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에 열린 감귤

제주 하면 떠오르는 사진

by 진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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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shin8955/222182266988


나는 다양한 색채를 가지고 있고, 깊고도 높다. 나의 깊음은 모두를 품을 만큼 깊고, 나의 높음은 모두를 굽어 살필 만큼 높다. 나는 하나이자 무한이며 전부이자 유일함이다. 나는 태곳적에 태어났고 끝없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유한한 존재들은 나를 신으로 믿고 섬겨왔다.


나의 몸은 다양한 색채의 땅이고, 푸르른 물이며, 나의 머리는 땅을 딛고 날아오를 수 있는 존재들을 위한 터전이다. 나는 팔다리를 휘저어 공기를 흐트러뜨리고 물길을 일깨운다. 때론 눈물을 흘리고 거세게 화를 내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유한한 존재들은 비와 번개와 천둥, 지진 등 나의 행동에 저마다의 이름을 붙였다.


유한한 존재들은 나를 자연이라 정의하고 내 몸 구석구석에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줬다. 나는 그 이름들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유한과 무한은 그 특성상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나의 몸에 이름을 붙여준 것은 애칭이라 여겼다.


나에겐 아주 작은 점이 여럿 있는데, 너희들은 그 점들 중 하나에게 탐라란 이름을 붙여줬다. 너희들의 생명력이 다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짐에 따라 나의 몸에 대한 호칭은 바뀌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너희들이 나에게 가지는 사랑은 바뀌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탐라가 생겼을 때가 기억이 난다. 나는 내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열기와 뒤틀림에 아파했었다. 피부를 가르고 분출하는 뜨거움을 식히기 위해 나는 몸을 흔들어 파도를 일깨웠다. 수 천, 수 만 번, 아니, 셀 수도 없이 많은 노력 끝에 뜨거움은 가라앉고 끌어 오르던 열기는 파도에 식어 딱지가 되었다. 그리고 딱지들이 모여 점이 되었다. 그 까만 딱지를 너희들은 현무암이라 불렀다.


푸른 바다를 바탕으로 너는 현무암을 딛고 서있다. 너는 나의 점처럼 까만, 질긴 고무 옷을 온몸에 두른 채 초록색 망태기와 주황색 테왁을 어깨에 짊어졌다. 너의 모습은 아주 멋지다. 너의 주홍빛 테왁과 나의 파란 몸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너는 현무암을 딛고 선 주홍빛 점이자 푸른 바다에 열린 감귤이다.


너는 무서운 줄 모르고 과감하게 내 품으로 뛰어든다. 너는 숨을 멈추고 나에게 너의 몸을 맡긴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가 된다. 주황색 테왁이 내 발치에서 넘실거릴 때면 나는 간지럼을 느낀다. 너는 잠시 숨을 참고 죽음으로 들어간다. 너의 죽음은 새로운 세상을 연다. 나는 너의 죽음을 대가로 땅만 딛고 사는 존재는 직접 손에 쥐지 못할 보물을 안겨준다.


너의 굽은 등은 네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말해주는 것 같다. 깊은 고랑처럼 패인 너의 얼굴과 현무암을 닮은 까만 피부는 내가 빚어낸 모습 이리라. 너는 고단함을 어깨에 이고 나에게서 집으로 돌아간다. 내가 깊은 곳에서 품어낸 아이들로 너는 먹고 산다. 나는 너에게 내 생명력을 나눈 아이들을 아낌없이 베푼다.


네가 뱉어내는 숨비소리는 삶에 대한 아우성이자 강한 생명력의 증거이다. 그렇기에 너와 나는 닮았다. 우린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유한한 존재들이 탐라를 설명할 때 나와 너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탐라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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