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남는 것
信(믿음)에 대하여
-말보다 남는 것
종교적인 믿음을 제외하고 동양 철학에서
‘믿을 신(信)’을 무엇으로 보았는지 살펴보면,
그 출발점은 언제나 **‘말’**이었다.
信은 사람 인(人)에 말 언(言)이 더해진 글자다.
믿음이란, 결국 사람이 한 말이 가볍게 무너지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여기에 말과 행동이 일치하거나,
적어도 일치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신은 성(誠), 곧 존재의 ‘진실함’과도 이어진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民無信不立”
백성이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고 했다.
믿음은 국가, 법, 도덕 이전의
가장 낮은 토대라는 뜻이다.
또 이렇게도 말했다.
“言必信, 行必果”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하고,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한다.
동양에서 신은 감정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그리고 공자는 다시 말한다.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믿음이 무너지면
능력도, 의도도, 관계의 가능성도
함께 무너진다는 뜻일 것이다.
맹자는 믿음을 ‘성(誠)’과 함께 보았다.
誠은 존재의 진실성이고,
信은 그 진실성이 관계 속에서 입증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순자는 더 냉정하게 말했다.
“信者, 國之寶也”
믿음은 나라의 보배이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기 때문에,
신뢰라는 시스템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법가도 마찬가지다.
“言必信, 令必行”
말은 반드시 믿을 수 있어야 하고,
명령은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여기서 신은 인간의 선함이 아니라
통치 기술이자 권력의 안정 장치다.
이렇게 보면,
동양 철학에서 신(信)은
감정도, 신앙도 아니고
말과 행동의 일치,
사회가 예측 가능하게 유지되기 위한 조건에 가깝다.
그렇다면 일상적인 생활에 적용해 봤을 때
우리는 타인의 무엇을 믿어야 할까.
우선은 그가 실제로 한 말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말은 말만으로는 잘 믿어지지 않는다.
그 말에 따른 행동이 쌓여 갈 때,
그 믿음이 비로소 견고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그의 말이 아니라 나의 기대로
상대에 대한 믿음을 판단하게 될 때도 있다.
‘그 사람은 그럴 것이다.’
이런 식의 기대 말이다.
만약 그 기준이,
앞서 ‘의(義)’에서 살펴본 것처럼
보편적인 타당성을 가진 것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 기준은 나의 취향이나 상처, 습관에서 비롯된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믿음을 판단하는 입장에서는
섣불리 나의 기준으로 상대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믿음을 주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우선 말을 줄이고 행동을 더 중요하게 여기되,
정말 말이 필요할 때에는
상대의 기대에 맞춘 말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 뒤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
옳다고 느껴진다.
휴먼디자인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믿는 것이 깨어남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사랑하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라면,
지금 내가 생각할 때 나를 믿는다는 건
내가 세상 누구와도 다른
독특하면서도 특징적인 사람이며
그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저마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자리일 것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비교할 필요 없는, 나만의 무언가가.
그저,
그것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