고,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정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고, 힘든 순간마다 이렇게 좋은 기억들을 되살리게 되는 것 같다.
운동선수와 수험생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치열하게 목표를 위해 매일매일 꾸준히 노력하는 삶.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국가대표를 생각한다. 그들도 얼마나 더 자고 싶고, 새벽훈련을 가기 싫을까. 그럼에도 매일 동이 트기 전 새벽마다 훈련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그만하고 싶은데, 한 동작 더 하고, 한 바퀴 더 돌고. 그러면서 자신의 한계를 깨 나가고 길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이 대단했다. 그러다 올림픽 메달을 따고 그간의 힘들었던 상황들이 생각나 눈물짓는 모습이 우리가 대학을 합격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했다. 아무런 별다른 생각 없이 오늘도 해야 할 일들을 해내다 보면 좋은 순간이 결국에는 찾아온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다. 행운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 임했다.
학교에서 1학년 때는 융합인재라는 프로그램을 했다. 탐구도 하고 실험도 따로 하고 별도 직접 학교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관측해서 보고 했는데, 봄방학에는 여행을 갔다. 산청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별아띠 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하고 하룻밤을 잤다. 별아띠 천문대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준 곳이다. 직접 천문대를 만드신 분을 만나 뵙고 그 분의 일생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봤다. 직접 별을 관측한 사진도 보고 설명도 들으며 천체의 아름다움을 경험했다. 되게 추운 밤이었는데 그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온돌이라 등이 따뜻했다. 조금 있으니 천장이 하늘로 바뀌었다. 지붕이 열리고 밤하늘이 보였다. 바로 여기가 등이 따듯한 전세계 하나뿐인 천문대, 별아띠 천문대이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낭만적이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는가. 친구들과 담요를 덮고 누워 별을 바라보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다. 별을 다 보고 내려가는 길에 어두워서 신발을 잘 찾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핸드폰 손전등을 켜 비춰주는 스윗한 순간들까지 잊지 못할 소중한 날이었다.
밤하늘을 보고, 우주를 생각하면 우리는 먼지와 티끌보다 작은, 또는 그 정도인 물체일 텐데 우리가 치열하고 노력하는 것들은 어쩌면 먼지가 발버둥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며 생각에 잠긴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는지 다시 고민해보게 되었고, 앞으로 내가 향해 나아갈 방향성이 무엇인지 나침반처럼 또렷하게 가리킬 수 있는 그 방향을 설정해보았다.
2학년 때는 수학여행을 간다. 우리는 제주도로 향했는데 처음 친구들과 비행기를 같이 타는 것이라 신기했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옆에서 들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산일출봉도 오르고 제주의 자연경관을 많이 봤던 코스였다. 그다지 기억에 남는 건 없는데 숙소에 오면 너무 피곤해서 눕고 싶었다. 다른 방 친구들은 야식도 시켜먹고 했지만 우리 방은 그냥 일찍 잤다. 그래도 제주도에서 예쁜 사진도 남기고, 고등학교 수학여행 분위기를 느꼈었다.
좋은 추억들을 간직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덕분에 더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중간중간 주말마다 맛있는 것도 먹어주고 예쁜 카페에 가서 공부하고 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해주고 힐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숨을 쉬어야 또 나아갈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응원 메시지나 인스타로 종종 나눴던 응원 댓글들 덕분에 힘내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름이면 에어컨 밑에서, 겨울이면 따끈한 바닥에서 룸메들과 이야기했던 즐거웠던 순간들까지 모두 소중한 기억이다. 그 힐링 시간을 기다리며 하루, 그리고 한 주를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방학을 기다리는 건 정말 큰 행복이었다. 방학에도 공부를 해야할 것은 알지만 집에서 공부할 수 있으니 너무 좋았다. 참고로, 다른 친구들의 경우 집에 있으면 공부가 잘 안되고, 잘 안하게 된다고 스카(스터디 카페)를 가거나 독서실을 끊어 다니지만 나는 그런 곳을 가기가 귀찮기도 했고, 돈도 아까웠고, 그냥 집이 편해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저 집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