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잘 헤쳐나가자

by 지니페이지

인생을 살면서 불가피하게 들을 이유가 없는 말을 듣기도 하고, 그것이 내면의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 할수록 나 자신만 아팠다. 잘 먹지도 못하고 속도 안 좋고, 스트레스로 피부가 간지러워서 잠도 못 잤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인간관계를 모두 다 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 대하고 만나는 만큼 원래도 0이였던 에너지가 사라지고, 방전되어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볼 힘도 없이 지냈다. 생각하기 싫어도 문득 생각나고, 밤에 자기 전이면 꼭 생각이 나서 한동안 잠에 들기 어려웠고, 시간이 꽤나 지났는데도 한번씩 꼭 그 일로 악몽을 꿨다. 뒷문이 열리거나 누군가가 다가오면 괜히 무섭고 놀라기도 했다. 남들은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저들은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할까. 모두가 다 웃는 와중에도 나는 진정으로 웃지 못했다. 괜찮아 보이려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뇌를 스치기도 했다. 몸에 이끌려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면 근심걱정이 그나마 씻겨내려가는 것도 같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과연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던 사람이 처벌받아야만 내 마음이 편해질까, 사과라도 받으면 나아질까, 사실 잘 모르겠다. 뭘 어떻게 어디서부터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겠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니까.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와 이해관계 사이에서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졌다.

내적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잊혀지며 아무는 경우도 있고 덧날 수도 있다. 사건이 일어난 뒤 그것을 연상할 만한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생각이 들더라도 그런 생각을 중단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살면서 혼자서 터득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외부의 다른 일에 몰두해라, 운동을 해봐라, 등등 조언들은 있지만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지금껏 살아온 삶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큰 지각변동일 수도 있겠지만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은 겪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로써 한층 나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나의 편안함을 찾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 감당하기 힘든 시기였다.

학교 생활이 사회생활하는 것 같았다. 남 눈치보고 비위 맞춰줘야 되고,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어야 하며, 보고 싶지 않은,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핬던 사람이 잘 지내는 모습들을 봐야 한다. 괴씸하기도 하고 내 앞에 안 보였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여기는 이상세계가 아니니까. 한번 그런 안좋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시간이 조금 지났더라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내가 더 잘 지내야지, 싶다가도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수요일부터 벅참을 느끼다가 목요일쯤 되면 밤에 정신이 나가고 금요일이면 보통은 야자2교시가 되면 다음날 아침에 집 갈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3학년 1학기 때는 정기외박을 쓰지 않아 토요일 아침에 나갔다)

마음에 거센 파도가 일렁일 때 그 파도를 잔잔한 물결로 바꿔주는 존재가 있었다. 힘든 일이나 잊지 못할 일을 겪을지라도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이 있다는 걸 명심했다.

사람마다 특정 일을 감당하고 감내하는 방식이 다름을 느낀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를 신경써주고 위로해주려는 게 느껴졌다. 안아주는 것이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든. 공통적으로 그들이 하는 말은 빨리 잊으라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괜히 그런 게 에너지 쏟을 필요 없다. 좋은 에너지도 아니고. 잘 헤쳐나가라. 너답게.


그래 맞다. ‘나의 소중한 에너지를 그런 하찮은 사람에게 쏟지 말아야지. 그런 사람에게까지 굳이 잘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알아서 생각하라 해.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너무 걱정하지 말자. 현재, 지금 이 순간, 나의 존재에 충실하자. 난 그런 것 따위에 흔들리지 않아.’ 이렇게 생각했다.

하루라도 안 아픈 적이 없었고, 항상 어딘가가 아팠다.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럽거나, 속이 안 좋거나, 체해서 2주 동안 소화가 안되고, 배가 아프고, 팔다리에 힘이 없고, 피부가 따갑거나, 호흡이 안된다. 매일 어딘가가 아픈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나는 네가 그만 아팠으면 좋겠어.

여름이 다 되어갈 어느날, 하루종일 편두통이 심해서, 저녁을 먹고 밖에서 농구를 하고 땀에 잔뜩 젖은 채로 들어오는 남자애한테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에어컨 온도를 올려주었다. 더울텐데 나를 걱정해주고, 시계를 보더니 지금은 병원 문이 닫았겠다며 내일 수액이라도 맞고 오라고 했다. 너무 감동이었다.

“어, 쉬는시간 종 치고 나니까 반장이 생겼어!”

“응 아니야. 반장은 늘 우리 곁에 있었어.”

“아닌데. 8교시부터 없었는데,,”

8교시에 너무 아파서 결국 병원을 다녀왔다. 내가 돌아온 것을 반기는 건지 축하하는건지 한번이라도 더 웃게해줘서 고마웠다.



보기 싫고 두려운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 눈빛만 봐도 그 마음을 공유하는 사이. 곁에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미소지어지는 존재. 온몸에 힘이 안들어가고 기운이 쭉쭉 뻐져서 바닥에 드러누울 것 같다고 했더니 그정도냐고, 괜찮냐고 걱정했다. 피곤해서 어깨가 너무 뭉쳤다고 하니 바로 어깨 좀 주물러 주겠다고 하는 우리 부반장이다. 소화도 안돼서 스테이크였던 저녁도 못 먹었는데, 말차 빼빼로 1개와 안마에 컨디션 회복했던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야자 1교시에 고급물리 수업을 듣고 진짜 지쳐서 반에 문을 열었는데, 내 표정이 많이 안좋았나보다, 나보고 괜찮냐고 물었다. 사실 왜이렇게 표정이 썩어있냐고 말하려 했다고 뒤늦게 얘기했다. 힘든 하루였었다. 온몸에 힘이 없어서 앉아있지도 못하겠고, 호흡도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대화 덕분에 힘을 내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것 같다. 힘듦은 나누면 절반이 되는 게 맞는 것 같다.

좋은 것만 생각해! 무시할 건 무시하고, 그게 나를 지키는 일이야.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