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의 내신은 비교적 일찍 마무리된다. 중학교 내신을 마무리짓고 고등학교를 지원해야 하기 때문인데, 11월 쯤이면 고등학교 상담을 가기도 하고 여러 고등학교에서 홍보를 하러 중학교를 찾기도 한다. 중3들은 고등학교 입시 설명회를 여러군데 듣고 그 학교의 시설에 유혹되기도 하고, 각종 멘트에 혹하며 마음의 갈피를 못 잡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오래전부터 자신의 고등학교를 마음 깊숙이 정해놓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했고, 주변에서 그 학교를 간 선배가 되게 만족하고 있었고, 수시와 정시를 모두 챙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내가 가고자 했던 학교는 비평준화(일명 랜덤이 아닌) 학교로 지원하면 갈 수 있는 학교였다. 기숙사 학교여서 중학교 내신이 좋아야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중학교에서 담임선생님과 고등학교 진학 상담을 한창 하던 때에 내가 가고 싶은 C학교를 언급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찾아보기도 하고, 소문으로는 이 학교가 수학이 되게 어렵다고 했는데, 그 사실도 모두가 알고 있는 바였다. 담임선생님이 괜찮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무슨 자신감인지는 몰라도 괜찮을거라고, 그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내신시험 확인이 다 끝난 역사시간, 자유롭게 자습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역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는 내가 C학교를 간다고 하니 우리 학교에서 꽤나 공부 잘한다는 애를 언급하며 “OO이도 간다던데 괜찮겠어?”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 뭔가 밀리는 느낌과 나에 대해 잘도 모르면서 왜 그런 말을 하지? 라는 생각에 조금 화가 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었을 텐데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싫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되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회로가 넘쳐흐르고 있었을 떄다. 그 당시 나의 목표는 약대였다. 주변에서 그 직종을 만족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약대에 진학해서 의료봉사도 다니고 아픈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달해줄 수 있는 약사가 되고 싶었다. 그랬기에 내신 따기는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우선 생기부를 잘 써주고, 모의고사도 잘 챙겨서 최저도 잘 맞출 수 있는 C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두려움이 있었을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는 한창 고등학교 수학과 영어를 선행하느라 바빴다.
그렇게 겨울방학을 보내고, 기숙사 입소 날이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교복을 입고 캐리어와 이불가방, 그리고 샤워바구니까지 들고 떠났다. 고속도로를 타면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위치였다. 정신없이 짐을 챙겨 기숙사로 엄마랑 아빠랑 걸어들어가는데, 사감 선생님이 입구에 서 계셨고, 선배들이 우리의 방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나는 하나 밖에 없는 6인실에 걸렸다. 선배들 말로는 6인실이 가장 넓고 쾌적하다고 했다. 아직도 들어가서 펼쳐졌던 그 광경을 잊지 못한다. 어색함과 설레임이 공존했던 것 같은데, 보일러가 너무 세서 더웠던 기억이 강렬하다. 결국 창문을 열고 밤 공기를 마시며 옷장과 선반에 짐을 정리했다. 짐정리가 거의 끝났을 무렵, 선배들이 복도에서 꿀팁들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학교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들 말이다. 우르르 모여서 듣고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 끼는 것이 힘들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의 룸메이트는 나와 반이 전부 달랐다. 나중에는 이런 점이 다른 반 소식을 알 수 있는 장점이 되었지만 초반에는 우리반 친구가 없었기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하나의 요인이기도 했다. 서로 간식도 나눠먹고, 재미있게 이야기도 했다. 기숙사 입소 날 밤에는 자기 열람실 자리를 찾아 앉아 공부를 조금 하고, 사물함에 책도 넣었다. 그러다 갑자기 소강당으로 내려오라고 하셔서 따라갔더니 전통이라고 하며 장기자랑을 시키는 게 아닌가. 엄청난 충격이었다. 춤을 잘 추는 친구도 많았고. 노래를 잘하는 친구도 있었다. 선배들과 눈을 안 맞추고 있다가 그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이제 드디어 잘 시간이 다가왔다. 각자 침대에 누워 불을 끄고 있었는데, 방송이 들린다.
“자 12시다. 전체 방 소등하고 취침합니다”
(가본 적은 없지만) 군대인 줄 알았다. 잠이 오는지도 잘 모르겠었고, 정신이 없었다. 자라고 하니까 잘 수밖에 없었는데, 하루가 너무 길었기에 낯선 환경 때문에 조금 뒤척이다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많이 추울 줄 알았는데 보일러 덕분에 생각보다 따듯했다.
기상송이 나온다. 6시라는 뜻이다. 어찌나 빠르게 일어나 다들 준비를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놀랍다.(3학년 때는 50분에 점호인데 45분에 일어나는 일이 흔하다) 고등학교 첫 날 아침이 밝았다. 급식소가 어디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학교 중앙현관에서 선배들을 만나 줄을 서서 이동했다. 약간 어린이집 같지만, 급식소가 학교 밖에 있으면서 중학교와 같은 급식실을 썼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첫 날 아침밥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함박 스테이크에 김치, 밥, 국이었던 것 같은데, 별 다른 게 없었고, 입맛이 유독 없었기 때문에 너무 맛이 없어서 거의 다 버렸던 것 같다.
입학식 날은 등교가 늦다. 교실에는 기숙사생들만 남아 있었는데, 정말 말 한 마디 없이 어색했다. 나는 들고 간 책을 보고 있었고, 어떤 친구는 긴장 되는지 화장실과 교실을 왔다갔다하며 옷매무새를 다듬기를 반복했다.(이 모습이 너무 웃겨서 친해지고 난 다음에 많이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다) 이제 학생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너는 이름이 뭐야? 책을 좋아하나보네.”
나의 이름을 물어보는 극E(외향적)가 등장했다. 그는 나 말고도 앉아있는 모든 친구들의 이름을 다 물어보았다. 이제야 입학식 날이 실감났다고 해야 할까. 조금 뒤에 우리는 칼바람을 뚫고 강당으로 이동했다. 저 멀리 담임선생님이 보였고, 우리반 아이들로 둘러쌓여 입학식을 시작했다. 서로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어느 중학교였는지 묻는 것은 고정질문이었다. 너무 많은 이름이 한번에 들어와서 뇌에 과부하가 올 것 같았지만 나는 이름을 빨리 외우는 편이었다. 내 친구는 내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해 몇 번이고 고쳐 불렀다. 이제 우리반 애들 얼굴은 어느정도 파악을 한 것 같았다. 반에 올라오니 1년동안 잘 지내보자는 담임선생님의 편지와 안내 책자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한 명 한 명씩 나와 자기소개를 했고, 학교 탐방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K 고등학생 시절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