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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퀸 Feb 15. 2024

13 나는 승무원이다. 드디어 첫 비행

그렇게도 기다렸던 순간

"이건 아니다."






트레이닝 막바지에 스케쥴 표가 나왔다. 동기들과 스케쥴을 모두 공유했다. 나만 인천 비행(한국 비행)이 2번이나 있었고 동기비행도 있었다. 모두가 부러워했다. 우리회사는 팀비행이 아니다. 매일 일하는 사람이 바뀐다. 매번 새로운 동료들과 일하기 때문에 친한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첫 비행에 동기가 있다니 마음이 너무 든든했다.



모두가 말했다. "Qatar loves her." ("카타르는 그녀를 사랑한다.")

카타르는 내 편 같았다. 뭐지? 나 잠깐 일하고 가려고 했는데. 오래 일하라고 이러나. 회사에게 고마웠다.



나의 첫 비행은 파키스탄 라홀. 첫 비행. 설레기도 떨리기도 두렵기도 오만가지 감정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겁 먹은 삐약이. 딱 신입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새벽 비행이라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야 되는 것. 그래서 대낮에 암막 커튼 치고 잠자리에 든다는 것. 오후에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심장이 콩콩콩- 두려웠다. 실감이 났다. 이게 승무원 생활이구나. 나 이제 적응해야되는구나.



그런데 갑자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스케쥴이 바꼈단다. 든든했던 동기비행은 무산됐고, 나는 혼자 첫 비행을 가야했다. 와 정말 예상불가다. 실감이 났다. 그렇게 나의 첫 비행은 오만 무스카트.


"이게 승무원 생활이구나."



비행 전에는 모두 브리핑 룸에 모여,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그날 비행에 대한 브리핑을 한다. 여기서 사무장, 부사무장 크루가 세이프티와 퍼스트에이드(안전과 응급처치)에 대한 질문을 한다. 항상 숙지하도록 하는 회사의 시스템이다. 여기서 대답을 못하면 비행을 못나간다. 그리고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런 일은 거의 없지만 아예 없지도 않기 때문에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서 처음엔 모두들 주로 어떤 질문이 나왔는지 서로 알아내서 전해주기 바빴다. 비행 전에는 항상 미친듯이 비행공부를 해야했다.



첫 비행은 교육비행이라 돈이 나오는 비행도 아니다. 말 그대로 첫 비행이기 때문에 선배 크루들은 나같은 삐약이들에게 크게 기대하는 것도 없다. 그저 실수없이 피해만 주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기장님들과 크루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내가 혹시 실수하더라도 잘 봐달라는 예쁜 마음을 담았다고 할까. 어떤걸 줄까 고민하다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식량 중에서도 그들의 잠을 깨워 줄 한국 봉지커피를 준비했다. 종이에 그들의 이름을 다 적어 커피에 하나씩 다 붙였다. 줄 생각에 너무 설레었다.



드디어 디데이. 캄캄한 밤. 남들은 다 자는데 나는 출근을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아침을 맞이한 가족들과 친구들의 응원을 받고 출발했다. 정말이지 두려웠다. 회사버스를 타고 가면서 캄캄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제 시작이구나. 나 이제 진짜 승무원이구나. 그렇게 바랬던 소중한 내 꿈. 기분이 이상했다. 이게 내가 바라던 내 모습인가? 피곤하고 잠은 오고 떨리고 알 수 없는 마음이 들었다. 한 친구는 평소에 밝고 씩씩한 친구인데도 첫 비행이 떨리고 무서워서 울면서 연락이 왔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이론으로만 배운 것들을 실전에 바로 투입이 돼서 일한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거의 해탈한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싣고 생각 정리를 했다.



"뭐. 실수하면 하라지. 지금 실수해야지. 언제 하겠어. 배째. 안 죽는다."

"배째. 안죽는다."

"배째. 안죽는다."

중얼거리며 이 한마디에 큰 의지를 하고 브리핑 룸 입성.



두근두근. 자기소개 시작.

"안녕. 내 이름은 현진이야. 한국에서 왔고. 편하게 진이라고 불러. 나 오늘 첫 비행이야. 그래서 좀 서투를거야. 언제든 피드백 줘. 나 무슨 말이든 들을 준비가 돼있어. 최선을 다할게. 고마워."



첫비행이라고 하니 다들 '나도 저런 적이 있었지' 하는 듯 귀엽게 본다. 오케이. 자기소개 좋았어. 그 다음. 질문 차례다. 나는 어떤 질문을 받을까?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다행히 대답도 잘했다. 오케이. 좋았어. 여기 오고 나서부터는 당장 앞에 것만 생각하고 하나씩 쳐내기로 했다.



다음은 내가 준비한 선물! 봉지커피에 적어놓은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나눠줬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Ohhhhh~ so sweet!!!"

안그래도 삐약이라 귀여웠는데 더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봤다. 나는 표현을 잘 하는 편인데, 외국 친구들도 표현을 잘하니 티키타카가 되는 이런 결이 잘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은 것에도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그 눈빛을 보며 참 순수하다고 느꼈다.



이제 비행이다. 진짜 승무원의 일을 할 시간.

전부 오늘 처음보는 크루들이지만 회사의 빡센 트레이닝의 이유를 알았다. 모두가 처음보지만 시스템은 똑같기 때문에 각자의 포지션에서 척척- 움직였다. 비행 전 체크해야 할 안전장비들, 갯수 등 그리고 카트 위에 이 음료는 여기 둬야하고, 저 음료는 저기 둬야하는 위치까지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뭐 하나 어긋나는 게 없었다. 나는 카페와 꽃집을 운영하면서 이런 것에 관심이 많았다.

"이것이 메뉴얼이구나."



이륙해서 비행기가 어느정도 올라가면 크루들이 서비스 할 준비를 한다. 이때 비행기가 올라가는 중이라 마치 마이클잭슨처럼 기우뚱하고 어정쩡하게 선 상태로 옷도 갈아입고, 구두도 갈아신어야 했다. '꼭 이때 옷 갈아입어야 해? 좀 더 올라가서 똑바로 설 수 있을 때 옷 좀 갈아입으면 안되나?' 귀여운 현타가 왔다. 그전에는 모자도 벗어야 했다. 모자를 벗는 이 타이밍이 처음에는 헷갈려서 크루들 하는 것을 보고 얼른 벗고 쓰고 하기 바빴다. 이런 세세한 것들은 실전에 투입돼서 경험해봐야 했다.



서비스 시작. 카트끌기 시작.

비행기가 올라가고 있는 중이였어서 카트 끌기가 상당히 무겁고 힘들었다. 거의 비스듬히 앞으로 숙여 온 몸의 힘으로 카트를 밀었다. 카트끌며 우아한 모습을 상상했다면 NO. 모든 것에는 체력이 요구됐다.



그리고 손님들 한분한분께 서비스했다. 손님들은 대부분 친절했다. 내가 첫 비행인 걸 아는걸까? 제일 처음 서비스했던 그 손님의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스윗했던 손님과는 별개로 먹은 것들을 치우며 두번째 현타가 왔다. 그 외 많은 프로세스들을 짧은 시간 안에 해내야했다. 빠르지만 정확하게 움직여야했다.



첫 비행에서 만난 크루들, 손님들은 굉장히 나이스했다. 다시 돌아오는 비행에서는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긴장이 풀리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후~ 나 첫 비행 무사히 끝났구나. 여기까지 참 힘들게 왔구나. 이 삶이 한국의 모든 것들과 맞바꾼 지금의 삶이구나. 그런데 나. 여기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이 일을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까. 이 일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이 들었다.



첫비행 소감. 솔직히 말하면.

"이건 아니다."



이 5글자가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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