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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령

사람마다 마음에 뚫린 구멍의 깊이와 크기가 다 다르다. 우리는 그 구멍을 외로움이라 부른다. 인간은 누구나 본연의 외로움이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느끼는 외로움의 크기도 다 다르다.


나는 내가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외로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자만이라는 것을 제주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되어 깨달았다. 나는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던 것이지 외로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전엔 많은 식구들과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면서 친구들이 늘 주변에 있었고 남자 친구도 있었다. 남자 친구가 없을 때에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혼자 무언가를 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많은 일들을 혼자서도 잘했었다. 혼자 여행도 다니고 맛집도 다니고, 카페니 전시니 연극이니 문화 예술적으로 충만한 삶을 즐기기 바빴다. 서울은, 아니 육지는 혼자서도 할 거리, 볼거리가 많았다.


제주는 차가 없으면 다니기가 매우 불편하다. 면허는 있으나 초보운전자고 자차가 없는 나는 육지에서처럼 편하게 여기저기를 쏘다닐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일에 치여 마음의 여유라곤 찾을 수 없는지라 그만 발이 묶여버렸다.


정신없이 한 주를 살다 잠깐 숨 돌릴 여유가 생기면 생경한 감정이 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향수병을 의심했다. 10년을 살던 집 근처 횟집의 회 맛이 그립고 경복궁과 삼청동이 그리웠다. 심지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나를 어디든 데려다주던 서울의 끝내주는 대중교통 시스템까지 그리워졌다. 주변에 하소연을 하니 향수병까진 아니고 ‘불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럼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무얼까 들여다보니 그 감정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그간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알아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주던 사랑은 내 마음의 구멍을 메우기에 충분했다. 나 스스로도 나를 놀아주며 외로움을 채워나갔기에 살면서 외로움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제주 반대편에, 동생들과 친구들은 모두 육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이 상황에서 나는 직접적인 부대낌 없이 내 마음의 구멍을 채워야 했다.


대신 가족과 친구들 같은 동기들이 많이 생겼다. 그들과 기간은 짧지만 농도는 깊은, 물리적으로 긴 시간을 보내면서 외로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리고 애초에 일이 너무 바빠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이 많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내 집에 방문했던 가족들이 떠나자 헛헛한 감정이 파도치듯 밀려왔다. 가족들의 사랑이 더 필요한가? 다시 같이 살아야 하나?


생각을 멈추고 조용히 홀로 감정을 되짚어보니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 사랑과 관심은 이미 충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느끼는 이 외로움은 누군가가 채워줄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이었다. 아주 당연히 존재하는 감정. 내가 감지하지 못했던 또 다른 나 그 자체였다.


외로움 하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20대 초반을 불태우며 열렬히 사랑했던 전 남자 친구였다. 그의 마음의 구멍은 너무나도 깊고도 컸다. 그는 나를 쥐어 짜내 그의 구멍을 채우고 나를 욱여넣어 외로움을 메우려 했다. 그에게 나는 말했다. 너의 외로움은 사람이 채워줄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니 나를 착즙 하지 말고 차라리 신을 믿으라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상처가 될 말이었다는 것을 안다. 변명하자면 나는 그 외로움의 시커먼 동굴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10년이 지나서야 그의 외로움은 나의 외로움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선천적으로 심장에 문제가 있었는데, 동맥관이 개존 된 채 태어났다. 쉽게 말하자면 폐동맥과 대동맥을 연결하는 혈관인 동맥관의 통로가 닫히지 않아 수술을 필요로 했었다. 의사는 아주 간단한 수술이라며 걱정하지 말라 했다고 한다. 그 간단한 수술처럼 나의 외로움을 간단하게 막아버릴 수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투정 섞인 글을 적어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외로움은 사람이 채워줄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이란 것을. 까맣게 텅 빈 하트가 꽉 차 하얗게 될 그날이 과연 올까? 누가 나의 외로움을 메워줄까? 신이 나를 구원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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