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드매니저Y Dec 10. 2021

에이, 아저씨~~~ 이렇게요?

야구소년의 새로운 경험

2017년

그 해에는 유독 즐거울 일이 많았다. 


아들 셋 엄마로 산지도 어느덧 4년.

새 집으로의 이사

넓어진 집이 좋았고, 도보거리에 호수공원이 있어서 좋았다. 신혼 때 모처에 있는 호수공원을 걸으면서 나중에 이런 데서 살면 좋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사한 집이 야구장에서 더 멀어지기는 했지만 관계자분들 중에 퇴근하는 길에 라이딩이 가능한 위치라 크게 염려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아이는 사회인 야구하시는 아저씨들 틈에서 또 다른 재미를 느끼는 듯했다. 


철없는 아이가 행여나 버릇없이 굴지는 않을는지

눈치 없는 행동으로 귀찮게 하는 건 아닐지

매번 부모가 동행하지 못하니 아이의 태도가 궁금하긴 했지만 아이를 믿고 무관심한 척했다. 


아이는 춥고 더운 운동장 흙바닥에서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하며 집에 갈 시간을 기다렸고

맛있는 간식을 주면 넙죽넙죽 잘 받아먹으며 야구장 지킴이가 되어있었다. 


아이의 꿈이 자라는 중입니다.
어떤 꿈이 자라는 중일까?



"어머님 00 데리고 오디션 다녀올게요. 걱정 말고 계세요. 저녁 먹여서 들여보낼게요"


뭐라고요? 광고 오디션이라고요?

모 회사의 음료 광고 콘셉트가 야구였고, 그래서 야구하는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들 앞모습, 옆모습 사진과 야구공 송구하는 동영상을 미리 광고회사로 보낸 상태였고 그중 2명이 궁금하니 카메라 테스트에 데려가야 한다는 거다. 현장에는 모델 에이전시에서 추천하는 아역 배우 출신도 있을 거라고 했다. 


"어허허허... 어쩜 그리 능청스럽게 하던지요. 콘티에 있는 대사와 동작을 하나도 떨지 않고 하더라고요."

"아마 00 이가 될 것 같아요. 어허허허허...."


어머나 이게 웬일...

야구하라고 야구장에 보내 놨더니 광고 모델을 꿈꾸게 되었다는 이야기 ㅋ ㅋ ㅋ (엄마의 심한 착각) 

같이 오디션을 보러 갔던 아이는 예쁘장한 외모에, 야구를 하기도 했고, 그 아이의 어머님은 과거에 길거리 캐스팅을 바라던 때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쁘장한 외모보다 야구하는 현실형 얼굴이 더 필요했었나 보다.


야구단 아이들, 그리고 오디션 봤던 아이들 모두 함께 하는 촬영이라 했기에 뭐 대사 하나 있다고 해서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았다. 


메이크업 누나와 촬영감독님의 시범

30초짜리 광고 하나를 위해 정말 12시간 꼬박 촬영과 대기를 반복하는 하루를 경험해보니 보통일이 아니다.

심지어 함께 촬영하는 연예인이 무려 배우 김수로 씨와, 김민종 씨여서 그런지 오랜만의 둘의 케미를 취재하기 위한 다른 방송사의 인터뷰까지 흥미로운 경험을 해본다. 덕분에 연예가 중계에 잠시 출연하게 되는 경험까지 하게 된 어린이....


연예인들의 스케줄을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두 배우의 촬영 휴식시간이 아이들 촬영 시간이 된다. 

드디어 한마디 대사가 있는 우리 집 어린이의 촬영 순서라고 하자 갑자기 스텝들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어? 이게 뭐야?

이 레일은 뭐지?

스태프들은 또 왜 이리 많아?

김배우들 기다리는데 저 아이가 실수해서 길어지면 감독이 짜증을 내면 어쩌지?


드라마 속에서 본, 연기 못하는 배우에게 짜증 내는 감독들의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에 적잖이 당황했고, 너무 긴장을 한 모습이 티가 났는지 조감독 즈음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저희 감독님 무섭지 않으니 걱정 마시라고 한다. 


당황케 했던 촬영현장


14시간 동안 대기하느라 힘은 들었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15초도 안 되는 분량의 촬영을 위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에너지가 쓰이고 있음을 눈으로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떨지 않더라...

감독님의 요구사항을 이해는 할까 싶었는데 요구하는대로 던지고, 자세를 바꾸고, 말의 높낮이를 바꾼다

바라보는 엄마는 "다시!!"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쿵쿵거리는데 졸지 않더라.

엄빠에게는 없는 능청스러움과 대범함을 가진 우리 집 어린이의 대담한 모습이 신기했다. 

 

TV 화면, 영화관 스크린에서 아주 가끔이지만 아이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한동안은 뿌듯하기도 했으며, 양가 어른들에게는 큰 자랑거리로 남을 일이 되었다. 

광고비를 얼마 받았느냐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이런 경험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했기에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

좋아하는 일을 꿈꾸고 있다는 것

좋아하는 일로 인해 색다른 경험을 해본다는 것

좋아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진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스스로를 빛나게 만들고 있었다.


유치하게도 아이가 참 부러웠다. 

너의 어린 시절은 나의 그때와 무엇이 다른 거니? 

나의 욕심과 바람은 늘 어느 기준에 미치지 못해 자신감이 바닥을 쳤던 기억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아이 스스로 찾기를 바랐다. 그 만족의 기준 역시 아이 스스로 정하기를 바란다. 


아이가 가는 야구 인생에 이 기록들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유턴을 해도 괜찮다.

너에게 이런 좋은 기억을 만들어준 많은 사람들처럼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


너의 행복 야구를 언제나 응원해^^

매거진의 이전글 플레이 볼_Play ball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