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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Feb 11. 2022

내 사랑 아디오나

호주에서 유아교사로 일하며 얻은 결론은 유치원은 작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처음 실습을 시작했던 유치원은 제법 규모가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대략 90명 정도 되었고, 각 반마다 25명 정도씩 그룹 지어져 있다 보니 레이시오(선생님:아이들 수)가 거의 딱 맞춰서 들어가게 되었다. 그로 인해 매일이 전쟁이었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소홀해지는 부분이 생겼다. 큰 유치원일수록 더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실습하는 기간 내내 너무 힘들었고 지쳤으며 직업에 대한 회의감마저 느꼈다. 실습을 채 마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만난 두 번째 유치원은 그야말로 사랑이었다. 유치원이 동네 집들 사이에 쏙 숨어 있어서 사실 몇 번을 지나다니면서도 그곳에 유치원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입구도 크지 않고 유치원 자체도 집을 개조한 곳이어서 그런지 그냥 가정집처럼 보였다. 나는 이곳에서 실습을 할 수 있냐고 물으러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작고 아담했고 아기자기했다. 예뻤다. 그날 유치원 원장의 확답을 듣고는 신이 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몇 개월을 머물며 실습을 하였는데 그 기간이 참 좋았다. 


실습을 마치고 무사히 유치원 교사 자격증 하나를 얻었다. 일을 바로 시작하고 싶었는데 아디오나는 빈자리가 없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이곳에서 일 한지 오랜 되신 분 들이었고 향후에 이곳을 그만둘 계획도 전혀 없는 분들이셨다. 그럴 법했다. 나라도 나갈 것 같지 않았다. 원장은 나에게 비정규직으로라도 나오라고 해서 몇 번을 땜방교사로 일했다. 하지만 나는 정규직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에 있는 유치원에서 교사를 모집중이었 던 것이다.


그렇게 아디오나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그토록 원하던 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좋았다 처음에는. 그냥 무언가 된 것 같은 느낌과 안정감마저 들었다. 이제는 뜨내기가 아니니까. 그런데 이 유치원은 내가 처음에 실습했던 곳과 같은 엄청 큰 유치원이었고, 아이들도 80명이 넘게 있었다. 우리 반은 매일 3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왔다. 선생님들은 매일이 부족해서 쉬는 시간 갖는 것조차 어려웠고, 점심시간은 30분밖에 안 되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매일이 그랬다. 


일을 시작한 지 6 개월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마음도 몸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아디오나가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뽑아 주기만 한다면 내일이라도 갈 마음이었다. 아디오나 원장에게 바로 개인적인 문자라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혹시나 부담스러울까 하는 마음에 이력서를 구인 사이트를 통해 업로드했다. 그리고 자기소개 말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아디오나에서의 행복했던 추억들에 대해 조금 글로 남겨보았다. 그날 저녁 나는 바로 메일을 받았다. 



다음날 나는 일을 마치고 바로 아디오나로 갔다. 원장도 다른 교사들도 모두 그대로였고 너무도 기쁘게 나를 반겨주었다. 정말 친정집에 온 느낌이 이런 건가 싶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지금 일하고 있는 유치원 원장에게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원장이 무척 아쉬워했다. 예의일 수도 있고 진짜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고마운 것도 많았다. 내가 집 근처 작은 곳을 찾고 싶다고 말하며 그전에 실습했던 센터 원장에게 자리가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미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났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러자 지금 원장은 나에게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유치원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내 딸아이가 다니는 사립 초등학교 안에 있는 유치원 원장을 알고 있다며 알아봐 준다는 것이다. 고마웠다 정말. 하지만 나는 아디오나에서 연락이 안 오면 그때 소개를 해달라며 너무 감사하다고 사양하였다. 왜인지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현재 일하는 유치원은 너무 커서 몸이 힘들었지만 교사 간 관계는 참 좋았다. 같은 반 교사들끼리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고, 유치원 회의 때에는 내 딸아이를 데려가기도 했다 (보통 회의가 저녁에 있다). 그만큼 가족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단지, 너무 아이들이 많고 그로 인한 육체적 피로감이 좀 높았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던 것이다. 막상 그만둔다 생각하니 개운한 느낌과 아쉬움이 동시에 들었다. 


호주 유아교사로 일 하며 느낀 것은 교사들이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건 변함없는 룰이다. 아무리 교사 간 친목도가 높다고 해도 일의 스트레스 강도가 너무 높으면 그 피로감이 아이들에게 전가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방심하거나 무관심해지는 순간 유아교사의 자질에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게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이 커서 얼마나 유치원 때를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선생님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몇 명이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행복하고 신났던 그 기분을 남겨주고 싶다. 그 기분이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긍정적인 지지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기다려 아디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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