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지우지 않는다는 것
화(和)에 대하여
— 차이를 지우지 않는다는 것
화(和)의 한자 어원은
**和 = 禾(벼 화) + 口(입 구)**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 和, 相應也. 从禾口.
화란 서로 응하는 것이다. 벼와 입을 따른다.
라고 하였다.
여기서 ‘응한다’는 것은
섞이거나 같아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각자의 리듬이 맞아떨어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화에 대하여 동양 철학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논어』 〈자로〉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이 문장은 화의 범위를 분명히 제한한다.
화(和)는 동(同)과 구별된다.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남아 있어도 함께 유지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중용』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여기서 화는
‘아직 드러나지 않음’이 아니라
드러난 이후의 상태로 정의된다.
이 구절은
화를 억제 이전이 아니라
조율 이후의 상태로 규정한다.
『순자』 〈악론〉에서는
> 樂者, 和也. 禮者, 節也.
라 하여
화(和)를 어울림으로 설명한다.
또 『예기』 〈악기〉에서는
> 和故百物皆化
화가 이루어지면 만물이 변화한다고 하였다.
이는 화가
한 사람의 내면 덕목이라기보다
관계와 질서 전체에서 작동하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여기까지 원문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면,
고전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화(和)는
감정이 아니고
동의가 아니며
타협도 아니다.
대신,
차이가 유지된 채
질서 안에서 서로 응하는 상태
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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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써온 개념들과의 구분
仁(인) : 타자를 향한 마음의 방향
義(의) : 판단의 기준
禮(예) : 그 기준이 드러나는 형식과 절도
智(지) : 상황을 꿰뚫는 분별
信(신) : 말과 행동의 일치
和(화) : 그 일치들이 관계 속에서 어긋나지 않는 상태
그리고 따로 묶었던 개념은 다음과 같다.
眞(진) : 거짓 없음
善(선) : 방향이 바르다는 평가
美(미) : 그 바름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상태
이는 두 층으로 나뉜다.
진·선·미 → 가치의 성격
인·의·예·지·신·화 → 그 가치가 삶에서 작동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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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50번 괘 **화풍정(火風鼎)**은
‘솥’을 뜻하는 괘다.
『설문해자』에서는 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 鼎, 所以和五味也
정은 다섯 가지 맛을 조화시키는 데 쓰인다.
정은
하나를 없애는 도구가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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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키 50번도
같은 지점을 다른 언어로 말한다.
그림자 : 부패(Corruption)
→ 기준과 질서가 살아 있지 않을 때
선물 : 균형(Equilibrium)
→ 과하지 않게 조정되는 상태
싯디 : 조화(Harmony)
→ 질서가 강제가 아니라
자연처럼 작동하는 상태
조화는
규칙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규칙이 의식되지 않을 정도로 몸에 배어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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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해 생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주역의 화풍정괘와 유전자키 50번을
함께 설명을 들었던 부분이다.
50번의 게이트 이름은 ‘가치’다.
각자의 가치를 솥에 넣고 휘휘 저어
공동선을 꺼내는 것,
그것이 조화라는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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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자기 마음을 지워 상대나 상황에 맞추는 것을
조화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화는 같아지는 것이 아니다.
관계에서 조화를 이루고 싶다면
주역 50번 화풍정괘의 지혜처럼
각자의 가치를 섞어
공동선을 꺼내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설령 맞춰야 하는 상황에 있더라도
그 선택이
내 주체적인 의지에 따른 것인지를
반드시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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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해 생각하다
몸과 건강에 대해서도 떠올려 보았다.
여기서 화는
조절력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간혹 그날의 운동량이나 식사량을
정해 놓고 지키지 못하면
안 될 것처럼 여길 때가 있지만,
몸에서 이상 신호가 온다면
적정량을 조율하는 것이
몸의 화를 유지하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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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화는 의지로 이뤄낼 수 있는가.
내 안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렇게 다시 한걸음 나아가야겠다.