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당신이 보고파질 때

by 진이령

문득 당신이 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런 날이 올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오늘처럼 당신과 닮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면 갈무리해뒀던 기억 속의 당신의 모습이 되살아납니다.


당신께선 제가 남자가 아님에도, 고모의 딸인 사촌 언니가 있음에도 저를 '장손'으로 여기셨지요.

큰 아들의 첫 아이란 이유만으로요.


늘 '너는 무슨 가문의 무슨 파 몇 대손이다.' 라며 어릴 적부터 일깨워 주시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속으로 족보를 산 건 아닌지 의심하곤 했습니다.

못 돼먹었죠.


나는 당신과 친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선 부단히도 나를 아껴하셨으나 저는 그 내리사랑이 부담스러웠을 뿐이었죠.


늘 당신은 저와의 통화를 바라고 한 번 수화기를 잡으면 쉬지 않고 기도해주셨습니다.

영혼 없는 아멘- 소리를 내며 저는 그 기도의 무게를 덜고자 노력했습니다.


당신은 늘 주변의 채근에 아쉽게 전화를 끊곤 하셨지요.

그것 마저도 제가 성인이 되어 부모님과도 데면데면하게 굴던 시기엔 아예 할 수 없으셨지요.


저는 당신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당신이 사랑을 쏟아붓고 당신의 꿈과 희망을 저에게 투영하는 것이 너무나 버거웠나 봅니다.


아, 모르시죠?

저는 당신이 주신 이름을 버렸습니다.

제겐 너무나 부담스러운, 감당하기 힘든 이름이었거든요.


임종 때, 당신의 귓가에 당신이 지어준 이름을 대며 임종을 지키러 왔노라 말했었습니다.

사실은 이미 그 이름은 제 것이 아니었지만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죽어서도 제일 마지막까지 지속되는 감각은 청각이라고.

당신께선 몇 번의 고비를 넘기시면서 버티셨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내려오는 손녀들을 기다리시다, 끝끝내 당신이 지어준 이름을 듣고서야 소천하셨습니다.


발인과 화장과 수목장까지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저는 그리 많이 울진 않았습니다.

모두들 호상이라 했고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아, 염을 마치고 관에 뉘어진 당신 얼굴에 미소가 잊히지 않습니다.

여태껏 제가 본 죽음 중 얼굴에 미소가 있는 분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당신의 그 인자한 미소를 보고 나서야 알 수 없는 이유로 오열했던 기억이 이제야 떠오릅니다.


길을 걷는데 당신과 비슷한 뒷모습을 봤습니다.

문득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아.. 나도 할아버지가 계셨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한 참을 그 뒷모습을 바라봤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미소가 떠올라 눈물이 고였습니다.


왜 나는 당신을 밀어내려 애를 썼을까요?


이제야 후회하며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믿으시던 천국에 계시겠죠?

꼭 천국이 있기를, 그곳에서 평안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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