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첫날이 마무리되나 싶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야간 자율학습, 줄여서 야자라는 것이 있다. 우리 학교는 야자가 거의 강제였다.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들을 잡아놓고 공부시키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인터넷상으로만 접하던 야자를 처음 하니 신기하기도 했고, 얼떨떨했던 것 같다.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첫날은 비기숙사 친구들은 바로 집으로 귀가했고, 기숙사 친구들만 여기(여자 기숙사), 남기(남자 기숙사) 따로따로 각 반에 모여 앉아 조용히 공부를 시작했다. 조금 있으니 감독 선생님인 부장 선생님이 들어와서 우리 주변을 서성거렸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책을 펴고 있어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부하고 있는 척만 하고 있던 셈이다. 정확히 기억나는데, 어려운 내신용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갑자기 선생님이 문 앞에 앉아있는 여자애를 불러서 교무실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몇 분 가량 지났을까, 그 뒤에 친구가 불려 간다.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어서 조마조마했고, 무슨 말을 할지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순번이 되었고, 부장 선생님은 중학교 때 나의 내신을 듣고는 여기서는 잘하면 2점대 초반 정도 나올 거라 했다. 나는 약대를 꿈꾸었고, 약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내신 1점대를 받아야 했기에 2점대 초반 성적을 받을 거라는 선생님의 말이 탐탁지 않았다. 나의 가능성을 거기까지 밖에 보지 않는 것일까, 더 뛰어넘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나의 모의고사 등급을 물어보았고, 열심히 하라는 말을 건네며 마무리지었다. 나의 첫 상담이었다. 너무 무서웠다. 괜히 부장 선생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이 끝난 뒤, 교실에서 야자를 이어갔다. 그날은 머리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뭘 보고 있는지,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지 모르겠었다. 그 긴 시간 동안 한 문제는 제대로 풀긴 했겠지만 처음 보는 친구들과 낯선 공간에서 긴장하고 있느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직도 첫날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많이 놀라울 것이다. 이제 기숙사로 이동해서 샤워 시간이 시작되었다. 사감선생님의 지시 아래 우리 학년은 30분 내로 샤워를 마무리해야 했다. 샤워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도 되지 않았고, 사람이 너무 몰려서 ‘다음날 아침에 씻을까?’까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사감선생님께서 6인실로 오시더니 너희는 3층 작은 샤워실에서 씻으라고 하셨다. 그게 그곳에서 씻는 나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샤워였다. 그 뒤로는 너무 좁아서 거기서 씻은 적이 없다. 옷을 선반에 두는 것이 아니라 벽에 거는 구조였는데, 속옷과 잠옷이 다 흘러내리고 바닥에 떨어져 물에 젖었고, 너무 추웠고, 특히나 비좁았다. 그렇게 우리끼리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며 이야기를 하다가
“점호 시작하겠습니다. 내려오세요.”
방송이 들려 후다닥 내려가 열람실에 앉았다. 야자 3교시가 시작되었다. 정말 조용했다. 초반이라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일단 책을 펴고 나름의 공부를 시작했다. 사감선생님이 돌아다녔다. 우리가 아이패드로 딴짓을 하지는 않는지, 와이파이가 잡혀있지는 않은지 불시에 검사를 하기도 했고, 대체로는 그냥 지나가셨다. 컴퓨터실에서 유튜브를 보는 아이들을 혼내고 아직 정신을 못 차렸냐며 벌점을 주기도 했다.
우리는 벌점 제도가 있다. 점호에 지각을 하거나 방이 너무 더럽거나, 타방 이동을 하거나, 라면을 먹거나, 밤 12시 점호를 했는데 자지 않고 소곤소곤 거리는 등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시 벌점을 부여하는데, 벌점이 쌓이면 단기 퇴소가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했다. 추가로, 다음날에 담임선생님께 혼날 것이라는 마음의 준비도 해야 했다. 나는 굉장히 간이 작기 때문에 누가 우리 방에 들어와 있으면 사감선생님이 방문을 열까봐 조마조마했다.(타방을 한 친구가 있다면 그 방 전체가 벌점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벌점을 하나도 받지 않았다.
드디어 둘째 날. 이제는 완전한 정상일과의 시작이다. 수업을 하는데, 수업을 안 했다. 그러니까, 거의 모든 시간이 OT였다. 오리엔테이션도 수업의 일종이긴 하다만, 비교적 널널한 수업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이라 함은 일 년 동안 수업을 어떻게 할 건지 이런 걸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것도 있었지만 80%는 잔소리였다. 한 두교시를 들을 때는 괜찮았다. 덕분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기도 했고, 내가 이 학교에 왜 오게 됐는지, 엄마가 해주는 따듯한 밥과 주변에 친한 친구들을 다 포기하고 이 외진 곳에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 초심을 굳건하게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그게 하루 종일 그 얘기였다. 사람만 바뀔 뿐. 모두가 중학교와는 다르다, 고등학교 때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뉘앙스의 말들을 50분 내도록 지속했다. 점점 영혼이 탈탈 털리는 느낌이었다. 신학기부터 아이들을 꽉 잡아놓는 게 느껴졌다. 다른 애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고 했는데, 나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들으면 나의 마음속으로 바로 박힌다고 해야 할까.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다음날에도 반복되었고, 각 선생님들의 성향을 조금씩 파악해 갔다. 담임선생님 시간에는 유독 잔소리가 더 많았다. 다 우리를 위해서 그러시는 거겠지, 생각했다. 그때 그 잔소리 덕분이었을까, 1학년은 내가 최고로 열심히 공부했던 해이다.
4교시 종료종이 울리고, 우리 반 친구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하늘이 굉장히 맑고 날씨가 좋았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에 왜 학교에 갇혀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급식소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우리는 1학년이었기 때문에 선배들이 먼저 들어가고 3학년 선배들이 나오면 우리가 그 빈자리에 앉는 시스템이었기에 많이 기다렸다. 우리 학년이 유독 빨리 갔는지 매번 늦게 오라고, 35분에 교실에서 출발하라고 혼이 났다. 그때만 해도 가림막이 있었다. 코로나 시절이었으니까. 지금은 가림막이 어색하지만 그때는 뻥 뚫린 급식소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고, 마스크를 권장하던 때였다. 나의 얼굴을 보려고 내가 마스크를 내리고 물을 마실 때 내 얼굴을 보던 아이가 있었다. 참,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옛날 일이다.
우리 반 친구들과 함께하는 첫 번째 야자시간이었다. 야자가 필수이긴 해도 학원을 가야 한다는 애들이 있어서 그 친구들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 비어있는 자리가 어찌나 부럽던지. 우리 반 선생님 역시 학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며 매번 강조하셨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학원은 주말에 가라며 평일 학원을 조정하라고 당부했다. 야자 감독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출석체크를 하셨다. 왠지 모르게 긴장되었고, 이어서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 1번을 불러 데리고 가셨다. 어김없이 찾아온 상담 시간이다. 나는 앞번호에 속해서 나도 상담을 했다. 우리 반 선생님께서는 부장 선생님께 내가 경시대회에 입상했다며 우리 반의 엘리트라고 자랑했고, 부장 선생님은 나보고 동글동글하니 공부 잘하게 생겼다고 말씀하셨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우리 학교는 입학 전, 수능 전 주 주말에 영.수 경시대회를 했다. 나는 11등으로 입상을 했고, 정말 공부 잘하는 애들이 많음을 느꼈었다. 영어 듣기가 굉장히 빨랐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해서 이 학교에 입학해서도 내가 꾸준히 공부한다면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긴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내가 제일 우리 반에서 긴장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뭐가 그렇게 긴장이 되냐고 물었는데,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해피하고 프리한 선생님이었다. 나는 당연히 사람들과 공간, 이 모든 것이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는지 모르겠었고, 선생님은 긴장을 풀라고 했다. 그 방법이 무엇일지 알지 못해 일주일을 그렇게 바짝 긴장하며 지냈던 것 같다.
주변을 돌아보면 다른 친구들은 긴장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우리 반에 특히나 여유로운 친구 D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D에게 대학생 같다고 했다. 내가 봐도 그랬다. D를 보면 나도 잠시나마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 너무 재밌었고, 잘 웃어줘서 행복해졌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