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예수의 제자란 점을 세 번 부인했다면, 나는 인생 내내 내가 가진 작가의 꿈을 허황된 것이라 치부하며 셀 수 없이 부인해왔다.
왜 그랬을까?
높은 이상과 그렇지 못한 현실과의 괴리감은 늘 나를 우울하고 좌절하게 만들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감히 내가 작가를?’이란 생각이 앞서 누군가에게 ‘너의 꿈은 뭐니?’란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다른 직업을 둘러대기에 급급했었다.
왜 그랬을까?
부족한 노력과 자신감 그리고 열등감은 나를 위축시켰다. 빛나는 작품을 읽으며 나는 나의 재능 탓을 했고 비겁하게 도망쳤었다.
왜 그랬을까?
나에게 글쓰기란 치유이자 미래이자 희망이었다. 그리고 첫사랑 같았다. 처음이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풋내기처럼 굴었다. 사랑을 고백했다 거절당하면 내가 부서질까 두려워 그 마음을 홀로 삭혀버렸었다. 그렇게 글쓰기와 멀어져 갔다. 내 길이 아니라고, 몽상이자 동경이라 치부하며, 나는 나의 소중한 첫사랑을 지워보려 노력했다.
왜 그랬을까?
암담한 현실, 불확실한 미래를 밝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돈이다. 나는 글로 돈을 벌지 못했다. 내 상황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다. 돈을 벌게 해주는 수단이 내 적성에 맞든 맞지 않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했고 긴 세월에 걸쳐 나의 영혼은 시들어갔다.
언젠간 좋은 글을 내보이겠다는 희망은 죽어가는 나의 삶의 산소 호흡기와도 같았다. ‘글을 쓰리라.’ 그 마음으로 울고 싶은 아침을 깨우고 죽고 싶은 밤을 청했다. 그러나 글을 써보기도 전 나의 삶은 코마 상태에 빠졌다.
살고 싶었다. 결국 10년 만에 일을 손에서 놓았다. 이직 대신 퇴직을 선택하고 제주에서 1년 살기를 하면서 나는 변했다. 서울의 바쁜 삶 속에서 지웠던 나를 찾고 돌아보는 시간을 제주에서 가졌다. 충분하진 않았지만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며 나는 내 삶을 되살리고 있다.
1년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바쁜 삶으로 돌아왔다. 1년 전과 달라진 점은 이젠 내 꿈을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한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공감해주고 칭찬해주며 내 글을 기다린다고 해주는 사람들. 그들에게 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